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새해 새아침에 드리는 나의 다짐, 나의 기원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특집 - 지환 1988년 01월 71호
새해 새아침을 맞으면 꼭 새로 태어나는 마음, 새 출발의 마음이 되고 싶어진다. 어디 새해 새아침이 따로 있으랴만,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순간이 영원과 만나는 시점이요 항상 새로움이 펼쳐지는 장이지만, 그래도 우리들의 약속으로 일년 365일을 정해 놓고 한 해가 가고 또 한 해가 오는 첫날이고 보면, 이 날 새해 새아침을 맞는 마음은 새로 태어나는 마음이 되고 싶다.
‘새로 태어남’은 때묻지 않고 신선하며 과거에 걸림없이 자유스럽고, 미래에 대한 희망의 평원이 펼쳐있을 뿐이니, 새로 태어난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것이랴. 마치 새 화폭에 새로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이, 지나간 찌꺼기에 물들거나 얼룩지지 않는 신선함 속에 마음껏 창조의 나래를 펴고 날 수 있는 것 아니냐. 나의 한 걸음 한 걸음에 성공의 발자국은 흔적없이 찍히고, 성취의 무영탑은 높이 솟구친다. 이 모두가 금빛 찬란한 참마음의 나툼이요 걸림없는 창조 위력인 진여의 대용(代用)일지니, ‘새로 태어남’은 생각만 해도 희망차고 가슴 뛰도록 기쁜 일이다.
어떻게 하여 이러한 ‘새로 태어남’이 진정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반야(般若)로써 우리의 참생명의 모습을 바로 봄으로써 가능하다. 그것은 본래 스스로 맑고 깨끗하고(本自淸浮) 남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不生不滅), 항하의 모래와 같이 두루 한없는 능력을 갖춘(圓滿俱足), 우리의 참마음에 눈뜨는 것이다. 우리의 본래 성품에 확신을 갖는 것이다. 나를 육체로 한정시키지 않고, 물질 환경의 종속 관계에서 파악하지 않으며, 업보 뭉치로 보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 얼마나 오랜 세월을 우리의 참성품을 보지 못하고 살아오고 있는가?
“모든 중생이 무시이래(無始以來)로 가지가지 고통을 받으며 끝없는 윤회를 거듭하고 있는 것은 어리석음(無明) 때문이니, 무엇을 어리석음이라 하는가? 마치 길을 잃어버린 사람이 사방을 바꿔 앓과 같아서, 동쪽을 서쪽이라 하고 남쪽을 북쪽이라 하는 것처럼, 흙과 물과 불과 바람의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몸뚱아리를 내 몸이라 하고,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을 통해 분별하는 마음인 육진연영(六塵緣影)을 내 마음이라 잘못 여김이니…”라고 하신 부처님 말씀과 같이, 우리는 이 몸뚱아리와 분별망상심을 ‘나’ 라고 고집하여 참성품을 보지 못한 채로 길고 긴 미혹의 길을 걸어오고 있다.
이제 새해 새아침. 이 길고 긴 미혹의 길에서 벗어나 새로 태어남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새겨 본다. 새로 태어난 끝없는 용기로 희망의 평원에 창조적인 삶을 펼쳐가고 싶다. 진정 새로 태어나기 위해 집착을 버리고 욕심을 버리고 ‘나’를 버리고 오직 부처님 뜻에 따라 살겠나이다 하고 두 손 모아 합장하며 새해의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싶다.

고등학생 때 불교학생회에 가입한 인연으로 백천만겁토록 만나기 어려운 부처님 법을 만난 지도 어느덧 사반세기가 흘렀다. ‘무상정각 영원한 보살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바치겠나이다. 목숨걸고 수행하여 부처님의 진실한 뜻을 알겠나이다…’’라고 부처님전에 서원하고 맹세하고 얼마나 다짐하여 왔던가. 그런데 아직도 ‘버리는 공부’, ‘바치는 공부’ 하나 제대로 못한 채 비틀거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뜨거운 눈물이 흐름을 어찌할 수 없다.
말로는 공(空)이요, 본자청정(本自淸淨)이라 하면서도, 실지로는 집착(탐진치)에서 벗어나지 못한 곧 걸림없는 대자유인이 되지 못했음을 고백하지 않을수 없다.
돌이켜보면 여태까지 아만과 집착과 인색하고 교만한 마음으로, 욕심부리고 게으르게 자신을 속이며 이렁저렁 살아온 탓으로 억겁천생을 이렇게 갈팡질팡한 것이며, 이 생도 또한 이렇듯 허송한 것이 아닌가.
새해 새아침, 이제 새로 태어나는 마음, 다시 시작하는 마음, 거듭 출가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여 하루하루를 열심히 정진하겠다고 굳게 다짐해 본다.

동해바다 푸른물을 뚫고 찬란한 아침 해가 눈부시게 솟아오르는 그 서기어린 광경을 생각하며 우리 교단과 우리 조국의 희망찬 새 세계가 열리기를 기원한다. 부처님 뜻에 맞는, 신뢰받고 바르게 일하는 교단이 되어야 하겠고, 우리 조국에는 참된 민주화가 이루어져야겠다.
이 땅의 혼돈된 가치 세계가 바로 잡히고, 이 땅이 진실로 부처님의 위대한 가르침으로써 인간의 진정한 생명의 가치를 구현하는 삶의 마당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세계 구석구석이 검은 구름에 싸여 있고 그 속의 인간들은 탐진치 삼독에 물들어 있으니, 과연 이 세계는 불난 집(火宅)이며 이 사바는 고통의 바다(苦海)라 하겠다. 부처님께서 이 세계와 이 중생들을 건지시고자 이 땅에 오시어 감로법문을 열어 주셨으니, 부처님의 은혜는 이루 다말할 수가 없다.
중생구제의 사명을 지닌 우리 불자공동체(불교교단)는 이 땅의 모든 중생을 건지는 영원한 광명문이자 영원한 생명의 감로문이 되어야 한다. 세상이 어지럽고 중생이 흔들리고 고통의 아우성이 크면 클수록 불교에 대한 여망과 기대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로 중생의 고통을 건지고 세계의 혼돈을 바로 잡아 역사를 밝히는 시대적 사명을 우리 교단이 다하게 되기를, 우리 불교가 역사를 밝히며 겨레의 가슴가슴에 빛나는 슬기와 따뜻한 자애로움과 희망과 용기를 부어주고, 이 시대의 주역으로서 건재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따뜻한 형제애, 우정어린 도반 정신으로 서로 아끼고 격려하여, 지혜와 자비와 화합 가운데 부처님 법을 함께 배우고, 고통도 슬픔도 즐거움도 함께 나누어 가지며 부처님께 서로 인도하는 스님과 신도, 신도와 신도 관계가 되어야겠다.
이 땅에 태어나 어찌 보면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도 많지만, 이 경행스러움만으로도 기쁘게 살아갈 수 있게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새해 아침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