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후, 만세루 처마 아래에 서 있자니 도정스님의 도반 스님들이 가벼이 걸음을 옮기시는 중이다. 그러더니 도정스님을 찾는 내게 저 뒤를 가리키신다. 바라보니 다리를 다쳐서 절뚝이는 도정스님이 손짓을 하신다. 그 풍경이 마치 시골 마을에서 오랜 친구들이 조용조용 서로의 집에 마실 다니는 곱고 소박한 모습 같아 정겹다. 마음이 물큰해진다.
스님은 발목을 삐끗했다며 다리를 동여매고 계셨다. 큰 체구와 큰 목소리에 놀라 주춤하는데 스님이 먼저 말씀하신다. “내 첫 인상이 별로지요?” 그러면서 슬며시 웃으시는데 그 솔직한 말씀과 슬쩍 새는 웃음에, 깍지를 꼈던 마음이 일순 헐렁해져 버린다.
스님은 현재 선운사에 도감으로 머물고 계시다. 관음전 해체 복원이나 템플스테이 체험관, 차 체험관, 해외동포문화관 설립에 직접적으로 관여해 목수들과 함께 한옥을 짓는 것이다.
“절에 오래도록 살아도 한옥에 대해 스님들이 아는 게 참 없어요.”
목수는 전통에 따라 집을 지을 뿐 한옥에 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스님들은 평생을 한옥에서 살아간다. 그러니 한옥의 문제점이나 불편한 점을 더 잘 알기 마련. 그렇기 때문에 스님들이 한옥 건축에 대해서 잘 알았으면 하고, 그러면서 부족한 점들을 실리적으로 보완해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도정스님은 청도에 있는 한옥 학교 3개월 과정을 마치고 강원도 양양에 있는 구들 학교도 수료했다.
“요즘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외부에 있는 화장실에 못 가요. 그러니 한옥도 내부를 현대식으로 갖출 필요가 있어요. 편리성만 따지자는 것이 아니라 웰빙이 뭔가요, 좋게 사는 것이잖아요. 진리는 변하지 않지만 환경은 변하기 마련입니다.”
전통만을 고집한다면 물질적으로는 퇴보한다는 생각이다. 한옥의 장점과 아름다움은 고수하되 보완해서, 예전과는 달리 개인의 사생활을 보장해 줄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님들에게도 필요한 부분이고 산사를 찾는 이들에게도 제공해야 할 부분이다.
“사람들이 절에 와서 조용한 정원에도 머물러 보고 구들방에서 잠도 자보면 전통의 숨결도 느낄 수 있고 절에 대해 친근감을 느끼지 않겠습니까.”
스님은 선운사와 인연이 깊다. 출가 전 룸비니 불교학생회 활동을 하면서도 그렇고 해인사에서 출가해 선운사에서 수계를 받았다. 출가 전부터 은사 스님과 사형 스님들을 알고 지냈고 은사 스님을 모시고 살기도 했으니 선운사에 애정이 많다.
그러나 스님은 오랜 시간을 해외에 머물렀다. 92년도에 송광사 율원에 다니다가 미얀마로 가서 국립승가대학과 전통강원을 다녔다. 미얀마에 가장 오래 머물렀고, 대만 스리랑카 라오스 미얀마 중국 일본 미국 등을 다니며 15년간 외국에서 생활했다. 여러 나라 불교를 알게 되면서 불교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대승과 소승으로 나눠지면서 서로 우월성을 강조해왔는데 바람직하지 않죠. 여러 나라에 가서 그들의 불교적 실천과 생활방식을 보고 수행하는 것도 접하니 편견도 없어지고 겸손해지는 것 같아요.”
스님은 교학적인 부분보다 남방선에 관심이 많다. 위파사나, 사마타 수행을 하면서 이것을 우리나라에 어떻게 전할까 고심해 왔다. 그래서 선운사에 수행 공간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인 간화선을 하고 있지만, 세계가 한 지붕인 시대이니 우리도 발을 넓혀 초기불교에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겠나 하신다.
“우리는 초기불교를 너무 무시하고 대승 불교권에서 화엄사상 또는 법화사상만 중시하고 있어요. 1층은 짓지 않고 2층만 지어나가는 형국입니다.”
기초를 다진 다음에 불교의 깊은 사상을 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말씀. 그리고 수행을 빼놓을 수 없으니 남방에서 하는 수식관 수행을 병행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러하면 간화선 수행도 진일보하지 않겠나 하신다.
요즘 위파사나 수행이 외국에선 심리치료법으로 정신과에서 많이 행해지고 있다. 마음 챙김 수행이라고 해서, 수행을 통해 자기의 성품과 성향을 알고 마음을 성찰하면서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찾아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미국이나 유럽에선, 작은 수행 공간을 만들어 정신과 의사와 대화를 통해 우울증과 같은 병을 치료하는 것이다. 많은 돈을 들이지 않는 자연스러운 치료법이다. 그래서 스포츠 선수들이 슬럼프를 벗어나기 위해서 명상 수련을 통해 자신을 극복하고 어려움을 극복해 심리적 안정을 이루기도 하고 다른 종교인들도 일정기간 수련을 통해서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미술가나 음악가가 수행을 통해 자기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것을 개발하기도 한다. 자기의 심성을 개발하는 것, 즉 조화롭게 지혜를 개발하는 것이다. 그래서 각 분야의 사람들이 명상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일하게 되고 그 효과는 극대화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위파사나를 지혜 수행이라 하며, 사마타는 집중력을 개발하니 정혜쌍수定慧雙修라 해서 이 두 가지를 같이 수행해야 한단다.
