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해온 불때기지만 마지막 장작 한 고물을 던질 때까지 그릇 굽는 일은 잠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는 일이죠.”
2007년 11월 29일, 경북 문경 성주봉 아래 자리잡은 문경요에서 도예명장 도천陶泉 천한봉千漢鳳(77) 선생이 가마에 불 때는 장면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밤새 장작을 가마에 던져 넣으며 잠시도 가마 입구에 시선을 떼지 않는 장인의 모습이 화두를 챙기는 구도자의 수행과 다르지 않음을 느꼈다. 그야말로 한 마음 흐트러지지 않는 ‘일심불난一心不亂’의 여정이 그릇 굽는 일이었다.
14세에 시작하여 60년 이상을 한결같이 달려온 길. 1970년대부터 차도구 제작을 시작하면서 ‘고려 다완’을 완벽하게 재현한 도공으로 알려지면서 일본에서 더 유명한 도천 선생. 그릇 빚는 과정을 재현해 주기 위해 그는 물레에 앉아 미리 준비해 놓은 흙을 한 덩이 올렸다. 돌아가는 물레에 중심을 잡고 그릇 하나를 만들어 가는 그의 손은 너무나 익숙했고, 마음은 텅 비어 있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몸과 마음이 한 덩어리로 모아져야 그릇에 힘이 느껴진다. 무엇하나 몸과 마음을 소홀히 할 수 없음을 그릇이 대신 말해준다고 한다.
군더더기 없는 단순함의 가치는 그릇이 도예 명장에게 전한 교훈이다. 하지만 그도 처음에는 먹고 사는 일에 급급해 많은 그릇을 만드는 일에만 마음을 쏟다 보니 흙의 마음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갈수록 흙이 좋아졌다. 흙이 지닌 본질적인 생명력이 좋고, 기본에 충실하라고 늘 마음을 다독여 주는 힘이 고마웠다. 그리고 차를 담고 꽃을 담으며 사람들의 마음도 담을 수 있는 넉넉한 그릇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 마침내 그는 일과 하나가 되어 그릇이 되었고, 그릇은 그의 인격이 되었다.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일심이 되면 그릇을 빚는 사람도, 그릇도, 그릇 빚는 일도 사라진다. ‘텅빈 충만’속에서 다시 위대한 걸작이 생명을 안고 태어난다. 그릇 빚는 일이 무심無心의 힘을 키우는 수행이 아닐 도리가 없다.
사발은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서 그들의 다도와 결합해 재평가를 받아 예술적 가치의 다완으로 재탄생했다. 그릇은 그들 삶의 일부분으로 변하였고, 그런 가운데 조선 도자기가 갖는 중요한 특질이 도자기에 배어들게 되었다. 곧 손은 익을 대로 익고, 마음은 욕심이 없는 그러한 모습이 투영된 그릇. 그것이 조선 도자기가 갖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몸과 마음, 손발과 정신이 하나 되어 중심을 이루고 펼치고 세워나갈 때 무념무태無念無態의 찻사발이 완성되는 것이다.
번뇌ㆍ망상 없는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작업에서 탄생한 조선 다완에는 어떠한 고정관념도 탈피한 자연스러운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전통적인 손물레와 발물레, 천연의 유약 그리고 소나무 장작만을 쓴 등요를 비롯하여, 직접 지게를 지고 흙을 파다가 순수한 계곡물을 사용하여 홀로 작업하는 장인의 일과 삶 속에서 그대로 나타난 것이 찻그릇이다.
조선 다완의 빛깔은 보통 푸른 빛에 분홍빛이 도는 것을 최상으로 친다. 그러나 이런 색에 대한 표현은 편의상 표현한 것이지, 가장 적당한 답은 ‘말로 표현 못하는 색’이라고 할 수 있다. 그야말로 ‘언어도단言語道斷 심행처멸心行處滅(언어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 가는 곳이 없어지다)’의 경지에서 우러나온 빛깔이다. 화가가 그릴 수 없는 형상이 자연의 요변에 의한 색이다. 이것은 오로지 자연과 하나된 무심의 상태에서만 나올 수 있는 빛깔이다.
교토 대덕사 고봉암에 소장된 일본의 국보 정호다완井戶茶碗 즉, 기자에몬이도喜左衛門井戶은 흔히 ‘일그러진 실패작에서 미의 극치를 찾는다’고 한다. 정호다완은 16세기 경 청자가 퇴조하고 조선 백자가 꽃을 피우기 전 민간에서 잠시 만들던 그릇으로 임진왜란 때 집중적으로 약탈당했던 그릇이기도 하다. 단순, 소박, 자연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정호다완의 진정한 미는 아름다움과 추함을 초월한 곳에서 나온다. 선과 악, 옳고 그름, 번뇌와 보리, 생사와 열반이란 이분법을 초월한 불이不二의 자리, 본래면목本來面目에서 참다운 진선미眞善美가 창조되는 것이 아닐까. 불과 공기의 조화로 질박하고 자연스러운 멋을 만드는 한국의 전통 가마에서 고려다완이 가장 완벽하게 재현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도공들은 실패한 그릇을 깨는 과정에서 그 그릇들은 이제 더 이상 막사발이 아니라 정신을 다듬는 그릇이며 청정한 마음을 담을 수 있는 찻그릇임을 깨달았을 것이다. 이는 마치 선가禪家에서 ‘백척의 장대 끝에서 한 발 더 내딛는 정신으로 죽었다 깨어나야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하는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나 사중득활死中得活(죽음 가운데 생명을 얻음)의 관문을 통과하는 과정과 다름 없다. 번뇌ㆍ망상의 중생심이 죽어야 불생불멸하는 진여일심眞如一心을 증득할 수 있듯이, 그릇된 아상我相과 아집我執이 죽어야 무아無我로서의 참나인 대아大我가 드러난다. 파괴와 창조, 생사와 열반을 둘로 보지 않고 양자를 초월한 경지에서 노니는 선禪과 마찬가지로, 도예에서도 파괴를 통해 위대한 걸작이 창조되는 셈이다.
도예가들은 빈 그릇을 만들면서 비움과 채움이 둘이 아님을 배운다. 비운다는 것은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을 비우는 것이며, 분별ㆍ망상과 헛된 집착을 내려놓는 일이다. 비울 줄 아는 사람이 제대로 채울 줄 아는 법이다. 그것은 비어있기에 모든 걸 담을 수 있는 그릇에서 배울 수 있는 지혜이기도 하다.
도예가들은 오늘도 빈 마음으로 찻그릇을 빚고 구워낸다. 도예 장인의 길 역시, 구도의 여정과 마찬가지로 무언가를 구하는 집착이 배제된 ‘오로지 정진할뿐’인 과정이다. 오직 한 길로 나아가되 과정 자체가 목적인 당당한 길이다. 그리하면 날마다 배움인 동시에 깨달음의 길이다. 비움이 바로 채움이 되고, 채움이 곧 비움인 길이다. “사람은 그릇을 만들고, 그릇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 그대로, 그릇을 통해 도를 닦는 구도자들은 각고의 수행을 통해 언젠가는 그릇 자체, 깨달음(覺性) 자체가 되어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