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재즈계를 대표하는 여성 보컬리스트인 웅산은 불교와 재즈(Jazz)의 공통점에 대해 ‘진정한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뛰어난 곡 해석력으로 잿빛 묻어나는 우울한 발라드에서 힘 있고 강한 비트의 노래까지, 모든 장르를 섭렵하고 있는 웅산은 <동아일보>(2009. 3. 17일자)와의 인터뷰에서 재즈의 매력을 이렇게 요약한 바 있다.
“재즈는 모든 것에 대해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 음악이죠. 저는 국악과 협연하기도 하고, 클래식 쪽에 가서 노래해 보기도 하고, 힙합을 하거나 드라마 음악도 하죠. 그때마다 발성이 달라요. 다른 장르의 음악을 접할 때마다 두려움이 아닌 도전정신이 생겨요. 재즈란 음악이 본래 즉흥적이잖아요. 그게 왜 그러냐 하면, 언제 누구랑 만나서도 커뮤니케이션이 되니까요. 재즈란 음악 자체가 두려움이 없는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17세에 구인사에서 2년 동안의 출가생활을 한 적이 있는 웅산은 특유의 불교적 감성을 노래안에 불어넣어 혼이 담겨있는 독특한 목소리로 국내뿐아니라 일본에서도 활발한 활동으로 재즈 매니아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 ‘재즈 보컬계의 스타일리스트’란 별명처럼 그의 노래는 그 어디에도 얽매이거나 머무는 바 없는 바람 같다. 그러나 자유롭게 요동치다가도 고요한 침묵으로 돌아오는듯한 묘한 음악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목소리의 음색과 음량, 기교를 극대화시키면서도 다른 악기와 조화된 음악 세계를 추구하는 웅산은 작곡할 때도 “일부러 쓰려 해서가 아니라 가만히 있으면 바람처럼 곡이 써진다”고 말할 정도로 무심無心의 상태에서 작업을 한다. 게다가 “누구든 내 음악을 듣고 위안이 된다면 그보다 행복한 일은 없을 것 같다”며, 모든 이를 행복하게 하는 음성공양이 내면을 탐구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매개임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곡과 가사도 없던 초기의 재즈가 몸과 음률로 인간의 내면을 표현했다면, 불교의 염불과도 유사성이 있다. 첫 일본 무대에서 피아노 없이 색소폰과 콘트라베이스만으로 1시간 내내 노래할 때 공간을 목소리로만 채우는 과정이 출가 수행의 첫 공간을 3000배와 염불로 채우던 경험과 같다.”(불교신문, 2010. 3. 27일자)
재즈는 20세기 초엽 발생한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 주州의 항구도시 뉴올리언스에서 흑인들의 생활과 문화를 바탕으로 발생한 독특한 음악양식이다. 흑인 노예 사이에서 불리던 노동요나 영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아프리카의 토속음악에서 그 원류를 찾을 수 있다. 흑인과 백인의 혼혈인 크리올의 문화 중에서 흑인의 브라스밴드가 연주하는 딕시 앙상블이 생겨났고, 그것이 1910년대의 시카고에서 파생되어 재즈라고 불리는 음악이 탄생했다. 그 후 30년대에는 뉴욕에서 P. 휘트먼에 의한 심포닉 재즈, B. 굿맨에 의한 스윙 재즈가 발생했고, 50년대에는 웨스트 코스트 재즈, 뉴욕의 하드 밥, 펑키 재즈가 재즈의 변화를 보여주었으며, 록의 전성기와 함께 쇠퇴했다. 최근에는 록 비트에 전자음을 더한 퓨전 재즈 형태로 발전하며 계보를 잇고 있는 재즈는 즉흥적인 연주가 강조되며, 연주자의 개성과 창조성이 부각된 사운드가 특징이다.
‘영혼이 자유로운 음악’으로 불리는 재즈는 일체의 고정관념을 초월한 무념無念에서 직관적으로 창조되는 음악으로서 선禪과 가장 유사한 정신을 표현하는 음악장르로 표현되고 있다. 크리스토퍼 무어는 《더티 잡》(황소연 역, 민음사, 2008)에서 재즈를 이렇게 표현한 바 있다.
“재즈는 선禪의 예술이야, 샌님아. 절제된 우연성. 수묵화처럼, 하이쿠(俳句: 일본의 아주 짧은 선시)처럼, 양궁처럼, 검도처럼 재즈는 계획된 것이 아니고 행하는 것이다. 연습하고 재능을 발견하고 그 순간에 자신의 모든 지식과 해석을 쏟아붓는 것이다.”
크리스토퍼 무어는 윈턴 마셜리스(미국의 트럼펫 연주가)의 말을 인용, “재즈에서는 매순간이 위기야”라는 말도 했다. 재즈의 창조적인 모험심은 백 척이나 되는 장대 끝에 서 있는 선禪 수행자들이 한 발 더 앞으로 내딛는 형상과 다름없다는 것. 수행자들이 목숨을 건 정진과정에서 한 순간도 머물지 않고 끝없이 초월하는 향상일로向上一路를 보여주는 듯하다. 구도자가 백척의 장대 위[百尺竿頭]에서 한 발 더 내디딜[進一步] 때 시방세계에 온 몸을 드러내며 진정한 깨달음에 이르게 되듯이, 일체의 고정관념이나 타성을 넘어선 두려움 없는 용기가 모든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위대한 음악을 창조한다고 볼 수 있다.
전형적인 틀이 없어서 다른 장르의 음악이 모방할 수 없는 재즈의 즉흥성과 현장성은 묵조선黙照禪에서 강조하는 현성공안現成公案과도 상통하는 맥락을 갖고 있다. 현성공안은 현재 눈앞에 펼쳐진 모든 현상이 진리라고 보는 입장이다.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일체의 현상이 진리 아닌 것이 없기에 특정한 형식을 벗어난 즉흥적인 연주 역시, 완성된 음악이 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이와 관련, 일본의 세계적인 재즈 피아니스트 사토 마사히코는 재즈만의 특성인 흔들거리는 스윙 율동감이나 불협화음 음계인 블루 노트(Blue note) 같은 음악적 장치들을 팝이나 클래식에서까지 구사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재즈의 진정한 가치는 이제 즉흥뿐”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몽골 태생의 재즈 보컬리스트인 사인호남치락은 재즈의 진정한 가치와 목표는 “쉬고 있는 두뇌에 충격을 주어 직관적 각성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재즈가 지향하는 ‘직관적 각성’이라는 말은 선종에서 중요시 하는 돈오頓悟 즉, ‘단박 깨침’이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수행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아닌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을 소멸함으로써 고통에서 벗어나 안락을 성취하는 이고득락離苦得樂에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번뇌의 불이 꺼진 열반 즉, 완전한 자유와 행복을 누리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이상이리라. 이렇게 볼 때, 재즈 연주가들은 창조적인 즉흥 연주를 통해 개인의 자유를 실현하는 동시에 청중과 함께 하나된 행복을 만끽하는 선禪 실천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