“사회복지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수련은 자기 업을 보고 자기 심성을 개발하는 것이기에, 사람들의 마음을 평화롭고 행복하게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사회를 가장 좋게 이끄는 복지가 아닌가 생각해요. 수행은 인류복지에 기여하는 바가 지대할 것입니다.”
물질적인 복지는 임시적일 뿐이니, 마음을 안정시키고 능력을 개발하게 해 길을 제시해 주고 자신감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면 그것이 오히려 돈 몇 푼보다 진정한 복지가 아닌가 하는 말씀이다.
“웰빙이라는 것이, 좋은 음식과 좋은 환경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수행하면서 스스로의 마음을 알고 심성을 개발하는 것이 진정한 웰빙 아니겠어요. 그것이 건강한 삶이지요.”
그래서 스님은 위파사나, 사마타 전문 수행 공간이 절실히 필요하단다.
“말없이 마음을 성찰하고 몸을 성찰해야 하기 때문에 사사로운 번거로움이 생기지 않도록 고요해야 하지요. 그런데 현재 사중에는 여러가지 프로그램이 있기 때문에 그럴 형편이 못 되지요. 수행 공간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래서 출가자들이나 재가불자들에게 공간을 제공해 주어야 합니다.”
스님이 바라는 것은 큰 규모의 수련원이 아니다. 화려하거나 번거롭지 않게 아늑하고 소박하게, 스무 명 남짓이 수행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알뜰하고 검소하게 꾸려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스님은 종회 의원에 출마할 생각이다. 그래서 문중의 어른 스님들과 선운사 승가대학교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도 수행센터건립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누고 논의해 답을 찾으며 종단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나는 주지와 같은 소임보다도 전문 수행관을 만들어서 살고 싶어요. 나는 수행자이니, 여러 사람들이 수행할 수 있도록 돕고 나도 수행하면서 살 것입니다.”
각 사찰의 대동소이한 템플스테이를 보면서 스님은 안타까울 때가 많다. 사찰의 개성을 살리기 위해 고민해서 양질의 프로그램을 마련하지 않고 밥장사나 하는 형태가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님은 사찰에 젊고 유능한 인재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도 수행관은 많은 젊은이들을 출가로 이끄는 데에 몫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얀마에선 많은 사람들이 수행을 하면서 불교의 좋은 점을 알고 많이 출가를 해요. 선운사에 수행관을 만들면 수행을 통해 얻어지는 공덕이 많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출가하는 경우도 상당할 거라고 봐요. 그러면 그들을 잘 교육시키고 해외유학도 보내서 승가와 사회에 공헌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면 좋겠습니다.”
도정스님은 미래 불교는 수행 불교로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미국이나 유럽에서 수행 불교가 상당한 관심을 끌고 있는데, 현대인들이 많은 업무 속에서 자신을 조절 할 수 없어 더 스트레스를 받는데 그것을 수행센터에서 명상과 법문을 통해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꾀나 많은 불자들이 의식 불교에 대해 불편함을 말하고 있다. 그들은 별다를 것 없는 교양 불교 대학이나 대학합격 염원 기도 같은 것을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 수행을 하고 마음을 성찰하기를 바란다. 그런데 승가에선 그런 이들을 충족시킬만한 프로그램을 내놓지 못 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절 안에 발을 디딘 사람들은 다시 세속으로 돌아가 좋은 환경에서 좋은 직업을 가지려고 하지 출가의 길로는 가지 못 한다. 만족하지 못 하니 기웃거리기만 할 뿐이다.
“수행의 풍토를 조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현재 많은 불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기도나 제사가 아니라 수행이에요.”
전통적인 방식에서 조금쯤 벗어나 미국이나 유럽의 불교를 보고 우리에게 맞는 대안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는 말씀이다. 건전한 양질의 포교를 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불교가 갖고 있는 명상 수행 많잖아요. 그런 것들을 불자들에게 제공해 주어야 하고, 불자 아닌 이들은 그 수행을 통해 새롭게 불자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서둘러서 방향을 전환해서 수행에 대한 인력을 확보하고 양성하는 투자를 해야 합니다.”
스님은 미래 불교를 위해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 하신다. 자리 싸움을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미래 불교를 위해 젊은 스님들이 무엇을 할지 깊게 고민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 대안 중 하나로 선운사 수행관이 빨리 탄생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렇기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스님은 성격이 괄괄하고 직선적이다 보니 오해도 많이 받는다. 그러나 대화라는 것이 표현을 제대로 해야 상대가 아는 것이고, 그래야 일이 진척이 있는 것이니 숨김없이 직선적으로 모든 것을 표현한다. 그것이 오해를 산다고 해도 가장 대화를 정확하게 잘 해나갈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스님은 지금 미래 불교를 위해 해나가는 일들 또한 스님의 성품 그대로 해나갈 생각이다. 그것이 우리 모두를 위한 길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표현을 해야 알지요.”
배롱꽃이 흐드러지게 핀 마당에서 스님이 활짝 웃으신다. 스님이 그리도 재미나게 웃으시니 그제야 스님이 재미난 분이라는 걸 알았다. ‘나 재미난 사람이야’라고 말하실 때만 해도 모르겠더니. 역시 몸으로든 말로든 표현을 해야 햇살도 같이 나누고 바람도 같이 피하고 수행의 길도 따르지 않겠나. 만세루 앞에서 빗물 웅덩이에 떨어진 배롱꽃의 어여쁨을 나누는 오후, 고개를 들어보니 도솔산에 스미는 선운禪雲이 적막한 깊은 산중 수좌의 좌복이 되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