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산골,동안거를 마치고 돌아오면 흰 눈이 그대로 있어 큰대자()로 벌렁 드러누워 눈도장을 찍다 휘적휘적 산을 오르면 보랏빛 처녀치마가 군락을 이루며 나그네를 맞이하는 곳.
봄이 오면 두릅과 더덕, 각양각색의 산나물들이 끊임없이 산을 오르라 손짓하고,
길섶엔 개망초가 가로수가됐다 달맞이꽃이 가로수가됐다 하다간
동자새와 검은등뻐꾸기, 걸걸한 목소리의 산비둘기마저 슬피 울다간 자리엔 어느새 노오란 마타리가 피어 가을을 부른다.
그러면 여름은 또 자신을 미련 없이 내어주고 고요히 물러 나는 곳.
연못가 피고지던 어리연꽃도, 물매화도, 용담초도 꽃잎을 떨구면
온 산을 물들이던 낙엽마저 또 본래 그 뿌리로 돌아간다.
자신의 설 자리와 물러날 자리를 분명히 아는 자연의 섭리는
그래서 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저마다의 발밑을 바라보게 하는가보다.
청색의 푸르름이 다른것에 의존하여 존재하지 않듯이
낙엽지는 저 산 또한 그 자체일 뿐이란 걸 여실히 가르켜 주는 곳.
어느새 동안거 결제가 다가온다.
이제 겨울채비를 하고 토굴을 나서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김장도 하고, 두엄밭을 정리해서 고두밥지어 황설탕뿌려 유기농 거름으로 만들어놓고,
수도꼭지도 얼지 않게 보온을 해야 하고,
채전밭 베어둔 옥수숫대와 고추대도 거둬들여 태워야한다.
그런데 한 보름 토굴을 비워둔 탓에 갑작스런 한파로 연못에 살얼음이 가득하더니
부레옥잠이 얼어버렸다. 진즉에 떠서 보일러실에 옮겨뒀어야했었는데…
짐짓 미안한 맘에 얼음을 밀치고 만져본다.
뿌리가 살아있는 듯 한데도 옆에 계시던 아랫마을 엘리지오거사님과 안젤라보살님 내외는 손사레를 치시며 그냥 두라신다.
봄이 되면 개구리와 미생물들에게 행여 덕이 될까? 둬보기로 했지만 여간 안쓰러운게 아니다.
그래도 개연꽃과 어리연꽃은 연못속에 더 깊이 침잠해 낙엽진 제 잎을 물위에 빨갛게 띄우고선 뿌리를 꼿꼿이 박아둔 채 의연히 서있다.
내 본질의 중심을 향해 한치의 빈틈도없이 취모리를 들이대는 수행자의 모습처럼 말이다.
이렇듯 매사가 그리 녹녹치 않은게 토굴 살림살이다.
몸과 맘의 상태를 거듭거듭 살펴 마음자리를 들여다보며
편안하고 자연스레 공부를 지어가듯 하나하나 밀밀히 챙겨야 하지만
게으른 천성 때문인지 늘 있는 그대로 두고선 그냥 보는 것을 즐기는 편이라
미처 헤아리지 못한 부주의로 부레옥잠을 상하게 해 괜스레 맘이 아프다.
숲속에 사는 짐승과 새와 나무는 아무말 하지않듯이
텅빈하늘과 충만한 대지속에 누구의 탓도없이 아름다이 조화를 이루며 사는것이
산속에 홀로사는 즐거움이기도 하리라.
오늘은 유난히
계곡도 물도 고요하다.흐르지 않듯 흐른다.
산도 나무도 고요하다.움직임없이 움직인다.
그래도 낙엽은 상처없이 지고 또 진다.마지막 잎새까지...
마치 이 대지의 원소가 되기위해 이 땅의 무량중생에게 삶의 바탕이 되기위해
그 근원으로 돌아 가듯이...
가을에 잎이 떨어진다고 나무가 뿌리째 죽는 것이 아니리라.
뿌리는 그대로 살아서 봄이 오면 다시 잎이 돋고 꽃이 필 것이니까.
뿌리가 싱싱하면 가지와 잎이 절로 푸르러 썩을 일도 없을 것이다.
아! 시들지 않는 지혜의 나무를 자라게 하기위해 저 산의 나무들은 그렇게 잎을 떨구나 보다.
오온五蘊의 검은구름에 덮여 항아리 속 불빛이 제 빛을 잃지 않게
은밀히 내장된 마음의 애착과 자만심의 잎을 이제 이 가을에 뚝-떨궈야겠다.
아마도 존재계의 실상은
나와 대상을 분리할래야 분리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닫게 하려고
가을은 그렇게 커다란 가르침으로 이 깊은 토굴까지 왔다가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