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 불교학생회에 가입한 인연으로 백천만겁토록 만나기 어려운 부처님 법을 만난 지도 어느덧 사반세기가 흘렀다. ‘무상정각 영원한 보살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바치겠나이다. 목숨걸고 수행하여 부처님의 진실한 뜻을 알겠나이다…’’라고 부처님전에 서원하고 맹세하고 얼마나 다짐하여 왔던가. 그런데 아직도 ‘버리는 공부’, ‘바치는 공부’ 하나 제대로 못한 채 비틀거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뜨거운 눈물이 흐름을 어찌할 수 없다.
말로는 공(空)이요, 본자청정(本自淸淨)이라 하면서도, 실지로는 집착(탐진치)에서 벗어나지 못한 곧 걸림없는 대자유인이 되지 못했음을 고백하지 않을수 없다.
돌이켜보면 여태까지 아만과 집착과 인색하고 교만한 마음으로, 욕심부리고 게으르게 자신을 속이며 이렁저렁 살아온 탓으로 억겁천생을 이렇게 갈팡질팡한 것이며, 이 생도 또한 이렇듯 허송한 것이 아닌가.
새해 새아침, 이제 새로 태어나는 마음, 다시 시작하는 마음, 거듭 출가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여 하루하루를 열심히 정진하겠다고 굳게 다짐해 본다.
동해바다 푸른물을 뚫고 찬란한 아침 해가 눈부시게 솟아오르는 그 서기어린 광경을 생각하며 우리 교단과 우리 조국의 희망찬 새 세계가 열리기를 기원한다. 부처님 뜻에 맞는, 신뢰받고 바르게 일하는 교단이 되어야 하겠고, 우리 조국에는 참된 민주화가 이루어져야겠다.
이 땅의 혼돈된 가치 세계가 바로 잡히고, 이 땅이 진실로 부처님의 위대한 가르침으로써 인간의 진정한 생명의 가치를 구현하는 삶의 마당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세계 구석구석이 검은 구름에 싸여 있고 그 속의 인간들은 탐진치 삼독에 물들어 있으니, 과연 이 세계는 불난 집(火宅)이며 이 사바는 고통의 바다(苦海)라 하겠다. 부처님께서 이 세계와 이 중생들을 건지시고자 이 땅에 오시어 감로법문을 열어 주셨으니, 부처님의 은혜는 이루 다말할 수가 없다.
중생구제의 사명을 지닌 우리 불자공동체(불교교단)는 이 땅의 모든 중생을 건지는 영원한 광명문이자 영원한 생명의 감로문이 되어야 한다. 세상이 어지럽고 중생이 흔들리고 고통의 아우성이 크면 클수록 불교에 대한 여망과 기대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로 중생의 고통을 건지고 세계의 혼돈을 바로 잡아 역사를 밝히는 시대적 사명을 우리 교단이 다하게 되기를, 우리 불교가 역사를 밝히며 겨레의 가슴가슴에 빛나는 슬기와 따뜻한 자애로움과 희망과 용기를 부어주고, 이 시대의 주역으로서 건재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따뜻한 형제애, 우정어린 도반 정신으로 서로 아끼고 격려하여, 지혜와 자비와 화합 가운데 부처님 법을 함께 배우고, 고통도 슬픔도 즐거움도 함께 나누어 가지며 부처님께 서로 인도하는 스님과 신도, 신도와 신도 관계가 되어야겠다.
이 땅에 태어나 어찌 보면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도 많지만, 이 경행스러움만으로도 기쁘게 살아갈 수 있게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새해 아침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