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련사에는 ‘정진’이라는 암캐가 살고 있다. 귀한 풍산개인데 꼬리까지 재면 어른 키를 훨씬 넘는 제법 큰 체구이다. 두 번째 임신 중이라 힘이 드는지 먹을 때 외에는 거의 종일을 드러누워서 지낸다.
얼마 전 백련사에서 머무는 동안의 일이었다. 해질 녘 즈음 공양을 마치고 생각 없이 앉아 있는데 손가락 길이의 시커먼 벌레가 스멀스멀 방 한쪽 벽을 타고 기어 다녔다. 깜짝 놀라 뛰쳐나가니 마침 근처에 채공 보살님이 계셨다. 말씀드렸더니 지네일거라며 분무기가 달린 농약병을 주셨다. 일러주신 대로 문지방에 농약을 뿌려놓고 방충망만 닫아둔 체 방을 나왔다. 냄새가 좀 빠지려면 반시간은 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 저녁 8시면 산중은 한밤인지라 산책 하는 것도 마뜩찮았다. 그래도 조용하고 맑은 공기가 도시에서는 절대 없는 기회인지라 용기를 내어 걸음을 옮겼다. 10분정도 지났을 때 갑자기 개 짖는 소리가 묵직하게 울렸다. 자갈을 깔아둔 마당을 찍으며 달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개를 키워본 경험이 없는지라 덜컥 겁부터 났다. 짐승은 사람이 겁을 내면 바로 알아차린다는 것이 기억나 일단 침착하고 이름을 불렀다.
‘정진아, 정진아. 그냥 산책하는 거야.\'
서서히 속도를 늦추는 발걸음이 내 바로 옆에 와서 서성였다. 몸짓을 보자니 나를 방으로 이끌려는 눈치였다. 자기가 주인인 곳에 객으로 있는 것이니 별 수 없이 그냥 따라갔다. 뒤에 있는 나를 살피고 살피며 걷던 녀석이 방 입구에서 엎어졌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려는데 고맙고 애틋한 마음이 일었다. 가방을 뒤지니 먹다 남은 빵조각이 있었다. 한 입 거리로 잘라서 주었더니 대놓고 허겁지겁 이었다. 물 마시러 가라고 손짓으로 이르니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호수로 연결해 둔 곳으로 갔다. 큰 대야에 담기는 물을 맛나게도 핥았다. 처음 만난 사이인데다 대화를 할 처지도 아니었는데 참 제대로 소통하였다.
그에 비해 사람은 너무 많은 말을 쏟아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쇠르는 언어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여 랑그와 빠롤로 나누었다. 랑그(langue)란 언어 공동체 구성원들의 머릿속에 내재화되어 언어활동을 지배하고 조정하는 규칙들의 체계이고 빠롤(parole)은 개인이 언어능력을 발휘하는 모든 활동, 실제의 음성 언어 행위, 말을 하는 행위를 말한다. 예를 들면 사전에서 \'꽃\'을 찾아 읽는 것은 랑그이고, 김춘추 시인의 \'꽃\'은 빠롤이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말 그대로인 것은 랑그이고 그 말에 내포된 각각 나름의 심정과 정서는 빠롤이다. 연인이 ‘저리 가!’할 때 저리가면 랑그대로 한 것이고 반대로 연인을 꼭 끌어안아준다면 언어의 빠롤을 해석한 것이다. \'정진\'이와 나는 한마디의 말로 이 빠롤이 통한 것이었다.
우리는 나의 빠롤을 남이 알아주기만을 바라는 기대에 빠져 남의 빠롤에 대해서는 잘 잊어버리고 산다. 수년 전 속없이 나의 빠롤만을 주장하고 남이야 오든지 말든지 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멀어진 이가 한 명 있다. 간간히 뒤늦은 사과를 계획할 정도로 아직까지도 나에겐 정말 간절한 이이다. 그 모난 마음 씀씀이를 고쳐보려고 삼사일언三思一言을 결심했었다. 필요한 순간마다 떠올린다는 자체부터가 어렵지만 그간의 실수들을 채찍삼아 계속 노력중이다.
아무래도 요즘은 말이 너무 쉽다. 인터넷으로 내뱉은 말은 말과 사람에 대한 책임감도 없고 타인에 대한 배려도 찾기 힘들다. 소위 네티즌들의 입이라는 칼날로 수많은 사람들이 무참히도 베인다.
항간에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이들 중에 \'작사가 최씨\'가 있다. 최씨는 본인 홈페이지에 가수 모씨와의 관계에 대해 적었었다. 너무 개인적인 일이라 거의 막말 수준이었다. 인기로 먹고 살기에 루머에 민감한 연예인에게 치명타를 입힌 것은 물론이었다. 결국 변호사가 대동되는 지경에까지 이르자 모든 것이 거짓이며 분을 참지 못하고 뱉은 욕지거리라고 자백했다. 지금까지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최씨의 홈페이지에 네티즌들이 무차별로 답글을 달아댔다. 대부분이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이었다. 어이없고 딱한 꼴들이 제대로 가관이었다. 최소한 세 번을 생각한 후에 키보드를 두드린다면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이 이렇듯 악취 풍기는 난장판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좋은 향이 고이는 살만한 데가 될 수 있다.
\'지구에 머물러 있는 동안, 물질적인 것들은 모두 지구에게서 얻은 것이고 정신적인 것들은 모두 우주에게서 얻은 것이다. 다만 어디를 가든 내가 직접 만들어서 그대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사랑 하나 뿐.\' 작가 이외수가 한 말이다.
살아갈수록 살아질수록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은 사랑뿐이라는 말에 조금씩 더 공감하게 된다. 잊지 말고 세 번을 생각하여 사랑을 줄 수 있는 말만 하여야 하겠다. 나와 남을 좋게 만드는 말만 하면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