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높고 험한 가야산 칠불봉에 커다란 바위가 하나 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바위를 덩치바위라고 불렀습니다. 덩치바위의 얼굴은 울퉁불퉁 못 생긴 감자 같습니다. 곰처럼 커다란 몸은 석탄보다 시커멓고 군데군데 이끼까지 끼어 지저분합니다.
\"나는 왜 이렇게 못 생겼을까? 그리고 왜 이렇게 뚱뚱하고 지저분하지?\"
덩치바위는 그런 생각만 하면 언제나 속이 상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런 덩치바위의 마음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나도 다른 바위친구들처럼 동글동글 예뻐지고 싶어.\"
어느 날, 덩치바위는 숨을 헐떡거리며 산 위를 넘어가는 바람에게 말했습니다.
\"그래? 하지만 난 네 부탁을 들어줄 수 없어. 난 지금 산을 올라오느라 너무 지쳤거든. 하지만, 저기 홍류동 골짜기에 살고 있는 냇물한테 부탁해 보렴. 냇물은 지치지도 않고 힘도 세니까 네 소원을 들어줄 수 있을 거야.\"
바람은 크게 숨을 한번 몰아쉬더니 그대로 \'휘이잉!\' 산을 넘어가 버렸습니다.
\"냇물이라고? 냇물만 만나면 나도 다른 친구들처럼 예뻐질 수 있을 텐데...\"
하지만 덩치바위는 냇물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도 덩치바위는 매일같이 냇물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쏴아! 쏴아!\' 파도 소리를 내며 소나기가 쏟아졌습니다.
\"나도 다른 바위친구들처럼 동그랗고 반짝거리고 싶어.\"
덩치바위는 얼굴에 흘러내리는 빗방울에게 말했습니다.
\"그런 거라면 홍류동 골짜기에 살고 있는 냇물한테 부탁해 봐. 우리는 아직 작고 어려서 네 부탁을 들어줄 수가 없어. 그리고 난 빨리 흘러가야 해. 그래야 친구들이랑 만날 수 있거든.\"
\"그럼 넌 냇물이 아니니?\"
\"아니, 난 빗방울이야. 우리 빗방울 친구들이 모이면 냇물이 되는 거야. 그래! 우리 친구들을 만나면 꼭 네 얘기를 해줄게.\"
빗방울은 덩치바위 발등 위로 뛰어내렸습니다. 그리곤 다른 빗방울들과 함께 순식간에 산 아래로 흘러가 버렸습니다.
\"어떻게 해야 냇물을 만날 수 있지? 냇물만 만날 수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할테야.\"
다시 덩치바위는 냇물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갔습니다. 그리고 추운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매운 칼바람이 덩치바위 몸을 파고들었습니다.
\"아, 추워!\"
덩치바위는 오들오들 떨며 잔뜩 몸을 웅크렸습니다. 그런 덩치바위 어깨 위로 하얀 송이눈이 펑펑 내려앉았습니다.
\"냇물아, 나도 너처럼 하얗고 예뻐지고 싶어.\"
덩치바위는 어깨 위에 소복이 쌓인 흰 눈에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난 냇물이 아닌 걸. 난 전에 만났던 빗방울이야.\"
\"빗방울이라고? 그런데 넌 아주 달라졌는걸.\"
덩치바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우리 빗방울들은 겨울이 되면 이런 모습으로 잠을 자는 거야. 그러다 봄이 되면 산골짜기에서 냇물이 되는 거야.\"
\"냇물이 된다고!\"
흰눈의 말에 덩치바위는 귀가 솔깃해졌습니다. 가슴까지 쿵쿵 뛰었습니다.
\"너희들이 만나는 산골짜기로 나도 데려가 줘.\"
덩치바위는 흰 눈에게 애원했습니다. 하지만 흰눈은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난 너를 데려갈 만큼 힘이 세질 못해. 하지만 네가 골짜기까지 오면 네 소원을 들어줄 수 있을 거야.\"
덩치바위는 흰눈의 그 말에 주먹만한 눈에서 자꾸만 눈물이 났습니다. 눈물은 고드름이 되어 주렁주렁 턱에 매달렸습니다. 얼마나 슬프던지 터질 듯이 아픈 가슴은 그만 \'쩌어억!\' 하고 금이 갔습니다.
그렇게 겨울이 가고 가야산 칠불봉에 따뜻한 봄이 찾아왔습니다. 덩치바위의 어깨에 쌓여있던 흰눈도 어느새 녹기 시작했습니다.
\"덩치바위야, 잘 있어.\"
잠에서 깬 흰눈이 물이 되어 산 아래로 흘러가며 손을 흔듭니다.
