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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인 씨앗 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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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서재영 2010년 10월 344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셉션이 장안에 화제다. 타이타닉으로 잘 알려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을 맡았고, 현란한 액션과 화려한 CG는 여느 헐리우드 영화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대중적 흥행요소 이면에 숨어있는 메시지는 사뭇 진진하다.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필자가 보기에 이 영화의 줄기는 주인공 코브가 아니라 조연으로 등장하는 피셔와 그를 둘러싼 사건으로 보인다.
피셔는 세계최대 에너지 기업의 상속자지만 마냥 행복한 것은 아니다. 병석에 누워 있던 아버지가 ‘실망스럽다’는 말을 남기고 임종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피셔에게 그 말은 깊은 상처가 되고 씻을 수 없는 열등감의 근원이 된다. 그래서 피셔는 세계적 기업의 오너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인수합병을 통해 독점을 강화하고 세계유일의 기업을 꿈꾸게 된다. 피셔의 계획이 실현되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경쟁기업이다. 이런 이유로 경쟁사의 CEO 사이토는 코브에게 피셔가 기업을 분사하게 해달라고 의뢰한다.
꿈속에 들어가 생각을 훔치는 재능을 지닌 코브는 피셔의 생각을 돌려놓기 위해 그를 꿈속으로 유인한다. 코브가 설계한 꿈속에 들어간 피셔는 ‘실망스럽다’고 말하는 아버지와 다시 대면하게 된다. 그곳은 아버지에 대한 강박관념과 자신에 대한 열등감이 넘실대는 무의식의 심연이다. 그곳에서 피셔는 아버지로부터 “네가 실망스러운 것은 나를 닮지 않아서가 아니라 나처럼 되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말을 듣는다. 최고의 기업가가 됨으로서 자기 존재를 확인받고자 했던 피셔는 그 말을 듣고 내면에 응어리진 감정이 녹아내린다. 아버지에 대한 열등감은 부정적 생각의 씨앗이 되어 피셔의 정신세계를 왜곡시켜 왔다. 코브는 그와 같은 부정적 씨앗을 제거하고 대신 자신의 삶을 긍정하는 씨앗을 파종한다. 그리고 긴 꿈에서 깨어난 피셔는 상속받은 기업을 분사하기로 결정한다.
얼핏 보면 경쟁사의 농간에 피셔가 놀아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엔 코브는 성공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들의 강박관념을 치료해주는 치료사로 해석된다. 피셔는 뛰어 넘을 수 없는 아버지의 존재에 의해 상처받고 좌절하고 있었다. 피셔에게 아버지는 극복해야할 대상이자,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아야할 권력이었다. 그래서 피셔는 아버지와 같은 방식으로 기업을 확장하고, 세상 위에 군림하는 지배적인 기업가가 됨으로써 아버지와 같은 혈통임을 검증받고자 했다.
아버지의 권력을 상속받으려는 피셔의 인정욕망이 아버지의 방식을 확대재생산 하는 길을 선택하게 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이름(The name of Father)’으로 우리에게 강요되는 사회적 억압이다. 세상에는 무수한 아버지의 이름이 존재한다. 성공, 권력, 돈, 명예 이 모든 것들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군림하는 이데올로기들이다. 우리들은 그것 때문에 아버지의 방식을 모방하며 아버지의 욕망을 넘어섬으로써 자기존재를 확인받으려고 한다.
하지만 그런 방식은 아버지로 대변되는 욕망에 포획되어 자기 해체를 촉진하는 것은 물론 노예의 삶으로 치닫게 만든다. 노예의 삶은 주인에게 복종하면 될 뿐 결과에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편안하다. 그러나 노예의 삶은 주인의 입맛에 맞는 방식으로 살 때에만 인정받는다. 따라서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내 삶의 주인으로 군림할 때 주류담론에서 벗어난 모든 삶은 2등으로 전락하고 만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임제 스님은 노예의 길을 벗어 던지고 삶의 주인공이 되라고 한다. ‘어느 길로 가든 주인으로 살아간다면 그 길이 어떤 길이든 모두 참다운 길(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피셔는 주류담론에 포획된 노예의 삶을 포기하고 주인의 삶을 선택한 것이다. 아버지의 방식이 아닌 자신의 길을 선택함으로써 피셔는 자신의 삶을 되찾고 기업은 공존의 가치를 존중하게 된다.
이 영화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또 다른 메시지는 생각의 씨앗이다. 마음속에 부정적이고, 자신을 비하하는 인식을 심어 놓으면 그 씨앗으로부터 온갖 부정적인 생각의 열매가 영글게 된다. 유식학에서는 이것을 ‘명언종자名言種子’라고 한다. 인식의 단위가 되는 특정한 언어적 내용은 우리들의 생각을 구성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는 인자가 된다. 코브는 피셔의 무의식에 아버지의 사랑과 ‘자신의 삶’이라는 생각의 씨앗을 파종함으로써 부정적 인식에 가려져 있던 피셔의 삶을 되찾게 해 준다.
선사들 역시 모든 중생들이 부처님과 동일한 불성佛性을 지녔다는 생각을 심어줌으로써 부정적 자기인식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나는 불성을 가진 존엄한 존재’라는 자기 인식은 행복한 인생을 만들어 가는 생각의 씨앗이 된다. 마음속에 긍정적이고, 자기의 존엄성을 확립하는 생각의 씨앗을 심을 때 우리는 주인공의 삶이라는 열매를 수확하게 된다. 반면 ‘나는 죄인이다’, ‘나는 무능하다’는 등의 부정적인 씨앗을 심으면 그와 같은 씨앗이 생각을 어둡게 만들고 삶을 불행하게 만든다.
이런 맥락에서 ‘범부와 성인이 다르지 않다(凡聖同一)’는 달마 스님의 가르침은 우리마음에 절대긍정의 씨앗을 파종하는 것이다. ‘나는 불성을 지닌 중생이기에 부처님과 대등한 존재이며, 부처님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살아가면 삶이 달라진다. 그와 같은 생각의 씨앗은 밝고 긍정적인 생각의 열매를 영글게 하며, 우리의 삶을 위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인셉션을 통해 읽은 수 있는 선적인 메시지는 피셔의 견성見性 체험이다. 피셔는 자신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버리고 자기의 본래 모습을 바로 봄으로써 자기 존재의 무한한 가치를 깨닫게 되고, 그것을 통해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회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