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맑고 탁함을 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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續 선과 그림이야기 - 김현정
2010년 06월 340호
아름다운 꽃이라고 해서 그것이 모두 장미일 이유가 없듯이, 모든 선화禪畵가 반드시 선화禪畵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저 그림 속에 선의 맛(선미禪味)이 깃들어 있으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 선화이다. 세상에 선화의 기준이 있어서 이것이다 저것이다로 정해진 것이 아니므로 어쩌면 선화라고 하는 것은 작가의 몫이 아니라 오히려 철저히 감상자의 입장에서 결정되는 것일 수 있다.
그렇다면 세간에서는 무엇을 선화라고 정의하는가. 요점을 정리해 보자면 작가가 선승이고, 그림을 그린 화풍이 간결, 담박하면서도 즉흥적이고 파격적인 효과로 선미를 드러내고 있는 그림을 선화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좀더 중요한 것은 선이 지향하고 있는 의미(이것을 선지禪指 혹은 선지禪志라고 할 수 있다)를 밝히고 있는가의 여부이다. 그러므로 위의 조건에 꼭 부합하지 않는다고 해도 감상자가 그 그림을 통해 뭔가 진리에 가까이 갈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면 선화라고 통 크게 인정할 수도 있겠다. 예술에 정답은 있을 수 없다. 그만큼 유연해야 하고, 또 주관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그래야만 작가나 감상자 모두에게 넉넉히 서 있을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조선 중기 숙종대의 화원이었던 이명욱(李明郁, 생몰년 미상)의 유일한 유작인 <어초문답도魚樵問答圖>는 선화가 아니면서도 나와 같은 감상자 입장에서 선화의 범주에 꼭 넣고 싶은 그림이다. 그림의 품격도 품격이지만 그 내용이 더욱 그렇기 때문이다. 이 그림은 중국 전국戰國시대 초楚나라의 대부大夫 굴원屈原이라는 사람이 쓴〈어부사漁父辭〉라는 글을 모티프로 삼아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이 왜 선에 가까이 있는가 하는 문제는 그림의 품격과 화풍을 논하기 전에 그 배경이 되는〈어부사〉를 먼저 언급해야 이야기할 수 있다. 어부란 당시의 은자隱者를 뜻한다. 굴원이 상강湘江의 물가에서 어부를 가장한 한 은자와 문답한 것을 당시 초나라 사람들이 엮어 전한 글이라고도 하고, 굴원이 자문자답한 시라고도 전한다. 그러면 그림 속으로 들어가 잠시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화면을 꽉 채우고 있는 두 사람 몸짓과 얼굴 표정에서 이미 대화 내용을 들을 수 있다. 초부樵夫로 그려진 굴원의 허리춤에는 나무를 하기 위한 작은 도끼가 매달려 있기는 하지만 몇 번 쓰지 않았던 행색이 역력하고, 그의 입은 새를 보면 여기저기 누벼 입기는 하였으나 앞섶을 잘 여미고 허리띠로 예의를 갖추었으니 나름 의관을 정제하고 나무를 하겠다고 나선 셈이다. 게다가 버선에 신발까지 챙겨 신고는 무딘 도끼 하나로 구색 갖추며 초야에 묻혀 산다고 읊고 있으니 사정 모르는 우리 눈에도 너무나 어설퍼 그는 강상에 묻혀 살기에는 아직까지 사회의 물이 떨 빠졌음을 여실히 알 수 있다. 반면 고수인 어부는 어떤가. 발은 벗어 맨발이고 옷은 입는 둥 마는 둥이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옷 밖으로 드러난 잘 발달된 팔 다리의 근육은 그간 강상에 노닐며 지낸 어부 생활의 녹록지 않은 관록을 보여주고 있다. 벌써 그의 손에는 이른 아침 낚시로 잡은 물고기 몇 마리가 들려 있으니 말이다. 이야기는 물가 갈대밭 사이 길이 배경인데, 갈대 잎이 꼼짝도 않는 것을 보면 바람 한 점 없는 갠 날 아침일 터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선 굵게 휘날리는 옷자락을 보면 빠른 속도감을 느낄 수 있다. 두 사람의 통성명 이후 굴원의 투정 어린 신세 한탄이 이미 끝나고 어부는 굴원을 어린아이 바라보듯 하며 탁한 창랑에 발을 씻을 요량으로 얼굴에는 묘한 미소를 띠고 가던 길을 재촉하는 그 순간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