\"아, 나도 골짜기에 갈 수 있다면...하지만 난 움직일 수가 없는 걸...\"
덩치바위는 흰눈이 흘러간 산 아래를 내려다봅니다. 슬픈 마음에 덩치바위의 가슴은 또다시 \'쩌억!하고 금이 갔습니다. 그 바람에 덩치바위 가슴엔 그만 커다란 틈이 생겨났습니다.
그런, 어느 날이었습니다. 어디선가 꽃씨 하나가 날아와 덩치바위의 금 간 가슴속에 떨어졌습니다.
\"이게 뭐지?\"
덩치바위는 자기 가슴에 떨어진 꽃씨를 가만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솜털우산을 쓴 꽃씨는 작고 귀여웠습니다. 꽃씨는 먼 길을 오느라 피곤했는지 깊은 잠이 들어 꼼짝도 하질 않습니다. 그렇게 밤이 되고, 아침이 되고 또 몇 날이 흘러갔습니다.
\"아저씨!... 아저씨!\"
덩치바위는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여기에요, 여기. 참, 아저씨는 덩치만 컸지 바본가 봐. 자기 몸속에 있는 나를 몰라보다니 말에요.\"
덩치바위는 깜짝 놀랐습니다. 언제 깨어났는지 꽃씨가 솜털우산을 접고 뾰로통이 덩치바위를 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넌 누구니?\"
덩치바위는 가슴속을 들여다보며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전 민들레 꽃씨이에요. 나중에 노랗고 예쁜 꽃이 될 거에요.\"
\"꽃이 된다고?\"
\"네. 그런데 아저씨 가슴은 너무 좁고 어두워요. 뿌리를 뻗을 수도 없고 잎을 키 울 수도 없어요. 전 부드러운 흙이 필요한데 모두 딱딱하기만 해요.\"
\"흙이 필요하다고? 그래, 가만있자 그래, 그래...이러면 되겠구나.\"
덩치바위는 힘껏 가슴을 벌렸습니다. 그러자 금이 간 가슴이 발밑까지 뻐어억! 갈라지면서 밟고 있던 부드러운 흙이 나타났습니다. 민들레 꽃씨는 그 흙 위로 바람을 타고 폴짝! 뛰어내렸습니다.
\"아, 이젠 됐어요. 발도 편하고 제가 마음 놓고 자랄 흙도 생겼어요. 하지만 아저씨를 아프게 해드릴 생각은 없었어요.\"
민들레 꽃씨는 그만 울상이 되었습니다.
\"괜찮아, 괜찮아. 그 대신 네가 말한 그 꽃이라는 걸 보여줄 수 있겠니?\"
\"네, 무럭무럭 자라서 아저씨 맘에 꼭 드는 꽃이 될게요.\"
민들레 꽃씨가 방긋 웃으며 말했습니다. 울퉁불퉁 못 생긴 덩치바위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퍼졌습니다.
민들레 꽃씨는 덩치바위의 가슴에서 하루가 다르게 자라났습니다. 머리엔 초록모자 같은 떡잎이 생겼다가 다시 톱날 같은 잎이 생기고, 곧게 뻗은 대궁에는 어느새 봉긋한 봉우리가 맺혔습니다. 덩치바위는 그런 민들레를 바라보며 민들레가 어서 꽃을 피우길 기다렸습니다.
그런 어느 날 아침이었습니다. 덩치바위는 기분 좋은 향기를 맡으며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마침내 민들레가 꽃을 피운 것입니다. 덩치바위의 가슴에서 민들레는 아침 햇살을 반짝이며 노란 꽃잎을 활짝 펼쳐 놓았습니다.
\"얘 민들레야. 넌 정말 예쁘구나.\"
\"모두 아저씨 덕분인 걸요. 저는 이렇게 아저씨를 위해 꽃을 피울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뻐요.\"
\"그럼 너는 꽃을 피우는 일 말고 또 할 일이 있니?\"
\"네. 아직 씨앗을 맺는 일이 남았어요.\"
\"씨앗을 맺는다고?\"
\"네. 아저씨랑 처음 만났을 때처럼 저는 씨앗이 되었다가 꽃을 피우고 다시 씨앗 이 되는 거에요.\"
\"빗방울이 흰눈이 되었다가 다시 빗방울이 되는 것처럼?\"
\"네. 하지만 그럴려면 나비가 저를 찾아내야 할 텐데 여긴 너무 좁아서 나비들이 저를 찾지 못할 거에요.\"
민들레꽃은 힘없이 말했습니다. 덩치바위는 자기 때문에 씨앗을 맺을 수 없는 민들레꽃이 너무 가엾어 보였습니다.
