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행본처 지지발처
아무리 다니고 다닌다 하더라도 늘상 본래의 그 자리이며, 다다르고 다다른다 하더라도 결국은 출발한 그 곳이다.
지구별에 잠시 다니러 온 여행자라는 숙업宿業에 의한 것인지, 더운데다가 길기까지 했던 맹렬한 여름을 치러서인지, 굳이 사색의 계절이라는 가을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반복되는 일상을 잠시 미루어 두고서 잠시라도 길을 떠나는 나그네가 되어서 나를 뒤돌아보고 점검하는 기회를 가져 보기에 적당한 시절이다.
인생을 통찰한 어느 시인詩人이 하늘로 돌아간다며 귀천歸天을 노래하고 마감한 것처럼, 내려오기 위해서 산에 오른다는 등산가의 명제처럼, 짧게는 돌아갈 곳이 있어서, 돌아오기 위해서 짐을 꾸리고 떠나는 것이며, 일생의 기나긴 시간으로 미루어 짐작하자면 결국에는 왔던 그 곳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서 한바탕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수구초심首丘初心, 미물인 여우도 죽을 때에는 머리를 제가 살던 언덕 쪽으로 향한다고 하니 모든 생명과 존재에게 보편적으로 갖추어져 있는 성품으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 길을 떠나는 방랑벽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한 순간도 여행을 꿈꾸거나 계획하지 않는 삶이 없는 것이리라 생각하게 된다. 그런 인생과 삶에서 행행본처요 지지발처라는 정의는 감탄을 자아내는 맞춤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여행은 보다 많은 접촉과 새롭고 낯선 경험을 통해서 시야를 넓히고 이해를 충족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다른 사람과 다른 지역의 문화와 풍속과 형편을 이해하여 나의 식견識見을 확대한다면 소기所期의 목적을 충족하고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확이충지擴而充之,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과 체험을 통해서 인식과 이해를 확대시키고 채우기 위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연柔軟한 사고와 포용적이고 넉넉하고 너그러운 마음가짐이 필수적이다. 또한 간소한 차림새와 최소한의 가벼운 짐을 통해서 보다 많은 경험과 문화를 느낄 수 있는 발품을 아끼지 않을 것이며, 마지막으로는 도움을 받거나 주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 적극적인 자세와 대처가 필요하다.
잠깐 동안의 여행에서와 같이 인생과 삶의 여행에서도 확이충지를 위한 조건은 그대로 적용된다. 길지 않은, 단기간의 여행이 아닌 몇 달, 몇 년, 몇 십년의 기나긴 여정일수록 더욱더 단출한 차림과 홀가분한 마음과 생활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첫째, 유연한 사고와 포용적이며 너그러운 마음은 중도中道의 실천과 다르지 않다. 절대적인 선이나 절대적인 악은 성립할 수 없다는 이해를 바탕으로 유有와 무無, 생生과 멸滅, 증增과 감減, 구垢와 정淨을 편 갈라서 어느 한 쪽을 배제하고 배척하기보다는 존재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도의 실천이다. 불생불멸不生不滅 불구부정不垢不淨 부증불감不增不減 등으로 부정에 부정을 거듭하는 것은 결국 하나하나의 입장과 각각의 관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강한 긍정의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여행을 떠나면서 간소한 차림새와 최소한의 가벼운 짐을 준비하는 것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두타행의 지침에 입각하고 수순하는 검소하고 소박한 무소유無所有의 생활을 영위하는 것과 동일하다.
셋째, 도움을 받거나 주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 적극적인 자세와 능동적인 대처로 자신의 시야와 이해의 지평을 넓혀서 도움이 절실한 지역과 사람들에게 서슴없는 혜택을 나누고 베풀어 주는 보시행布施行이야말로 최상의 여행을 성취하는 조건이다.
무소유로 일관된 진솔한 일생으로 맑고 향기로운 자취를 시현하시며 시대적인 스승이며 인도자이셨던 법정 큰스님의 검소하고 소박한 생활은 물론 죽음에 이르러 본처本處로 회귀廻歸하는 자리에 이르러서도 격식과 겉치레를 벗어버린 단출하지만 당당한 본연의 모습이야말로 가장 소탈하고 멋지고 호탕한 여행자의 진면목眞面目일 것이다.
깊어가는 가을, 오랫동안 꿈꾸고 계획하며 준비해온 여행을 드디어 감행敢行하는 당신과 나에게 던진다, 가벼운 보따리와 넓은 마음과 깊고 따뜻한 손길이 내딛는 발걸음보다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그리하여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목에서는 가벼운 차림새와 보퉁이는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체험과 접촉으로 풍성해질 것이며, 넓고 넉넉한 마음은 편견과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중도의 진리를 깨닫게 할 것이며, 깊고 따뜻한 도움의 손길은 자비로운 보시행으로 탄탄해 질 것이다.
무소유와 중도와 보시행, 행행본처 지지발처를 분명하게 보고 깨달은 지구촌을 여행하는 나그네들의 살림살이이며 마음이며 행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