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의 세속적 이슬람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렌즈로 본 세상 - 정은진/프리랜서 포토저널리스트
2010년 10월 344호
전 세계에서 가장 이슬람 인구가 많은 나라는 어디일까? 사우디 아라비아? 이란? 아프가니스탄? 다 아니다. 정답은 놀랍게도 “인도네시아” 이다.
인도네시아는 전체 인구 약 2억3천명 중 86%인 1억9천여만명이 모슬렘들, 즉 이슬람 교도들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 인도네시아는 이슬람 공화국이 아니며, 공식적으로 이슬람과 불교, 힌두교를 비롯, 여섯개의 종교를 인정하고 있는 다종교 국가인 것이다. 발리섬의 경우 힌두교이며, 술라웨시에는 기독교도들이 많으며, 파푸아에는 토속종교가 발달돼 있다. 인도네시아에는 “자맛 이슬라미”같은 과격 단체도 있지만 타 아랍 및 페르시아 국가들에 비해 상당히 세속적이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할 때가 많았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소위 “질밥”이라고 불리우는 젊은 인도네시아 모슬렘 여성들로, 질밥은 원래 머리를 가리는 아랍지역의 “히잡”과 같은 뜻이지만, 질밥을 쓴 여자들을 통틀어서 지칭하기도 한다. 이 질밥들은 가끔 상당히 진보적(?) 이어서 머리카락과 모든 속살을 가리는 한편 (덥고 습해도 항상 팔다리를 가린다) 엉덩이 라인이 훤히 드러나는 청바지를 입는가 하면 남자친구와 손을 잡고 헤비메탈 콘서트에 가 머리를 흔들기도 한다. 아프가니스탄의 물라 (이슬람 학자) 들이 알면 거품을 물고 기절초풍할 일이다!
또 이 질밥들은 스쿠우터를 타고 거리를 혼자서 (남자 직계가족의 동행없이) 활보할 뿐 아니라 쇼핑몰을 휘저으며 맥도날드 등 이교도들이 만든 브랜드의 물건을 소비하거나 ‘질밥 예쁘게 매는 법’을 알려주는 패션 잡지를 구독하기도 한다. 심지어 인도네시아의 패션 디자이너들은 모슬렘 여성들을 위한 아주 화려한 의상을 제작하며, 패션쇼도 연다.
인구도 많고 소수민족도 많은 만큼 인도네시아에서는 재미있는 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바로 2004년 인도네시아 대통령 선거 당시 ‘위란토’라는 후보를 동행취재한 적이 있었다. 위란토는 1999년 동 티모르 사태 당시 인도네시아 사령관으로, 인도네시아 군정이 저지른 학살사태를 명령한 혐의를 받던 인물이다.
그 무시무시한 위란토 장군과 선거 수행원들은 전용비행기를 타고 수마트라 섬의 메단으로 갔다. 메단은 중국인 이민자들이 많은 곳이었다. 수백명의 지지자들은 한 유세장에 모여 그를 맞았으며, 위란토는 단상에서 연설을 마친 뒤 이슬람 식으로 기도를 했다.
그리고 벌어진 일! 바로 위문공연이다. 그런데 위문공연 초청가수는 바로 몸에 짝 달라붙는 보라색 의상을 입은 ‘당둣 Dangdut’ 가수였다!
당둣 가수들은 신나는 댄스뮤직에 맞춰 골반을 앞뒤로 현란하게 움직이는, 우리 식으로 하면 ‘섹시 댄스’ 를 추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지자들은 이내 환성을 지르며 좋아했고, 단상위 의자에 앉아있던 위란토와 주변인물들도 모두 미소를 지으며 공연을 지켜봤다. 이슬람 교도들 행사에 당둣가수가 웬 말이란 말인가!
이 공연을 보고 나도 갑자기 인도네시아 모슬렘들을 다시보게 됐다. 질밥은 썼지만 해드뱅잉을 하고, 기도하는 자리에 당둣 음악을 틀고 춤을 추는, 텔레반이 보면 기겁할 일이지만 개개인의 선택을 상당히 존중해주는 ‘열린, 세속적’ 슬람 교도들이었던 것이다.
요즘 인터넷에는 ‘이슬람 교도가 인구의 5%가 되면 테러가 발생한다’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물론 인도네시아에서도 테러가 발생하지만, 이는 너무 타락한 발리의 나이트 클럽 등지에서 주로 발생한다. 2억이 넘는 모슬렘이 살고 있는 인도네시아지만 여러 종교가 공존하며 서로 충돌하지 않는 모습이다. 우리는 아프간과 이라크, 파키스탄의 테러사태 뉴스에 너무 길들여진게 아닐까. 인도네시아는 여러모로 고정관념을 깨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