\"얘, 민들레야. 할 일이 남았으면 어서어서 그 일을 끝내야지 않겠니? 그러고 보니 나도 아직 할 일이 남은 것 같구나.\"
덩치바위는 한참동안 민들레꽃을 바라보았습니다. 민들레꽃도 노란 눈망울을 또록이며 오랫동안 덩치바위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덩치바위는 마지막 힘을 다해 힘껏 가슴을 벌렸습니다. 그런 덩치바위를 바라보는 민들레의 노란 눈망울에 그렁그렁 이슬이 맺힙니다.
\'쿠루루루루 쾅!\' 힘껏 가슴을 벌린 덩치바위가 두 동강이 납니다. 그리곤 까마득히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집니다.
\"민들레야, 꼭 씨를 맺어야 해!\"
덩치바위는 그 말을 남기곤 홍류동 골짜기 냇물 속으로 풍덩! 가라앉았습니다.
\"아! 맞아, 산꼭대기에 살던 덩치바위야.\"
\"그런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자, 자. 덩치바위를 데리고 가자. 이러다간 바다까지 가는데 너무 늦겠어.\"
덩치바위는 냇물이 졸졸거리며 떠드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산꼭대기에 두고 온 민들레 생각에 덩치바위는 그렇게 바라던 냇물을 만난 것이 하나도 기쁘지 않았습니다.
\'영차! 영차!\' 냇물이 덩치바위를 굴리며 흘러갑니다. 덩치바위는 다른 바위 친구들과 이리저리 부딪치며 자꾸만 산골짜기 아래로 굴러갑니다.
\'데구르르, 탁! 뒤그르르 ,탁!\' 덩치바위의 몸은 한번씩 구를 때마다 부서집니다. 또, 다른 바위 친구들과 부딪치면서 깨어져 나갑니다.
\"아야, 아야! 너무 아파, 정말 못 참겠어.\"
참을성 없는 바위들이 하나씩 둘씩 냇가로 기어 올라가도 덩치바위는 입술을 꼭 깨물고 참아냈습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덩치바위는 어느덧 작고 예쁜 조약돌이 되어 강기슭에 앉아있었습니다.
\"어때? 나보다 반짝반짝 윤이 나는 조약돌은 없을 거야.\"
\"하지만 나처럼 동글고 귀엽진 못할 걸?\"
강기슭의 조약돌들은 강물에 얼굴을 비춰보며 종알종알 제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하지만 덩치바위는 칠불봉 꼭대기에 두고 온 민들레 생각에 언제나 가슴이 타는 것처럼 아프기만 합니다.
어느 맑은 가을날입니다. 덩치바위는 갑자기 하늘을 나는 것처럼 몸이 \'부웅!\' 떠오르는 걸 느꼈습니다.
\"아빠, 이 조약돌 좀 봐. 누가 그림을 그려놨어.\"
아빠와 놀러 나온 소년은 조약돌이 된 덩치바위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정말! 민들레 무늬가 새겨져 있구나. 아마 이 조약돌은 아주 큰 바위였을 때 민들레꽃하고 친구였을 거야.\"
\"민들레 하고요?\"
\"그래, 항상 마음속에 생각하는 친한 친구 같은 거지.\"
\"그럼 이 조약돌이 이만큼 큰 바위의 마음이야?\"
\"그래, 이 조약돌은 민들레를 사랑한 큰 바위의 마음일 거야.\"
소년의 아빠는 소년을 번쩍 안아 어깨 위에 무동을 태웁니다.
\"아빠, 저기, 저기. \"
소년이 아빠 무동을 타고 손짓합니다. 거기엔 민들레들이 솜털우산을 하얗게 펼쳐 쓰고 있습니다.
\"민들레 꽃씨구나. \"
소년의 아빠가 민들레 꽃씨 대궁을 소년에게 꺾어줍니다. 소년은 아빠 무등 위에서 입술을 모아 민들레 꽃씨를 \'후우우!\' 붑니다. 민들레 꽃씨들이 자꾸자꾸 날아갑니다. 조약돌이 된 덩치바위는 소년의 손바닥에 앉아 훨훨 날아가는 민들레 꽃씨들을 보고 있습니다.
\"아저씨!... 아저씨, 덩치바위 아저씨!\"
어디선가 덩치바위를 부르는 민들레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습니다. 덩치바위는 가슴에 새겨진 민들레를 보며 가만히 미소를 짓습니다. 가슴에 새겨진 민들레도 그런 덩치바위를 마주보며 환한 미소를 보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