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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생지노從生至老히 일무소득一無所得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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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바람 물결소리 - 명신┃해인사 승가대학 1학년 2010년 12월 346호
종생지노從生至老히 일무소득一無所得 이라
:태어나서 늙어 버릴때까지 하나도 얻을 바가 없음이라.

삶의 오솔길을 걸어가다 보면 수많은 경험을 하게 된다. 여러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고, 새로운 장소들로 가거나 머물게 되고, 몰랐던 지식을 배우거나 원하는 것을 추구하게 된다.
‘나’라는 존재 위에 쌓이게 되는 이런저런 이름표들이나 나에게 속한다고 여겨지는 사람들과 물건들이 생겨나게 된다. 우리는 그렇게 삶의 풍경 속에서 각자의 의미와 이유들을 챙겨두고서 그것을 지키거나 실현하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정하고 길을 걷게 되는 듯하다. ‘나’라는 이름의 덩치를 키워가는 것이 곧 삶의 전 과정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무언가를 얻게 되긴 하는 것일까? 삶의 노정에서 잃어버리지 않는 ‘나의 것’을 가지게 되는 것일까?
우리 대부분은 자신이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결코 떠올리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 직장을 가지고 돈을 벌고, 결혼을 해서 가족을 꾸리고, 부·명예 등 각자의 목표들을 향해 열심히 노력한다.
그런데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는 인간의 욕망을 세밀하게 조종해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소비하게 만들고 있다. 생산과 소비의 무한 연쇄 고리에 끌려가면서 우리는 무언가 일을 하고, 또 끊임없이 무언가 추구하게 된다. 나의 소유는 눈덩이처럼 불어만 간다.
소유를 부추기는 욕망의 확장은 죽는 순간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새로운 패션의 옷, 신형 자동차, 더 크고 멋진 집… 화려하게 변주되는 욕망은 우리의 눈을 멀게 만든다. 그렇게 불어난 ‘나의 것’에 우리는 집착한다. 우리가 지닌 모든 것들을 언제까지고 부여잡을 수 있으리라는 헛된 기대를 품고서 하나라도 더, 조금이라도 더 오래 부둥켜 잡으려고 발버둥 친다.
그런 모든 노력은 ‘죽음’ 이라는 모두에게 평등한 과정 앞에 물거품처럼 스러져 간다 물론 부와 명예에 초연한 사람들도 드물지만 존재한다. 그러한 사람들도 ‘나’라는 관념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며 자신의 건강, 지식의 추구, 나의 울타리를 넓히고 관념을 살찌우는 데 필요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그 또한 다른 종류의 집착임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나’라는 존재 자체가 저녁 어스름 속으로 잠겨들듯이 사라지고 만다는 것은 우리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닌가. 희대의 영웅도, 찬란한 문명도, 헤아릴 수 없이 광대한 제국도, 영원을 속삭이던 사랑도 퇴색되고 묻혀 지고 망각의 늪 속으로 빠져든다.
사라짐의 운명은 모두에게 평등한 것이다. 비슷한 의미로 죽음을 늘 염두에 둔다면, 자신이 언젠가는 죽고 만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마음에 챙긴다면 우리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하는 탐욕의 손아귀에서 자유로와질 수 있을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되 욕심 부리지 않고, 만족할 줄 알며, 본질적인 의미에서는 이 몸뚱아리조차 스스로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내일 당장 죽음이 닥쳐오더라도 두려워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본다면, 순간순간 우리가 느끼는 감각이나 경험하는 감정들, 떠오르는 생각 역시도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흐르고 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몸과 마음의 고통도 어디선가 일어났다가 사라져 버리고, 내 몸의 감각기관으로 흘러들어오는 모든 느낌도 찰나마다 달라진다. 오늘은 누군가를 미워하고 내일은 그 누군가로 인해 기뻐하며, 치밀어 오르는 화를 견딜 수 없을 것 같다가도 한숨 돌리고 나면 마음의 평정이 찾아오기도 한다.
손에 잡히는 모든 것, 마음에 떠오르는 모든 것이 단 하나도 참된 의미에서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걸림 없이 자유롭게, 삶의 순간순간을 온전하게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다는 말은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