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횡야도함추벽船橫野渡涵秋碧하니다시 동안거 결제를 맞이하였습니다. 석 달의 기간이 차면 결제가 끝나는 해제일이 오겠
지만 그 공덕은 시작과 끝이 없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반드시 만 리 전체가 하나의 쇳덩어
리인 듯이 여긴다면, 오로지 본래부터 참구하며 또 죽음을 무릅쓰고 대결해야 할 화두만 있
을 뿐입니다. 깨달을 수 있는 것인지 혹은 깨닫지 못할 것인지조차도 따지지 말아야 할 것이
니 하물며 다른 것을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동산洞山 선사께서 신산승밀神山僧密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무엇을 하고 있는가?”
“보시다시피 바느질을 하고 있습니다.”
“바느질하는 일이 어떤 것인가?”
“한 땀 한 땀이 비슷합니다.”
그러자 선사는 큰 목소리로 꾸짖듯이 되물었습니다.
“20년을 수행했다는 납자의 답변이 겨우 그 정도밖에 안 되는가?”
그러자 승밀 스님은 흠칫하며 바느질을 멈추고 다시 공손하게 물었습니다.
“장로께서는 어떠하십니까?”
이에 선사는 말했습니다.
“마치 대지 전체에 불이 붙은 것과 같은 도리니라.”
그렇습니다. 참선공부는 한 땀 한 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순간에 온 천지를 불태워버
리는 일입니다. 옛사람들의 공안은 1700개 모두가 생각하거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계로
부터 흘러나온 것임을 결제대중은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한 생각에 물드
는 순간 천산千山의 거리만큼 멀어지고야 말 것입니다. 요즈음 결제하며 공부한다는 납자들
은 애써 생각을 지어내어 화두를 헤아리려고만 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스승이나 도반들과 함께 송고집頌古集을 익히는 것을 일로 삼습니다. 하지만 책 안의 글은 일
언반구까지 그 모두가 더러운 침과 같아서 그것에 미혹된다면 영원히 깨달음의 문을 막아버
리게 된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그것조차도 사실 알고 보면 커다란
허물덩어리일 뿐입니다. 하물며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중언부언 게송을 지어대거나 염
고拈古하는 짓거리를 한다면 이 짓을 해서 도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것입니까? 이는 마치 측
간에다가 단청을 칠하여 냄새만 더하는 꼴과 같은 것입니다.
이제 진실로 참선에 뜻을 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이와 같은 나쁜 지각과 습관을 방바닥
에 깔고서 꾹 눌러앉아 있어야 합니다. 그 위에서 오로지 꿰맨 틈이 조금도 없는 것처럼 분별
이 들어갈 여지가 전혀 없는 경계 속에서 오직 화두 하나만을 들고서 궁구해야만 합니다. 분
연히 죽음을 무릅쓰고 대결해야 할 것과 마주친 듯이 단칼에 잘라낼 것처럼 집중해야 할 것
입니다. 제대로 된 납자라면 반드시 이것을 해결한 이후라야 이튿날 아침에 밥을 먹을 자격
이 있는 것입니다. 만약 이와 같이 마음을 쓰고 있다면 깨달음의 보물이 있는 곳이 좀더 가
까이 나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이는 고인들이 결단코 공부인을 속이기 위하여 그냥 방편으
로 삼아서 하신 말씀이 절대로 아닙니다. 고구정녕하게 후학들을 경책하는 마음에서 절절이
우러나온 큰 말씀들입니다.
결제라고 하여 고요한 경계에만 스스로를 묶어두려고 해서도 절대 안 되는 일입니다. 활발
발한 선기禪機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면 썩은 물에 잠겨 있는 산 송장과 진배없습니다. 썩
은 물에 잠겨 있으면서도 썩은 물인 줄도 모르고 거기에 편안하게 안주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제대로 간화선을 공부하려는 납자가 아닙니다. 공부를 함에 시끄러운 것을 피하여 고요한 곳
으로 가서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 귀신굴 속의 살림살이를 지어서는 절대로 안 될
것입니다. 혹여 그것을 공부라고 여겨서도 절대로 안 될 것입니다. 옛선사들은 이것을 흑산
밑에 앉아서 썩은 물에 잠겨 있는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공부가 무슨 제대로 된
공부이며, 또 무엇을 제대로 이룰 수 있겠습니까?
때로는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나는 것만 못할 때도 있습니다. 만
약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도 죽을 것이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나도 죽을 경우가 있다고 합시다.
그렇다고 해서 나아가지도 않고 물러서지도 않는다면 이것 역시 썩은 물에 잠겨 죽는 신세를
면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삼동결제 동안 진퇴양난의 이런 곤경에 처한 것이 곧 내 몸뚱어리임을 반드시 자각하고서
이를 벗어나는 길을 반드시 찾아내야만 할 것입니다.
대해번신大海番身한다면
불방탈쇄不妨脫洒하리라
바다에서 몸을 완전히 뒤집는다면
틀림없이 속박의 때를 벗어나리라.
불기2554(2010)년 동안거 결제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