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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전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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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최정희 1988년 01월 71호
선생님, 무진년 새해 아침입니다.
새날, 새빛, 새해, 새아침 등 온통 밝음과 희망을 구가하는 축제의 언어가 온 누리에 일렁이고 있읍니다. 올해는 저도 그 축에 끼게 되었읍니다.
해마다 연말이면 보내드리는 달력으로 새해 인사를 대신하던 제가 모처럼 글로써 인사 올리려니 선생님 모습이 선연해 지면서 웬지 가슴이 설레입니다.
아마 깊은 잠속에 빠져 있던 연두빛 시절을 일깨우는 두근거림인가 봅니다.
이제는 교수님이 되신 선생님. 하지만 옛날 저희들이 단발머리 소녀 시절에 부르던 ‘선생님’이란 칭호가 훨씬 편하고 이물없어 그 칭호 그대로 쓰겠읍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학을 마치고 갓 부임하신 선생님께서는 너무도 풋풋하셨읍니다. ‘교사정신’ 이란 말을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는 교사이셨읍니다. 다른 학생들도 그러했겠지만 저는 그러하신 선생님을 많이 좋아했읍니다. 어쩌면 선생님께서 귀찮을 정도로 지나쳤는지도 모르겠읍니다. 빈 종이에 뭔가를 쓰다보면 늘 선생님 성함 석자가 쓰여져 있었으니까요. 앉으나 서나 자나째나 선생님 생각이 머리 속에 가득했던 시절입니다
선생님께서 결혼하신 뒤 가끔 친구들과 함께 선생님댁을 방문하고 사모님과 격의없이 대화하며 친근감을 갖고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선생님께 느꼈던 존경과정의 확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도 잘 모릅니다. 그 정의 원천이 어디에 기인하는 것인지를. 불교에서는 무명(無明), 또는 업(業), 습(習) 등으로 이야기하지만 저는 불교신문 기자 노릇을 십년 넘게 하면서도 그에 대해 명쾌한 불교적 해답을 내리지 못하는 어정쩡한 기자입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정이 어디서 솟아나든, 맑은 샘물처럼 목마른 사람의 갈증을 조건없이 풀어주는 약수가 될 때, 아름다운 인간 관계를 이루는 촉매제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정이 인간 관계에서 전류처럼 늘 흐를 때, 인간마을에는 영원히 시들지 않는 사랑의 꽃이 계절에 관계없이 피어난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읍니다.
선생님께서는 이십여년 전 이 진리를 저희들에게 가르쳐 주셨읍니다. 물론 물리를 가르치던 선생님께서 정에 대해 강의하신 일은 한번도 없었읍니다. 선생님께서는 행(行)으로 그 소식을 일러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미처 몰랐읍니다.
그저 어려운 환경의 저에게 물심 양면으로 따뜻함을 주시는 선생님께 저는 한없는 감사를 느꼈고, 그에 앞서 선생님이 그냥 좋았을 뿐입니다.
이제 세월이 많이 지났읍니다.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서 살고 있는 저는 관계의 소중함을 조석으로 확인하고 다짐하면서 정은 바로 관계의 기본이 된다고 생각하게 됐읍니다. 그리고 사랑의 꽃, 자비의 연꽃은 정을 바탕으로 피어난다고 확신할 때마다 저는 자주 선생님을 연상합니다. 이십년도 훨씬 더 전에 한 젊은 청년 교사가 여학생에게 베푼 온정이 교훈으로 되살아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웃과의 관계에서 늘 연꽃을 피울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 쉽지 않음을 오늘 선생님께 고백합니다. 원만한 이웃과의 관계는 물질의 보시나 약간의 마음씀으로 이뤄지는것이 아닌 듯 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다함없이 베풀 수 있고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 알고 계시듯이 정희는 꽤 욕심쟁이였지요. 남보다 앞서고 싶어하고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었지요. 이것이 병통임을 저는 요즘 절실히 느낍니다. 물론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격은 자기 발전을 가져올 수 있읍니다. 그러나 이웃과의 관계에서는 큰 장애물이 되고 있읍니다.
옛날보다 시샘도 줄어들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자주 생각하는데도 ‘나’ 라는 집착에서 떠나 사심없이 양보하고 한발 뒤로 물러서기가 얼마나 힘든가를 날이 갈수록 농도짙게 저는 체험합니다.
부처님처럼 “만일에 보살이 자기와 사람과 중생과 목숨에 대한 집착이 있으면 보살이 아니니라(若菩薩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則非菩薩)”고 금강경에 이르신 가르침을 이제사 강아지 눈 뜨듯 감지한 것 같습니다. 더러 제가 성질을 부리거나 에서 화가 부글부글 끓을 때 저를 들여다보면 제 자신이 바로 아상과 인상 따위의 그릇된 견해에 빠져 있음을 봅니다. ‘나’ 라는 생각이 지나치게 강할 때 자기 고집을 내세우게 되고 겸손할 수 없으며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을 거듭 되뇌이면서도 왜 그 실천이 그렇게도 어려운지 모르겠읍니다.
선생님, 얼마 전에 한 청년이 저를 찾아왔읍니다. 그 청년은 제게 이웃돕기 성금을 모금하기 위한 일일 찻집 차 티켓을 사달라고 청했읍니다. 저는 그보다 기사를 써서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도록 해 주겠다고 말했읍니다. 그때 청년은 제게 기사는 필요없으니 티켓이나 팔아줄 것을 거의 강요하다시피 했읍니다. 저는 그 청년의 태도가 싫었읍니다. 결국 저와 그 청년은 언성을 높이고 말았읍니다. 만일에 제가 기자가 아니었다면 저는 아마 두말없이 그 티켓을 몇 장 샀고, 그 청년은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돌아갔을 것입니다. 생전에 낯모르는 그 청년과 언성을 높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청년의 불손한 태도가 제 맘에 안 들었다는 데에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왜 맘에 안들었을까. ‘나’라는 생각이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읍니다. 상대적으로 그 청년은 “내가 좋은 일을 하는데” 하는 아상(我相)에서 “그까짓 기사보다야 현금으로 보시해 주시오”라고 목소리를 높여 당당하게 말했을 것입니다. 바로 상대방의 그 생각을 들어다본 저의 아상이 문제의 발단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잘 반성하면서도 다시 어딘가에 부딪치면 속에서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니 제가 얼마나 더 공부해야 되겠읍니까. 그러나 실망하지 않습니다. 무슨 일 때문이건 제 마음이 불편할 때는 얼른 저를 들여다봅니다. 그러다보면 제가 부처님처럼 말씀하신 그릇된 견해에 빠져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렇게 수 없이 반성하고 자기 성찰을 하다보면 누구와도 편안한 관계를 이루는 날이 올 것
으로 저는 확신합니다.
“성 안 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라는 성구를 수없이 듣고 외었으며 매일 금강경을 수지 독송하면서도 ‘나’라는 아상이 탐•진•치 3독의 원인이 됨을 진즉 깨닫지 못했읍니다.
선생님, 지난 연말에 감기 몸살로 몸져 누운 상태에서 저는 양보하는 마음, 겸손한 마음으로 보시할 때 보시는 공덕의 꽃을 피운다는 사실을 절감했읍니다.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에도 따뜻한 정이 오고갈 수 있음을 알았읍니다. 선생님께서 이십여년 전 보여주신 그 온정을 저는 다시 제 이웃에게 회향하며 선생님 제자로서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부처님께 발원합니다.
부처님 가피 속에 늘, 댁내가 두루 평안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