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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호를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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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 조계종정 해인총림 방장 법전 스 2010년 11월 345호
방문객 하나 없이 천제굴이 조용하던 어느 날이었다. 저녁예불을 마친 뒤 방으로 건너가셨던 성철 노장이 내 방으로 왔다. 그런 일은 가끔 있었는데 그날은《증도가證道歌》가 담긴 신수대장경을 들고 오셨다. 노장은 내 앞으로 책을 쑥 내밀며 말씀하셨다.
“이거 공책에 베껴 써봐라.”
《증도가》는 중국 영가永嘉 스님의 시집이다. 육조 혜능 대사로부터 선의 요체를 듣고 난 영가 스님은 하룻밤에 증오證悟를 얻고는 그 심경을《증도가》에 담았다. 성철 노장이 동서양의 서적을 보며 영원한 진리의 문제를 풀기 위해 고뇌하던 시절, 홀연히 출가를 결심하게 만들었다는 책이기도 하다.
노장은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내가 젊어서는 다독을 했데이. 그런데 다 신통치 않았지만 《신심명信心銘》과《증도가》를 읽은 뒤로는 캄캄한 밤중에 횃불을 만난 것 같고 한밤중에 해가 뜨는 것 같았던 기라.”
노장은 당신이 감명 깊게 읽었던《증도가》를 내게 가르치고 싶었던 것이다.《증도가》를 받아든 나는 그날 밤부터 내용을 공책에 또박또박 써내려갔다.《증도가》를 배우기로 한 전날 밤, 다시 노장이 건너와 물으셨다.
“군불견君不見가? 이 말이 무슨 뜻인고?”
‘군불견’은 ‘군불견君不見 절학우위한도인絶學無爲閑道人 부제망상불구진不除妄想不求眞, 즉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배움이 끊어진 한가한 도인은 망상도 없애지 않고 진리도 구하지 않으니’로 시작되는《증도가》의 첫 글귀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노장의 등가죽을 차버리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말없이 가만히 앉아 있자 노장이 다시 물었다.
“군불견가, 이게 무슨 뜻이냔 말이다.”
이번엔 물러서지 않고 분명한 목소리도 대답했다.
“노장님께서 ‘군불견가’를 물으시면 제 발로 노장님의 등가죽을 차버리겠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노장이 뒷짐을 지고 서서 내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셨다. 나도 물러서지 않고 노장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은은한 등잔불 아래서 말없이 서로의 눈을 응시한 채 10여 분이 흘렀다.
노장이 침묵을 깨고 말씀하셨다.
“머리가 맑구나!”
훗날, 뚫어지게 나를 바라보았던 노장의 그 눈길이 바로 ‘선지禪旨’를 가르친 것임을 알았다.


누구 없는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