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서 꽃이 진실로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고 어쩌다 하늘을 보면 너무 황홀해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때가 있다. 머리에 서리가 내려앉을 즈음이면 이런 감정들에 무심하기는 더 어려울 터. 삶이 유한하다는 걸 알기에 또 다른 세상이 던지는 아름다움을 훨씬 더 감각적으로, 또 감격적으로 받아들이는 한 무리의 여인들이 있다. 경남 밀양의 4,50대 그리고 60대까지 끼어 있는 밀양불교합창단원들이 바로 그들이다.그녀들, 밀양에서 서울까지 전국을 휩쓸다.
지난 달 11월7일 2010불교합창페스티벌이 펼쳐진 서울 서초구 교육문화회관 대강당, 밀양불교합창단의 특별공연이 끝나자 합창공연으로는 드물게 앵콜을 청하는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불교합창단의상으로는 약간 파격이라 할 수 있는 무릎길이의 스커트와 검정바지, 빨강색과 흰색의 윗도리에 검은색 중절모, 게다가 3단 높이의 합창단배열을 이탈한 자유로움이라니. 무대 위를 살짝살짝 움직이는 단원들의 안무까지 관객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더니 마음마저 움직인 거다. 환호와 박수소리를 예상치 못했음인지 아니면 앵콜곡이 준비 안됐음인지 15초쯤의 머뭇거림 후 단원들과 지휘자간의 눈빛이 빠르게 교환되고 7080가요<여고졸업반>을 부르는데 이 모두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짐작컨대 여고졸업반을 부르는 무대 위의 그녀들은 여고졸업한지 최소 20년은 지났을 것 같은데 발랄 유쾌한 모습이 이제 여고졸업반 같다.
“ 괜찮았어예? 다리에 자신 있는 사람만 스커트 입고, 서울 가는 버스 안에서 윗도리 기장 줄이고 나비넥타이는 다 못 구해서 적당히 매고 아이고!! 난리도 아니었어예. 진짜 볼만 했습니까?”
-그럼요, 그런데 여자 나이 마흔 넘으면 대부분 몸치라잖아요. 그 안무연습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 아이고 말도 마이소. 가사신경 써서 부르다 보면 노래 맞춰 움직여야할 한쪽 팔은 제멋대로 놀고 있지, 뒤에서 언니!!한 박자 늦다..하면서 혼내지, 한 걸음만 나가야 할 자리 두 걸음 나가지...그래도 앵콜 받은 거 보면 웬만큼은 했나 봐요.”
-연습을 얼마나 하셨어요?
“사실 연습시간이 턱없이 부족했어요. 그리고 특별공연 보는 사람들이 밀양불교합창단 지난해 대상 받은 팀 과연 맞아? 할까봐 얼마나 긴장했는지 몰라요. 추수 한다고 연습 안 나오지, 감 수확기라 일꾼 불러놨다고 못 온다 하지 애가 탔어요. 서울 도착해서 리허설 끝나고 무대 오르기까지 내내 연습했네요.”
밀양불교합창단은 지난해 <월드콰이어챔피언십코리아2009>에서 은상을 차지했고 여세를 몰아 여의도KBS홀에서 진행된 <2009불교합창페스티벌>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금년에는 경연 팀의 심사시간동안 출연한 특별공연이었다.
찬불가를 부르며 내 마음에 도량을 지니고
노래를 하는 것은 듣는 것과 다르다, 노래방기기보급으로 사천만이 가수라곤 하지만 그래도 그게 그렇지 않다는 것쯤은 얼마 전 인기리에 방송된 모 방송사의 <남자의 자격>만 봐도 알 수 있다. 서울, 부산 같은 대도시도 아닌 인구11만의 지방 소도시 밀양에서 불교합창단을 꾸려가는 것은 그들만의 말랑말랑한 연대감이나 정서적인 공감대가 굉장해야 가능한 일이다. 밀양시 예총지부사무실에 밀양합창단 지휘자와 역대단장 지금의 단장과 총무가 함께 모여 창단18년을 돌아보는 자리, 그들의 호칭은 모두가 언니고 아우다. 지휘자곽호진선생까지 60넘은 큰언니 단원에게 언니라 부른다. 알고 보니 누님친구란다.불자佛子~모두 부처님의 자식이니 한 살만 많아도 언니란다. 부처님 세상이 따로 없다.
“ 찬불가가사를 새겨보면 모두가 부처님 법이에요. 연습을 하다보면 내 마음에 절을 지니게 되는 것 같애요. 그리고 찬불가 연습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러 오라는 선배들의 말씀이 그냥 하는 얘기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지요. 지난해 본선무대에서 찬불가<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을 부르는데 노랫말에 빠져서 가슴이 울렁거리고 온 몸에 전율이 흐르면서 눈물이 그렁그렁해졌어요.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혼신을 다해 부르고는 모두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답니다.”
