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들어 어느 날 저녁, 세종문화회관 소극장으로 혼자 공연을 보러갔다. 하고 한날 막오르는 공연을 ‘안 보러 가는’ 재미도 없지 않지만 직업이 직업인지라 중요한 일이기도 하고, 또 무대에 대한 사랑 같은 게 있어 늘상 극장을 들락거리는 셈이다.
그날 서울시립무용단의 ‘멩가나무열매 이야기’가 막오르기를 기다리며 앉아 있는 동안 잠깐 스쳐가는 적막감에, 혼자 6.25때의 한 비극적 여인상을 그린 이야기를 떠올리며 가방 속에서 거울을 꺼내 만지작거리다가, 그 작은 거울 속에 뒷자리에 비껴 앉은 낯익은 작가의 얼굴이 비친 것을 보았다. 자기작품이 무용으로 꾸며진 것을 보러 그날 첫무대에 온 것이리라. 그 작가는 순간, 6.25무렵 화려했던 젊음의 나이로 남북으로 갈린 사상의 차이 때문에 누구보다 드라머틱한 생을 살았던 내 회상 속의 여성으로 보였다. 순간적으로 비쳐보인 실제의 드라머를 우연히 극장 객석에서 보았다는 묘한 느낌을 가졌다.
언제부터인지 그렇게 군중 틈에 섞인모습으로 객석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듯 내 주변을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다. 몇 개의 장면으로 기억되는, 어렸을 때의 기억도 그렇다.
원형적인 강렬한 인간상을 처음 느낀것은 오십년대 문학지에 실렸던, 내 또래 소년의 모습에서였다. 벌어진 앞니 틈으로 침을 탁 뱉어서 돌멩이 같은 걸 정확하게 맞추고, 전쟁을 치룬 뒤의 스산한 풍경 속에서, 제 또래의 아이들에게 신비한 존재로 군림하던 장수. 소설은 장수를 흠모하다시피 따르는, 그림 그리는 ‘내’ 가 서술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어느 날 장수가 특별히 ‘나’를 불러내어, 수업을 마친 뒤에 그림 도구를 챙겨서 학교 담장 아래로 오게 한다. 흥분해서 약속 장소로 간 ‘나’ 에게, 장수는 해골의 십자뼈를 엇갈려 쥐고 양손을 가슴에 댄 채로 자기의 초상화를 그리라고 명령한다. ‘나’ 는 이젤을 내동댕이치고 도망치고 만다…
그 후 가끔씩, 작자도 제목도 모르는 그 소설의 ‘나’와 장수가 불현듯 떠오르곤 했다. 장수로 상징되는 원형의 기억이 있고, 그옆에 ‘나’라는 존재가 있어, 내가 커오면서 잊을 듯 말 듯하며 의식을 통반해 온 느낌이 든다. ‘장수가 지금은 커서 어떻게 됐을까’ 하고 나는 더러 생각했다.
장수가 내게 원형의 기억으로 떠오르게 된 것은, 뒤늦게 대학원에 다니면서 ‘원형의 침전된 기억’이라는 문학적 테마를 공부하던 때였다. 어느 논문에서 ‘예술을 통한 집단 무의식의 원형’을 다루며 60년대의 작가 김 승옥이 쓴 단편을 인용하여, 원형의 상징에 따라분석한 것을 보게 되었다.
학기말 리포트를 쓰며 나는 그 논문의 내용 분석을 다시 인용하고, 아주 멋진 리포트를 썼다고 혼자 의기양양해 있었다. 틀림없이 A 학점일 거라고 생각해서 미리 광고까지 했는데, 시험결과는 엉뚱하게 그 과목만 B를 맞았다. 그 때 내가 낭패해하던 모습이 만화같이 떠오른다. 어쨌든 그때 이후로 내가 막연히 생각해 온 장수의 이미지에 ‘원형의 기억’ 어쩌구하는 형용사가 불게 되었다.
나이가 지금에 이르도록 살아오며 갖게 된 몇몇 연상 가운데에서도, 해골의 뼈를 쥔 장수의 모습은 특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와 함께 크고 같이 움직이는, 내 그림자와도 같은 카운터파트가 되었나보다. 장수를 전쟁 뒤의 배경 속에서 인식했다는 사실이 그렇게 강렬했던 것일까.
장수는 내가 살아가며 만난 사람들 가운데 어떤 사람의 눈빛과 목소리와 말투에도 스며 있었고, 장수를 기억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 가운데에도 또 그 태도에도 스며 있었다. 어쩌면 내가 극장에서 본, 거울에 비친 사람이나 아니면 내 자신이 그였는지도 모른다.
소란한 무대를 보고 나서 돌계단을 밟으며 광장으로 나서면서, 불빛에 비쳐 시든 꽃처럼 보이는 꽃다발 더미들을 다시 보았다. 꽃을 덮을 만큼 큰 리본에 쓰인, 꽃다발을 보낸 이들의 이름은 현실감을 일깨워 주고, 화강석의 돌바닥과 돌계단을 제법 오래 걷는다는 건 공연 내용이 어떻든 세종문화회관에 오는 것에 약간의 상쾌함을 더해 준다.
광화문의 인파에 섞이면서는 공연을 신문사 일과 연관시켜 생각하는 것도 모두 잊고 말았다. 나중에 멩가나무가 무슨 나무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누군가 ‘숲과 나무’ 라고 하는 말을 들으며, 나는 깜짝 놀라 “뭐? ‘숙가나무’ 라는 것도 있어?” 했다. 맹가와 숙가는 돌림자 나무 이름인가 싶었다.
‘맹가나무열매이야기’ 무용 공연 이후에도 일 때문에 공연을 보러 가는 일이 계속되었다. 앞부분만 보다가 자고 온 연극도 있고, 손이 아프게 박수 치며 행복해한 연극도 있었다. 친구들과의 떠들썩한 어울림과 늦은밤의 차, 그리고 웃음 소리, 때로는 공허함 같은 감정이 교차되곤 했다.
아직 며칠 더 십이월의 소란함을 겪고나야 정초가 된다. 연휴 사흘이 있다는 것 밖에는 그다지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그래도 올해의 일을 마감한다는 게 기쁘게 느껴진다.
정초엔 답답한 무대 같은 것은 안 보고싶다. 그저 무심히 눈내리는 걸 볼 수 있었으면 한다. 작년 정초, 해인사에서 돌아오던 길에 본 그 눈내린 풍경과, 미끄러운 눈길을 고집스레 떠난 초보 운전자들을 걱정하여, 뒤따라와 구해준 그런 인연의 고움을 다시 한번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