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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노인복지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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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김각현 1999년 03월 205호
노인복지의 현주소
올해는 유엔이 정한 “세계 노인의 해”이다. 20세기를 마감하는 1999년을 노인의 해로 정한 것은 시대적으로나 인류 생활상으로도 시사하는 점이 많다. 지난 백 년 동안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등 모든 분야에서 엄청난 변화를 요구 받았던 세월이었으며 그 역사의 주역으로 격랑의 회오리 속에서 무참하며 살던 사람들이 이제 모두노인이 되었다.
한 세기를 마감하면서 그분들 삶의 애환을 되돌아보며 현주소를 확언한다는 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다.

한국노인의 현주소
국토를 빼앗기고 언어와 문자도 잃어버렸던 암울한 세상을 시신 분들, 그리고 625 때에 동족의 피를 산하에 뿌리며 절규하던 사람들, 또 419 학생 의거, 5·16 군사 혁명 등의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배고픔을 참으면서도 자식들을 위해 온몸을 바쳐 그들을 공부시켰던 사람들, 지금 그들의 모습은 어떤가?
동방예의지국이며 충효의 나라라고 일컬어 왔던 한국의 노인복지 지표는 과연 어느 정도인가?
전 국가 예산 가운데 노인복지 예산이 차지하는 비율이 일본이 17.3퍼센트로 세계에서 기장 높고, 미국이 13.2퍼센트, 우리보다 못 사는 중국이 3퍼센트를 넘어 노인복지 사업에 투자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1997년의 통계에 따르면 전 국가 예산 대비 0.29퍼센트라고 하니 국가적으로는 불효의 나라라고 할 수밖에 없다. 나라마다 문화의 특성을 고려해야겠지만 우리나라는 “전 가정보호, 후 사회보장”이라는 전통적 윤리관을 강조하다 보니 노인복지 정책이 국가정책의 2차적 관심 대상이었다. 그러나 노인 인구가6퍼센트를 넘어섰고 가족 해체 현상이 빨라지면서 거리를 배회하는 노인들이 급증하는 사회 현실에서 더 이상 노인 문제는 가족에게만 책임을 떠넘길 수 없는 위기의 상황이 왔다.
종교는 그 시대의 얼이고 그 시대의 정신이다. 불교의 교화 기능을 어떻게 이 사회적 요청에 대응하느냐가 불교 사회복지의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며 시대적 역할과 기능을 인정 받게 될 것이다.
각 종교 단체들이 다투어 사회복지 시설을 설치하여 종교의 사명을 구현하려고 노력하는 현실에서 불교는 은둔과 폐쇄성을 과감히 떨쳐 버리고 숫적 열세와 지원부족을 만회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예토에 정토를 구현하는 것”이 불교의 이상이고 목표일진대 시대 사명을 완수하려면 사회병리 현상으로 대두되는 노인 문제를 더 이상 놔둬서는 안 된다. 지금 많은 곳에서 불교 노인복지를 위해 묵묵히 실천하고 있는 스님이나 재자 신도가 많이 있다. 그렇지만 전문화시대를 맞이하여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교단 중심의 복지사업을 전개할 필요성이 절실한 이때 사회적 역할로써 불교노인복지를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불교 노인복지의 장애요인
노인복지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지만 불교 사회복지 전반에 걸쳐 걸림돌이 되고 있는 문제점을 제시함으로써 불교의 현실을 바로 보고 내일의 나침반으로 삼고자 한다.
첫째는 불자의 인식 부족이다. ‘중생이 없으면 부처도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 교단은 부처가 되고자 하는 수행자는 많으나 갖가지 사회병리 현성에 시달려 삭막해진 중생의 가슴속에 따뜻한 자비의 감로수를 뿌려 주는 보살은 적다고 생각한다.
불교는 자비의 종교이다. 법당은 자비를 배우는 곳이고 사회는 법당에서 배운 자비의 실천 도량이다. 자비의 실천은 보살행으로 사회에 구현이며 보살행이 곧 불교의 이상을 실현하는 실천적인 삶의 방식이며 또한 이것이 곧 불교 사회 복지이다.
