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추위에 대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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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로 본 세상 - 정은진/프리랜서 포토저널리스트
2010년 11월 345호
비오고 습하던 질긴 여름과 짧은 가을이 지나고 어느덧 스웨터를 입는 초겨울이 왔다. 그동안 여름내 썼던 얇은 이불과 베겟잎을 겨울것으로 바꾸니 언제 폭염이 있었냐는 듯 그동안의 기억이 지워지는 듯 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지울 수 없는 계절의 아픔이 있다. 바로 아프간의 혹한이다. 소련군도 두손두발 다 들었다는 아프간의 살을 에는 듯한 추위! 바로 그 아프간의 추위는 평생 못 잊을 것이다.
전기가 나오지 않는 아프간에서 주민들은 어떻게 추위를 날까? 전기나 가스공급도 없고, 열병합 발전소도, 원자력 발전소도 없는 아프간에서는 ‘부카리’라는 작은 철제 난로에 장작이나 석탄을 넣어 지피면서 산다. 그 부카리는 마치 60-70년대 학교 교실 한 가운데 있던 난로와 아주 흡사하게 생겼으며, 난로에서 벽을 뚫고 나가는 철제 파이프도 거의 똑같다. 가끔 그 파이프에서 연기가 새기도 하지만.
조금 돈이 있으면 가스통을 연결하는 파키스탄제 히터를 사용할 수도 있지만, 이는 극소수의 부유층이나 외국인들의 경우다. 나는 외국인이었지만 히터가 부카리보다 상대적으로 비싸서 사지는 못했고, 그냥 집에 이미 설치돼 있던 부카리를 이용했다. 민둥산이 대부분인 아프간에서 어떻게 장작나무를 구할까? 그만큼 장작나무에 대한 수요는 거의 온 국민인데 공급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당연지사. 따라서 석탄과 가솔린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마치 우리의 연탄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러나 부카리는 그 난방수명이 상당히 짧다. 저녁께 장작을 지피기 시작하면 새벽 1시면 그 불이 다 소진된다. 저녁시간 반짝 훈기로 온 밤을 지새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잠도 일찍 자는 게 장땡이다. 따뜻할 때 멋모르고 자야 그나마 아침에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이불도 아프간에는 우리처럼 벨로아 이불이 없다. 그래서 외국인들이 가져온 오리털 이불을 가끔 사용하기도 하지만 나같이 추위를 많이 타는 경우에는 그것갖고도 부족하다. 중국에서 들여온 담요 3겹, 슬리핑백,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리털 잠바를 입고 자야 부카리의 온기 없이도 새벽을 날 수 있는 것이다.
그나마 카불은 위도 상 아래쪽에 위치해있지만 나머지 북부지방에서는 그 뼈를 파고드는 추위를 견뎌야 한다. 언제한번은 북부지방인 폴리홈리라는 곳에 통역을 데리고 혼자 취재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가솔린 몇 방울로 작동되는 부카리를 옆에 두고 중국 담요 3겹을 덮고 자도 추웠던 적이 있었다. 장작이 아닌 기름 부카리는 그 주변만 조금 따뜻했다. 그 때 엎친데 덮친 격으로 설사병까지 겹쳤다. 시멘트 벽으로 둘러쌓인 작고 후진 호텔방에서 하루종일 추위와 싸워야 했다. 정말 내가 왜 이렇게까지 고생을 해야하는 지 그 사실이 나를 더 괴롭혔다.
어떻게 아프간인들은 그런 추위를 견디는 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아프간을 침공했던 구 소련군들도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눈덮힌 힌두쿠시 산맥을 휘젖는 무자히딘 (이슬람 전사) 들의 모습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새삼 우리민족의 온돌이 너무 놀랍고 감사할 따름이다. 세계 어느곳을 가도 방바닥에서 열이 나오는 곳은 조선족이 사는 지역말고는 아직 못봤다. 우리도 전기와 가스가 없던 시절, 장작으로 난방을 해결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도 방 한구석에 시커멓게 탄 방구둘에서 가족끼리 이불을 덮고 옹기종기 사는 우리의 모습. 아프간인들도 온돌로 따뜻하게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