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해인사의 성보(聖寶)들-해인사의 금속 공예품들②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가람의 향기 - 시명 1988년 01월 71호
해인사의 금속 공예품 가운데에는 지난호에 소개했던 범종, 향로를 비롯하여 정병(淨甁), 요령(搖鈴), 금강저(金剛杵), 향합(香盒), 생활 용기로 쓰인 화로(火盧) 들이 있다. 홍치명(弘治銘) 종 말고도 조선 영조 42년(서기 l766년)에 조성되었다는 대종(大鐘)이 있으며, 사명대사의 유품으로 알려진 작은 종이 보관되어 있다.
이와 겉이 많은 금속 공예품 가운데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보물급의 유품은 별로 없지만, 해인사 보물장에는 선사(先師)들이 평소 소중하게 써서 손때가 묻은 친근한 것들이 많이 보관되어 있다. 특히 이 가운데에서 정병은 박물관같은 곳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불교 유물로서 두드러진 것 중의 하나이다.
정병은 향로와 더불어 부처님께 맑은 물을 바치는 공양구(供養具)로서, 대부분의 작품이 불교가 활발했던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 많이 만들어졌다. 정병은 이름대로 말은 물을 담아 썼던 물병인데, 본래는 스님들의 일용 지참물이었다. 특히 마실 물이 귀했던 인도나 고산 지역에서는 목이 긴 물병이 일상의 필수품이었는데, 차츰 부처님께 맑은 물을 바치는 공양구로 그 쓰임새의 폭이 넓어졌다고 볼 수 있다.
정병은 범어(梵語)로 쿤디카Kundika 라고 하여 군지(軍持) 또는 군치가(捃稚迦)라 음역하며, 조병(操甁)이라고도 불린다. 이 정병은 대개 만든 재료에 따라서 정병이라고도 하고 촉병(觸甁)이라고도 하는데, 정병은 도기나 자기 또는 유리 따위로 만들어 깨끗한 물을 담아 깨끗한 손을 씻거나 물을 마시는 데에 사용했으며, 촉병은 동과 철 따위의 금속제품으로 만들어져, 더러운 손을 씻거나 뒷물을 하는 데에 썼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일찌기 당나라 승려로서 인도에서 유학했던 의정(義浮) 스님이 남긴 남해기소내법전(南海寄掃內法傳)이라는 기행문에 나타난다.
“대개 물은 정(浮)과 촉(觸)으로 나누어 사용하며, 따라서 병은 두개이다. 정병은 와자(瓦瓷) 또는 자자기로 만들고, 촉병은 동과 철을 함께 사용하기도 한다. 정병은 때에 따라 먹을 물을 담아 썼으며, 촉병은 편리한 대로 쓰인다. 그러므로 정병은 깨끗한 손으로 일정한 장소에 보관하지만 촉병은 손에 잡기 쉬운 장소에 놓고 함부로 사용한다. 정병의 물은 아무 때에나 마셔도 되지만 촉병의 물은 시수(時水)라 하여 특히 오후에는 마실 수 없다”라고 그 기행문에 기록되어 있다.
또한 고려시대에 선화사절(宣和使節)로 왔던 송나라 사람 서극(徐兢)은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 “고려의 정병은 목이 길고 배가 불룩하게 부르며 부리가 하나 있고, 그 중간이 두 마디로 되어 있으며 이어 둥근 테가 있다. 그리고 뚜껑과 몸 가운데에는 가슴이 있고 그 위에 또 작은 목이 있는데, 비녀와 붓의 형상을 본뜬 것 같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현재 남아 있는 정병의 모습을 비교적 상세하게 그렸음을 알 수 있다.
대승경전에서는 이 정병은 특히 천수관음사십수(千手觀音四十手) 가운데 한 지물(持物)이 되며, 다라니집경(院羅尼集經)에서는 대범천이 왼손에 군지(軍持) 즉 정병을 들고 있다고 하였다. 불교 회화속에서 특히 보살들이 흔히 들고 있는 이 정병은 이름도 다양하여, 정병(淨甁), 감로병(甘露甁), 수병(水甁뼈), 보병(寶甁) 따위로 불리운다.
현재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는 금속 제품의 정병은 조선시대 인조(仁祖) 때의 것이라고 전해 온다. 총 높이가 39센티미터의 병으로서, 은(銀)을 가지고 산수화를 상감(象嵌)한 세공 수법으로 보아 촉병(觸甁)이라기 보다는 감로병 곧 정병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요령(搖鈴)은 불구(佛具)의 하나로서 금강령(金剛鈴)이라고도 불린다. 해인사의 요령들은 손잡이 모양이 보통의 요령들처럼 네 개의 고리로 되어 있으며, 요령의 밑부분은 연꽃이나 꽃이 핀 모양을 이루고, 요령의 어깨 부분에도 연꽃을 조각하였다. 그뿐 아니라 다섯 군데와 여섯 군데에 신장상(神將像)을 각각 조각한 것도 있는데, 그 모습이 매우 섬세하고 우아하다. 이 요령들은 고려 숙종(肅宗) 때 만들어진 것으로 총 높이는 23 센티미터이다.
해인사에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금강저(金剛杵)가 두 벌 보관되어 있다. 금강저는 스님네들이 수도를 할 때 모든 번뇌와 삿된 기운을 물리치는 힘을 나타내는 불구(佛具)이며, 본래 고대 인도에서는 무기로 쓰였다. 모양은 피뢰침과 비슷하며, 불교 그림에서 제석천(帝釋天)이나 집금강신(執金剛神)이 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밀교(密敎) 경전에서도 자주 밀교의 상징물로 나타나거니와, 부처님의 지혜의 견고함과, 번뇌와 삿된 무리를 물리친다는 뜻음 상징하는 법구(法具)이다.
향합(香盒)은 향을 넣어 쓰던 그릇으로서, 은상감(銀象嵌) 문양이 새겨져 있으며 조선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해인사에는 지름 100센티미터, 높이 50 센티미터의 아주 큰 놋쇠 화로가 있는데, 조선시대 선조 때의 유물이라고 전하며 생활 용기로 쓴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해인사 구광루(九光樓)의 옛종루에는 조선시대부터 얼마 전까지 사용해오던 대종(大鐘)이 있는데, 무게가 4 천근이나 되며 그 소리가 청아하고 아름다와서 해질 무렵 석양에 종이 올리면 해인사 서편 낙조와 함께 퍽 아름다운 정취를 이루었다. 그러나 얼마 전에 금이 가서 지금은 옛날 그 자리에 그냥 보관되어 있을 뿐, 그 소리를 다시 들을 수 없어 아쉽다.
사명대사의 유물이라고 전하는 소종(小鐘)은 크기가 작기는 하지만 그 모습이 짜임새가 있으며 매우 아름답다. 특히 종의 윗덮개에 해당되는 천판(天板)을 향하고 있는 연꽃잎 모양과 작은 꽃으로 장식된 상대(上帶)나 야무진 유두(乳頭)나 당초(唐草)무늬의 유랑(乳廊), 그리고 군데군데 수놓은 듯 뚜렷하게 양각된 연꽃 모양의 당좌(撞座)와 하대(下帶)의 당초무늬는 퍽 아름답다.
이밖에도 조선 말기에 고종이 헌납했다는, 은으로 만든 꽃병이 있으며, 불탄일(佛誕日)에 향수를 담아 탄생불(誕生佛)을 목욕시키던, 조선 영조임금의 헌납품으로 추정되는 그릇이 있다.
다음 호에는 회화와 서예 작품을 소개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