불교 노인복지의 이론적 근거를 구체적으로 발굴하여 연기사상, 복전 사상, 보은 사상. 지비 사상을 사찰에서 끊임없이 교육시키므로 중생 구제의 신념이나 인류 구원의 확신으로, 중생을 향한 끝없는 서원을 갖도록 인식시켜야 하지만 다른 종교에 견주어 많이 부족함을 느낀다.
이것은 불자가 아직까지 중생에 대한 책임감을 확실히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반증이 아닌가 생각한다.
둘째는 교단의 지원 부족이다. 지금까지는 교단의 도움 없이 스님이나 신도들이 자신의 역량으로 힘겹게 복지시설을 설립, 운영하여 불교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종교에서 운영하는 시설보다 열악할 수 밖에 없다.
사회복지의 실천에서 재정 문제는 가장 핵심적인 요인이나 우리 교단은 아직도 사회복지 사업을 펼칠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다른 종교는 전 수입액의 45퍼센트까지 사회복지 사업에 투자하는 교단도 있음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으며 우리 교단의 예산집행 내역을 살펴볼 때 소비성 예산이 너무 많고, 사회복지 시설 지원은 시설 설립은커녕 운영비 보조도 전혀 없는 상태이니 이런 열악한 제도나 예산 배정을 가지고 다른 종교의 사회복지 사업을 쫓아가고자 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다. 적어도 교구 본사예산의 10퍼센트, 종무원 예산의 2O퍼센트 이상은 사회복지 사업지로 책정하여 장기적인 발전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그리고 모두가 시설 부족이나 투자 부족 등에 대해서 아쉬워한다. 하지만 전문가 부족도 그에 못지않게 염려된다. 불교 사회복지 전문가를 육성한다면 불교계가 독자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복지 영역도 얼마든지 개발할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교단은 사회복지에 관한 교리의 발굴과 저변 확대도 미흡하고 그에 따른 제도의 뒷받침, 전문가 부족 그리고 물질 지원 부족이 아쉽다.
셋째, 자원봉사자(후원자)의 부족이다. 사회복지 사업은 시설과 후원자 그리고 자원봉사자가 삼위일체가 되어 엮어 가는 사회복지 증진 운동이다. 아무리 불교 시설이 많이 있어도 후원자나 자원봉사자가 외면한다면 그 시설은 복지시설로서 의미를 상실한다. 구도자라도 법당에서는 자비의 전사를 양성하지 못하고 자신의 복을 비는 장소로만 이용하므로 사회 구원, 중생 구원의 대원을 성취시키지 못하는 한계에 부딪치고 만다. 나와 이웃, 나와 자연, 나와 우주는 한 공동체며 나의 행복은 모두가 행복할 때 찾아 온다는 원리를 터득 시키지 못한 결과가 이웃을 위한 자원 봉사자의
발굴도 미흡하고 또한 노인복지 시설에 적은 후원금을 납부하는 것도 인색하지 않나 싶다.
우리 연꽃마을에서 정기적으로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있는데 지원자 백여 명 가운데 불자는 스무 명에도 미치지 않는 것이 현실임을 감안할 때 사찰주지 스님들이 분발해야 한다. 이 밖에도 사회 적응 능력 부족, 사찰운영의 폐쇄성, 재정 확보 방안 미흡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몇 가지만 제도적으로 보완하고, 불교의 대중화, 생활화에 적극적으로 접근한다면 불교는 우리 민족과 함께해 온 우리의 혼이며 정신이므로 잠재력이 있다고 확신한다.

불교 노인복지의 전망
사찰은 노인복지의 요람이어야 한다. 전국 사찰을 노인복지의 요람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주지 스님은 부처님이 임명하신 사회 복지사라는 사명을 가지고 지역 사회에서 노인복지를 주도해 가는 일꾼이 되어야 한다. 거창한 노인복지관이나 양로원이 있어야 노인복지 사업이 아니다.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마음만 열면 얼마든지 노인복지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신도회 조직을 자원봉사조직으로 활용하여 지역의 무의탁 노인들의 생활 안정을 위해 안부 전화 걸기, 이 ·미용 서비스, 청소, 생활용품 전달 등 재가 노인복지 사업을 훌륭히 해낼 수 있으며, 사찰 시설이 가능하면 경로대학 개설, 단기보호 사업, 주간 보호 사업 들도 가능하며 조금만 노력하면 실비 양로원 건립, 노인의 집 설치 운영 등도 할 수 있다. 사찰이 바로 지역 노인복지 실천의 전진 기지가 되어야 하며 요람이 될 수 있으나 문제는 어떻게 신도들에게 복을 비는 종교에서 복을 짓는 종교로 발전시켜 나갈 것 인지가 변수가 된다.