부처님 지혜의 말씀 반야심경을 온 마음으로 불렀음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크나큰 신심으로 목소리가 아닌 가슴으로 부른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이 심사위원들의 영혼에 맞닿았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기도하러가듯 찬불가 연습하러간다지만 가족들 이해도 필요하겠고 집안 살림이며 자녀교육은 다 어떻게 하셨는지요. 하지만 노래하는 시간은 아내도 며느리도 엄마도 아닌 온전한 자신만의 시간이었겠어요?
“연습이 있을 때는 매일 새벽밥이죠. 하지만 평소에 정~~말 잘하고 찬불가를 부르며 부처님 법을 찬탄하고 배우며 봉사하는 동안 집안이 무장무애하였으니 발표회를 하는 날 결국 남편들의 꽃다발세례를 받지요. 특히 지난해 대상받고 새벽1시에 밀양 도착했는데 그새 만든 축하현수막 환영은 정말 감동이었어요.”
밀양불교합창단원들의 남편모두에게 진심어린 땡큐싸인을 보내고 싶어진다.
욕심 많은 선생님, 애가 타는 선생님…그래서 더 고맙습니다
밀양 밀성제일고 음악교사로 밀양불교합창단의 역사와 함께하는 지휘자 곽호진, 그이는 가슴속에 불덩이 하나 담아두고 처처에 그 열정을 지펴가는 사람이다. 혼자 하라면 도레미파솔라시도조차 완벽하기 어려운 비전공자들을 단원으로, 아들 딸 같았으면 한 대 딱! 때리고 싶었던 그들과 18년 세월이다. 일주일에 2번 연습을 하지만 지휘봉을 잡은 그이는 월화수목금토일 날마다 연습을 했으면 싶었다. <도레미파솔라시도><월화수목금토일>을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리드미컬하다.
“지난해 가을 참 어려웠어요. 월드콰이어챔피언십코리아2009 준비하는데 연습장이 없어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동안 ‘그래, 지금은 하숙방이나 여인숙 같은 생활이지만 합창경연장은 5성급호텔과 다름 없을거야’ 하며 위로했죠. 사실 그랬습니다. 사방이 휑한 체육관에서 연습하다가 음향시설 완벽한 마산 3,15아트홀에서 노래하는데 우리소리에 스스로도 놀랬죠. 은상을 받고 욕심이 생겼습니다. 2009불교합창페스티벌에 참가하자했지만 단원들 거의가 반대하더군요. 가을철 농번기라는 것도 이유였지만 어찌어찌 은상은 받았지만 불교합창페스티벌예선에서 떨어지면 그 창피를 어쩌려구…하는 부담이 있었던 거죠. 품앗이로 사과 따기, 감 따기 거들어가며 참가한 예선 통과하고 본선에서 대상을 차지했으니 그때부터 밀양불교합창단의 위상은 완전히 달라졌지요.”
연습 나오라고 문자질을 해가며 욕심이 하늘을 찌른다는 수군거림을 들어가며 거머쥔 대상이다. 어떤 장애물도 ‘된다’ 에는 무너진다는 것을 그는 일찍이 간파했던 모양이다.
선생님 말씀 끝에 저간의 온갖 사연이 꼬리를 문다. 중년 여인들의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하고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하는데 슬며시 베네주엘라의 어둠을 비추는 불꽃이며 별이 된 엘 시스테마가 겹쳐진다. 지나친 비약일까? 인연 있는 영가49재에 동참해 찬불가<빛으로 돌아오소서, 왕생극락 하소서>를 음성공양하고 사명대사 춘,추계 향사에서 <사명대사추모의 노래>로 선지식을 찬탄하고 재소자를 위한 생일잔치를 열어<어머님 은혜>를 부르며 그들의 가슴을 젖어들게 하는 밀양불교합창단을 밀양의 꽃이라 칭하는데 서슴없이 한 표 던진다.
여러 그대들의 후원…사랑합니다.
12월, 겨울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은 서로를 그리워하고 애틋하게 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그 마음이 사랑의 다른 이름 아닐까. 밀양불교합창단이 세상을 향한 자비를 행하는 동안 합창단으로 다가오는 사랑 또한 가득하다. 그 아름다운 사랑을 일일이 거명하자면 그 빛이 퇴색될 우려도 있지만 밀양도 아닌 거제에서 후원금을 보내주시는 손근수거사와 여러 그대들에게 사랑합니다!!라고 꼭 전해달라는 합창단원들의 부탁을 저버릴 수가 없다. 표현하는 사랑이 아름답다는 말도 있으니.
(취재에 응해준 곽호진,박용희,박혜영,김은희,황영순,박미경,김정영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