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엄경華嚴經》〈세주묘엄품世主妙嚴品〉 가운데서 견고행묘장엄아수라왕堅固行妙莊嚴阿修羅王이 불법을 증득하고서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을 찬탄하는 게송으로, 세간에 존재하는 모든 일들이 곧 복전의 바다라는 의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을 사바세계沙婆世界라고 한다. 사바란 감인堪忍, 견디고 인내하는 장소를 말한다. 혀를 뽑아내거나 혹은 칼날로 찌르거나 혹은 몽둥이로 사정없이 내리치거나 등등의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는 고통을 끝없는 무간無間으로 치러내면서 일일일야一日一夜에 만사만생萬死萬生 하는 악도惡道가 지옥이라면, 감인의 땅 사바에서는 집착과 욕심으로 빚어진 고통과 갈증을 끝없이 견디고 참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견디고 인내忍耐할 수밖에 없는 곳이라고 보는 관점은 중생의 시각이고 입장에서 비롯되는 것일 뿐이다.
부처님과 보살의 경지에서는 사바의 세간은 무수無數한 복福, 바다처럼 무량無量한 복을 심고 짓고 일구어 낼 수 있는 무한無限한 가능성이 넘쳐나는 공간이다. 다시 말해서 복을 짓기 좋은 곳, 복을 지을 수 있는 대상이나 환경이 아주 적합하고 적당한 곳이라고 보는 것이다. 부처님이 사바에 오셔서 깨달음을 성취하시고 중생들을 제도하신 것, 그것으로 사바의 무한한 가능성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고통에서 허덕이는 중생들을 구제하는 것이야말로 불보살의 최승(最勝)한 복이며 원력(願力)이다. 부처님을 수순(隨順)하며 부처님처럼 되고자 불교를 믿고 수행한다면, 부처님과 같은 시각으로 사바를 바라다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무수하게 많은 복을 지을 수 있는 대상과 환경이 보이고 열릴 것이다. 복전의 바다가 바로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곳이기 때문이다.
《유마경維摩經》에서 광엄동자光嚴童子가 길을 지나가다가 마주친 유마거사維摩居士에게 공손히 예禮를 올리고서 어디에서 오시는 것인가를 묻자 유마거사는 도량道場에서 온다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다시 동자는 도량이란 과연 어떤 곳인가를 물었고 유마거사는 중생衆生이 곧 도량이라고 대답하여, 도道가 이루어지는 장소이며 도를 닦는 장소라고 도량을 설명한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집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머물거나 지나치는 처처處處에서 시시각각時時刻刻으로 모두 복을 지을 수 있는 도량이 바로 사바세계이다. 나보다 바쁜 사람에게 양보하는 것, 무거운 짐을 들어주는 것,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환한 얼굴로 인사하는 것, 심난하고 괴로워하는 고민을 들어주는 것, 목마른 사람에게 시원한 물을 권하는 것, 등등 헤아릴 수 없으며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다른 사람을 짓누르는 부담이나 짐을 내가 대신해서 짊어지는 것이 바로 복전이며 도량이다.
《관음경觀音經》을 독송하다보면 관음보살을 염불하는 것은 나의 마음 안에 갖추어져 있지만 아직껏 잠자고 있는 자비심慈悲心을 일깨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불구덩이에 빠진 중생을 보면 내 자신이 관음보살이 되어서 불을 끄고 구제해 주고, 깊은 물에 빠진 중생을 보면 내가 관음보살이 되어서 얼른 건져내서 안전한 곳으로 옮겨 주는 등으로 고통과 재난에 처한 중생들을 못 본 척하거나 무관심하게 지나치지 말고 필요한 행동을 취하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염피관음력念彼觀音力이란 내가 관세음보살이 되거나, 혹은 저 관세음보살의 힘을 내가 갖기를 생각하고 염원하는 간절한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관세음보살에게 귀의하는 것은 타력他力이 아닌 자력自力의 수행으로, 수동적인 아닌 능동적인 자세로 *화생化生하려는 의지와 다르지 않다.
진흙탕에서 피어나는 찬란한 연꽃도 진흙탕 속에 뿌리를 깊이 내렸기 때문에 꽃과 열매가 찬란하게 피어나고 맺게 된 것이다. 역설(逆說)하자면 진흙탕이 있었기 때문에 연꽃의 만개가 가능한 것이며, 만약 진흙탕을 포기하거나 더럽혀질까봐 두려워서 떠나버렸다면 결국 연꽃도 열매도 기대하기 힘들게 되고 마는 것이다.
부처님의 원음原音의 가르침 숫타니파타에서 ‘태생에 의해 바라문이 되거나, 태생에 의해 바라문이 아닌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행위로 인해 바라문이 되기도 하고, 행위로 인해 바라문이 아닌 자도 되는 것이다’, ‘출생을 묻지 말고 행위를 물으십시오. 어떠한 땔감에서도 불이 생겨나듯 비천한 가문에서도 지혜로운 성자, 고귀하고 부끄러움으로 자제하는 자가 있게 되는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도 우리가 어떻게 태어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떠한 행동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일깨워주는 것이다.
사바에 태어난 숙업宿業에 무작정 순응順應하면서 고통을 감인할 수밖에 없는 곳으로 볼 것인지, 바다처럼 깊고 넓은 복전을 심을 수 있는 곳으로 볼 것인지, 자신의 시야에 따라서 중생의 업業인지 보살의 원력願力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
* 화생化生 : 원력願力에 의해서 새롭게 태어나는 것.
법法의 가치에 의해서 변신變身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