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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원 교육국장 재경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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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정영 2010년 12월 346호
조계사 앞길에 가로수 낙엽이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볕 좋은 날, 그 낙엽처럼 잎맥으로만 남아도 좋겠고 저 햇살처럼 눈을 감고 흘러 다녀도 좋겠다 싶은 날, 그렇게 다 내려놓고만 싶은 날, 재경스님을 만났다. 스님은 말씀하셨다.
“조사 스님 말씀 중에 ‘분향세발 과여생 焚香洗鉢 過餘生’이란 말이 있어요. 향을 사르고 발우를 씻으며 여생을 보내는 것, 그것이 바로 수행자의 삶이지요.”
통도사에서 행자 시절을 보낼 때 주련에서 본 그 말씀을 재경 스님은 항시 마음에 품고 산단다. 항시 예불을 올리고 공양을 하는 삶, 특별해 보일 것 없으나 경건한 수행자의 삶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큰 말씀을 재경 스님의 자근자근한 목소리로 듣는 오후가 감사해진다.
현재 총무원 교육원 교육국장을 맡고 있는 재경 스님은 이 산 저 산 선방에도 다니고 총무원 사회부 사회국장을 역임하기도 했고 해인사에서 교무 소임을 살기도 했다.
“출가자로 살면서 제 나름의 마음가짐은, 수행자로써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할까 늘 탐구하며 어느 자리에서든 현재에 충실하자는 것입니다.”
학생일 땐 공부에, 소임을 볼 땐 소임에, 지금은 교육원에 있으니 교육국장으로써 충실하고자 한다는 말씀이다. 그 마음으로 살아 온 것이 지금의 스님을 있게 한 힘이지 않았을까 하신다.
“적극적으로 노력하면서 살아야, 오늘 이 자리에 살아 있다는 생명력을 느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총무원에서 소임을 보는 삶이 한편으로는 갑갑할 수도 있을 테지만 스님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이 ‘나’를 생각하기보다 자비의 마음으로 ‘우리’를 생각하며 살게 만든다고 한다. 그래서 스님은 상호관계 속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의무감이 든단다.
스님은 어려서부터 절이 낯설지 않고 스님들과의 인연도 있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절 문에 들어섰다. 깨달음도 중요하지만 수행자들의 깨달음을 위한 구도나 행각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결과는 나중에 평가되겠지만 그 과정들에 대해서도 소중히 하고 싶었고 그 모습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절집에 찾아들어 벌써 그 세월이 25년을 훌쩍 넘겼다.
처음 인연이 닿은 은사 스님을 따라 찾아간 곳은 울산의 어느 깊은 산골에 있는 통도사 말사였다. 그곳에서 행자생활을 하고 있자니 처음 생각한 수행자의 이상적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 큰 절로 가야겠다 싶어서 은사 스님의 말씀을 따라 통도사에서 행자생활을 시작했다. 스님은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을 짚으시다가 지금 교육원에서 하고 있는 일 중 행자 교육체계 개선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신다.
“지난 십 년간의 통계를 보면, 출가하겠다고 5명이 찾아왔을 경우 2명은 하산을 해요. 설문을 통해 원인을 분석해 보니, 행자님들이 출가할 때 수행자에 대해 가졌던 이상과 기대치가 있었는데 행자 생활을 하면서 허드렛일만 하니 수행자로 안착하는 데에 있어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저 역시 유사한 고민을 했고요.”
행자 기간은 스님이 되기 위한 과정이며 절집에서 살아가기 위한 습을 익히는 시간이라고 누군가 한 마디 말이라도 해준다면 그것에 수긍하고 마음을 잡아갈 수 있을 텐데, 그저 강압적으로 해야 한다고만 하니 마음을 다치는 행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행자들이 여럿인 본사 같은 경우는 그나마 행자 교육을 챙기지만 작은 절의 경우엔 사실 행자의 교육을 챙기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런 것을 해소해 주려는 것이 교육원의 행자 교육 체계 개선의 요지다. 우선은 행자 교육 지침이라는 책자를 만들어서 배포를 하고 있고, 전 사찰의 출가한지 두 달 남짓 된 스님들을 모아 3박 4일 일정으로 행자 입문 교육이라는 오리엔테이션을 하기도 한다. 행자들이 출가할 때의 마음, 발심과 원력이 흐트러지지 않고 계속 정진해서 계를 받고 스님이 되어 수행을 하게끔 하고자 함이다. 어른 스님들이 참석해 당신들의 행자 생활을 얘기해 주시는 것도 행자들에겐 큰 위안이 되고 있다.
그 외에도 교육원에서는 교육기관 교과목 개편, 승려 연수교육 등 승가 교육의 전반적인 일을 하는데, 그동안 새로운 교육이 필요하다는 수많은 논의를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으로는 진행되지 않은 부분들을 실행시키고자 하는 부분이 많다.
“사회에서도 교육은 백년지대계라 하는데, 승가의 교육 정책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바뀌거나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지요.”
우선은 강원의 교과목을 한글과, 현대화, 체계화시켜 개편하고 있다. 예전부터 끊임없이 논의되어 왔으나 여러 가지 이유와 여러 단체의 이해관계 속에서 실행되지 못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 교육원 집행부에서는 교과 개편을 현실화하고자 하며 이미 일부분은 실행되고 있기도 하다.