교구본사에 사회복지 전담 기구를 설치해야 한다.
조계종은 스물 다섯 개 교구본사가 각 도별로 사찰 수에 따라 잘 구분되어 있는 편이다. 이 교구 조직을 사회복지 전담조직으로 활용하여 다양한 복지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구전담 조직에서 말사의 특성에 따라 노인 일시보호사업, 주간보호사업, 노인대학, 가정 봉사원 파견 사업 등을 설치 운영하도록 하고 지방자치단체가 공식 복지 시설로 승인할 때까지 교구본사가 사회복지사나 운영 자금 등을 지원해 주는 적극 자세를 갖는다면 적어도 노인복지 사업만은 기존의 교단 조직과 사찰 기능을 활용해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
이제는 도량 확장 불사에서 중생 교화 위주의 불사로 방향을 전환할 시기가 되었으며 교단적 ·사회적 여건도 성숙되었다고 생각한다.
교단은 효;실천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다른 종교의 효와 불교적 효의 내용에 조금은 다르다. 그러나 효를 구체적으로 강조하는 종교가 불교보다 더한 종교도 없다. 효에 대한교리를 발굴하고 이끌어가야 하므로 가정의 효에서 사회, 국가의 효로 유도하는 방안 마련을 불교가 해야 한다.
불교는 가장 인간적인 종교이며, 가족 윤리를 중시하는 종교이며, 인연을 소중하게 강조하는 종교이기 때문에 더욱 “노인을 모시자”는 여론을 확산하여 불교가 ‘효의 사회화 운동’의 중심 축이 되어야 함은 교리상으로나 역사적으로 당연한 귀결이다. 특히 불교는 낳은 부모만 부모로 모시는 것이 아니고 모든 생명을 부모로 모시고 이들을 해탈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효라고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교단에서는 가칭 “효실천운동본부”를 설치하여 내 부모를 모시듯 남의 부모도 모셔야 한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사회 속에 구체적으로 나타나도록 전 불자가 동참하여 사회 운동으로 펼침으로써 소외와 고독에 병든 노인들에게 부처님의 말씀이야말로 광명이 아닐 수 없도록 해야 한다.
부처님은 “효는 만복의 근원”이라고 하였고 또한 “부모는 세간 복전의 최고이고 부처님은 출세간 복전의 최상이라”고 옛날 선사들은 지적하고 있다.

마무리를 하면서
선진국에서는 오랫동안 고령사회에 대비한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 여유가 있었지만 우리나라는 지난 삼십여 년 동안 오직 “잘 살아 보자”는 한 생각으로 빵의 해결만을 위하여 정신없이 살다 보니 어느새 노인은 늘었고 핵가족화로 인하여 가족의 부양기능은 약화되었으며 또한 전통의 효 윤리가 사라지고 이기적으로 변한 사회환경을 맞으면서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아무런 노후대책 없이 지내오다가 이제 노인 문제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었다.
지금 이 나라 노인들은 소외, 질병, 빈곤, 역할 상실이라는 네 가지 무거운 짐을 지고 힘겹게 설아 가고 있다. 이제 불교는 과거의 화려한 역사를 자랑하기보다는 시대가 요구하는 참 승가상을 구현하여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노인 문제를 교단의 문제로 인식하여 적극적으로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우리 불자는 “모든 중생이 병들었기 때문에 나 또한 병 든다. 만일 모든 이웃의 병이 사라지면 나의 병도 사라질 것이다. 보살의 병이 바로 중생의 병이니 중생의 병이 나을 때 보살의 병 또한 나을 것이다”라는 유마거사의 큰 목소리를 겸허히 들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