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재물이나 물품은 물론 생명을 지닌 모든 존재에게 까지 집착하는 것이 전무한 것, 무소유無所有에 관한 지침을 《화엄경華嚴經》에서는 제유무소착이라고 강조한다. 자신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만을 소유하는 것이 무소유가 아니라, 필요하거나 필요하지 않거나를 가리지 않고 모든 소유에 대해서 집착함이 없는 것이 제유무소착, 무소유의 근본이념이다. 〈세주묘엄품世主妙嚴品〉에서 일체주약신중一切主藥神衆이 순차적으로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을 찬탄하는 게송偈頌 가운데에 이진광명주약신離塵光明主藥神이 부처님의 위력 가운데에 제유무소착의 공덕을 기리는 내용으로 무소유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왕석근수무량겁往昔勤修無量劫, 지나간 옛적부터 한량없는 세월에 걸쳐서 부지런히 절친한 권속에서부터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모든 존재와 필요必要와 불필요不必要를 가리지 않고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소유에 대해서 집착하지 않는 수행을 닦으신 결과로 성취하신 것이라고 칭송稱頌하고 있다.
제유諸有란 삼계(三界; 욕계⦁색계⦁무색계)에 존재하는 모든 중생의 유형類型을 총망라하는 것으로 인간은 물론 사족四足의 짐승과 다족多足의 곤충과 유형有形 무형無形의 모든 생명을 가리키는 동시에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소유의 물질과 자신이 경험하는 모든 경계까지를 광범위하게 포함하는 것이다. 이러한 제유에게 무소착無所着한다는 것은 존재하는 모든 대상들과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재능과 재산과 경험뿐만 아니라 치러내는 모든 경계와 공간에까지 미진微塵만큼의 집착이나 미련을 두거나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무소유無所有의 궁극적인 이념이다.
이진광명주약신이 제유에 무소착하는 공덕을 거론하는 것도, 집착인 진塵을 무소유로 벗어나는 것이 지혜智慧인 광명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진塵이란 티끌이며 번뇌이며 집착이며 고苦의 원인인 집集인 것이다. 진塵을 소멸하고 벗어나는 정도正道가 무소유이며, 무소유로 이루어지는 광명이 곧 도이며 지혜와 다르지 않다.
함께 존재하는 모든 대상과 자신이 지니고 있는 모든 지적知的 물적物的의 자산資産과 희노애락비통喜怒哀樂悲痛 등의 모든 감정과 경계에 집착하지 않는 제유무소착, 무소유의 수행을 한량없는 세월에 걸쳐서 부지런히 수행한 공덕으로 불과佛果를 증득證得한다는 것은 집착을 떨치고 번뇌와 티끌을 벗어나는 데에 어느 한 순간도 전념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제유란 모든 존재와 모든 소유와 모든 순간으로 일체의 대상과 물질과 시간을 의미하며, 이러한 제유에 무소착한다는 것은 공간과 시간과 생명체에 대해서 분별分別과 차별差別과 집착이 없는 절대적인 중도中道의 발현發現과 다르지 않다.
내가 생명처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혹은 나의 분신分身인 자식을 통해서 이루어내지 못한 성과를 기대하려는 이유로 열熱과 성誠을 다하며 애정을 쏟으며 애착愛着하거나, 헤아릴 수 없는 공력功力을 오랜 시간동안 투자하여 이룩한 재능이라는 이유로 혹은 먹지 않고 자지 않고 입지 않는 등 각고刻苦의 노력으로 모은 재산이라고 아끼며 탐착貪着하거나, 일생에 두 번 다시 경험할 수 없는 소중한 순간과 감격이라고 붙잡고 매달리는 것 등은 모두 소유의 맹목적인 관점에서 비롯되고 빚어지는 사랑을 빙자한 애착이며 탐착이며 집착이다.
그리하여 영원히 제유의 속박과 결박에서 풀려나거나 벗어날 기약이 없을 것이며, 속박과 결박에서 해탈하지 못한다면 이고득락離苦得樂의 기회 또한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고득락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태어나는 모든 생애와 삶은 제유무소착을 근수하는 과정이며 여정旅程이기 때문이다.
자비보시慈悲布施, 자비의 마음과 보시의 수행으로 자비심慈悲心, 보시행布施行을 강조한다. 보시행이란 자비심의 표출表出이며, 자비의 행동이며, 자비의 표현이다. 자비심을 원만하고 돈독하게 갖추어 품거나 간직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보시의 행동으로 표출되지 않는다면 활발하게 용솟음치는 진솔한 자비라고 할 수 없으며, 그 본연本然의 빛과 의미를 퇴색하고 상실하여 이미 자비라는 명목名目을 인정할 수 없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위선僞善에 지나지 않으며 회향하거나 환원되지 않는 지식과 거부巨富는 공공公共의 적敵에 비유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표현되지 않는 자비 또한 불자라는 허울로 위장僞裝한 외도外道나 마군魔軍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보시가 곧 자비심이며 자비행慈悲行이다.
저물어가는 경인년 올해도 어김없이 나라 안팎의 지구촌 곳곳에서는 자연과 인재人災의 재해災害에 수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고 위협을 당하고 있다. 나와 가깝지 않고 나와는 무관無關한 생면부지生面不知의 타인他人이라는 이유로, 내가 경험하거나 겪어보지 않은 순간이어서 짐작하거나 가늠할 수 없는 고통이라는 이유로, 혹은 나의 소중한 자산을 허비할 수 없다는 당착의 모순을 견지한다면 제유무소착의 공덕과 광명을 기대할 수 없음은 물론 불자佛子의 당연한 의무와 도리를 포기하는 처사와 다르지 않다. 자비보시가 바로 법왕자法王子, 법왕의 자식임을 당당하고 굳건하고 확실하게 천명하는 보살의 행동이며, 보살의 자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