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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禪의 시작은 붓다 석가모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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續 선과 그림이야기 - 김현정 2010년 03월 337호

석가여래의 수도처를 두고 설산이라고 전해진 것은 아마도 모진 고행이 히말라야를 넘는 일 만큼이나 어려웠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곳에 대대로 사는 고산족조차도 만년설이 덮인 그 준봉들을 넘는 것이 힘든 일인데 수도를 그곳에서 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과도 맞지 않을 뿐 더러 현실적으로도 불가능에 가깝다. 아마도‘설산 = 모진 고행’이라고 하는 문학적 은유가 이 런 오해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불소행찬佛所行讚》이라고 하는 석가모니일대 기를 기록한 대표적인 경전이나 붓다의 일생을 여덟 장면의 그림으로 요약한 팔상도, 기타 여 러 불교 경전에도 여전히‘설산수도’라고 명시된 것을 보면 불교가 동쪽으로 전래되고 불경이 번역되는 과정에서 수행이나 수도는 역시 산중에서 해야 제대로라고 하는 동양적 사고가 여기 에 투영되었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이 그림의 배경은 추운 겨울 산중이다. 그리고 화면의 반이나 차지하는 깎아지른 절 벽과 눈 덮인 구릉, 추운 설산에서나 산다는 가시나무와 같은 잡목들과 앙상한 나뭇가지는 설 산임을 강하게 암시하는 장치물들이다. 양해梁楷가 그린 석가여래의 모습은 그런 모습과는 거 리가 먼, 대중들을 위한 붓다는 아니었다. 보통은 원만하고 고고하면서도 자비로운 모습의 붓 다가 그려지지만, 이 그림 속의 주인공은 지금 막 고행을 마치고 나온 툭 치면 부서질 것 같은 꾀죄죄한 행색으로 오히려 그 모습이 너무나 현실적이다. 하긴 육년의 수도를 마치고 막 산에 서 내려온 사람의 모습이라면 실제로 행색이야 어떠했을지는 말해 무엇하랴. 수도를 마치고 성 도를 이룬 분이라는 표식은 살아 있는 눈빛만이 대신할 수 있을 뿐이다.
추운 겨울을 아랑곳하지 않고 한쪽 어께를 드러내고 합장을 한 그의 모습은 남루하기 짝이 없으나 마치 물에서 바로 나온 듯 물결 치듯 펄럭이는 가사 자락 밖으로 나온 까만 맨발과 가슴 앞에 모은 손, 광대뼈가 드러난 앙상한 얼굴은 그를 누르고 있는 절벽이나 마른 고목과 절묘하게 대구를 이루며 붓다의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보편적으로 불교계에서는 부처를 조성할 때 모습은 어떠해야 한다는 종교적 약속이 있다. 예를 들자면 붓다는 원만한 상호를 갖 추어야 하고 귀는 크고 길며 양 눈썹 사이 미간에서는 광명을 발하며 그의 몸 뒤로는 한 길이나 되는 빛을 두르고 있는 모습 등, 도 상적 규범의 32상이라고 하는 의궤가 있다. 하지만 이 그림은 예불의 대상이 되는 종교적 규범을 뛰어넘은 그림이다. 여기서 양해가 보여주고자 하는 붓다는 인간적이며 현실의 붓다이다. 인간 싯다르타가 그곳에 도달한 것과 같이 우리도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여 지를 알리고자 한 것이다. 이것은 남송시대 선의 대중화와 함께 드러나기 시작한 사회적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양해가 그려낸 붓다는 인간세상에 속해 있고, 나처럼 고통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며 또한 진리를 위해 노력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양해는 자 신의 다른 그림들과는 다른 필법을 구사하였다. 원래 선화의 백미라 일컬어지는 양해의 그림은 여백과 절제, 우연성과 담백함 같은 것이 특징이지만, 이 그림은 약간의 채색과 세밀한 묘사를 통해 좀더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이루어내고 있다. 표현하고자 하는 목적에 따라 필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작가의 드러난 능력 중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