1900년도에 접어들어 불교 교학을 체계화하기 위해 동국대학교의 전신인 명진학교가 세워지면서 불교의 선각자라 했던 스님들의 교육에 대한 의욕으로 11년 과정의 교과목이 만들어졌다. 그것이 1965년도 즈음 조계종이 통합 종단으로 다시 출범하면서 4년 과정으로 조정되어 다시 만들어졌다. 그 한자 중심의 교육이 현재 2010년까지 마치 우리의 전통인 듯이 훈습되어 오고 있다며 스님은 시대에 맞는 공부의 필요성에 대해 말씀하신다.
“한문 교재를 보면 강원 4년 동안 어려운 난자 찾다가 끝나요. 산을 못 보고 난자라는 돌부리에 걸려 나무 하나만 보는 현실이지요. 시중에 불교 서적이 많은데 그런 것들을 다 방관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금강경으로 박사 학위 받은 사람만 해도 수 없이 많죠. 학위 받기까지 얼마나 연구했겠어요. 그런데 실제적으로 강원에선 금강경 펴놓고 어려운 난자 찾는 것을 시킵니다. 그러다 보니 금강경의 의미가 무엇인지, 무엇을 사유해야 하는지, 그 뜻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는 모두 잊고 난자라는 돌에 발이 걸려 더 이상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바깥으로 눈을 돌리면 얼마나 다양하고 전문적인 사람들이 많은데….”
일반 재가불자들이 불교가 어렵다고 하는데, 그것을 해소시키기 위해서 최소한의 고민을 한다면 우선 한글화에 노력해야 하며 그것은 승단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서도 불교를 흥성시키는 데에도 바탕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스님은 이 시대 사람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지향하는 지에 대해서도 스님들이 인식해야 한다고, 강원에서 스님들이 그런 교육도 받아야 후에 주지로써의 역할도 할 수 있고 포교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스님은 동국대 대학원에서 불교 미술사를 공부했다. 집안에 예술을 하는 분들이 있었는데 그런 영향인지 어려서부터 그림을 좋아했다. 그러나 출가하면서부터 모든 것이 단절되고 늦게야 공부를 하려 하니 미술사를 공부하고 싶어졌다. 절집에 살면서 불상이 왜 저기 앉아 있는지 탑의 모양새는 어떤지, 나름의 사연과 숨겨진 이야기들이 궁금해 불교 미술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님의 입을 통해 그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절에 살 때 보면, 사람들이 찾아와서 절은 왜 이리 무섭냐고 불교는 왜 이리 어렵냐고 말씀을 하시지요. 우선 눈에 보이는 사천왕상만 보고도 의미를 모른 채 무섭다고 하시는데, 우리가 그런 것들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전통이라는 틀에 갇혀 그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불교를 어렵다고 여기는 것 아니겠습니까.”
스님은 지금도 자료 수집을 하며 미술사 공부를 하고 있다. 환경이 주어지면 계속 적극적으로 공부해나갈 생각이다. 적극적인 회향을 위해서라도 ‘나’를 위한 공부가 아닌 ‘우리’를 위한 공부가 되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하신다. 그것이 자비를 실천해야 될 스님들의 사명이고 몫이 아니겠나 하신다.
“출가할 땐, 법상에 앉아야지 하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 것도 몰랐고요. 그땐 그저 스님이 좋았고 절집이 좋았지요.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할까 했을 땐, 적어도 ‘나’가 아닌 ‘우리’를 생각하면서 좀 더 자비스럽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하지요.”
항상 자비로운 삶을 말하지만 일상에서 자비를 놓치고 있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며, 남들에게 내 입장을 이해받기보다 스스로 모든 것에 있어 ‘우리’를 위해 자비스럽게 사는 것, 그것이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스님은 그것이 수행자로써의 회향이 아닌가 하신다.
스님의 말씀을 듣는 동안 창 밖에선 낙엽이 뚝뚝 떨어진다. 스님과 그 낙엽 지는 가을길을 걸으며 자근자근한 이야기를 듣는다.
“이맘때쯤엔 네팔의 포카라에 가면 참 좋아요. 그곳으로 향해 가는 마음도 있지만, 내 의지대로만 할 수 없는 것이 숙제 같은 우리의 몫이 아닌가 싶어요. 언젠가는 그곳의 맑은 호수와 만년설산을 보고 싶은 게 내 작은 꿈입니다.”
스님의 머리 위에도 어깨 위에도 낙엽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뭇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나무는 스님의 눈을 부시게 했다. 여름엔 이파리들이 영영 그렇게 싱싱할 것처럼 그 자리에 피어 그늘을 드리워주더니 때가 되니 이파리들은 그 자리를 떠나 바람을 타고 어디론가 불어가고 있었다. 어느 자리에서든 현실에 충실하자는 재경 스님의 말씀처럼 수처작주隨處作主, 푸르러야 아름다울 땐 지극하게 시퍼렇고 바스러져야 아름다울 땐 발밑에서 형체 없이 바스러지는 나뭇잎은 그래서 아름다운가. 그래서 수행자의 걸음은 고요하고 쓸쓸하게 아름다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