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마 스님의 원래 모습은 어떠했을까. 아쉽게도 달마 스님의 행적에 대해서 실제 사실이 크
게 알려진 바가 없다. 지금 알려져 있는 사실들은 달마 선사 사후 이백여년이 지난 후에 적혀진 사실이므로 그대로 믿기에는 좀 무리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 것도 사실이다.
동국대학교 성본 스님의 연구에 의하면 달마 스님의 존재를 전하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동
위東魏의 양현지楊衒之라고 하는 사람이 쓴 <낙양가람기洛陽伽藍記>(547년 작)이다. <낙양가
람기>는 일찍이 불교가 가장 성황을 이뤘던 중국 북위 시대의 수도 낙양에 있었던 당시의 유명
한 사원의 실태를 기록한 책이니만큼 달마 조사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한 글은 아니었다. 하지
만 달마 스님의 열반하신 528년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달마 스님 열반 후 20년 안쪽이니 그
명성이나 인지도를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 후 당唐 645년에 도선(道宣, 596~667)
에 의해 쓰여진 ≪속고승전續高僧傳≫(양梁의 혜교 스님이 쓴 고승전을 계승해 645년까지 144
인의 고승들에 대한 기록)에 달마 스님과 그의 제자였던 혜가 스님의 선의 고승으로서 전기
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달마 선사에 대한 기록이 이 정도이고 보니 그의 진영(眞影, 고승들의 초상화적 성격의 인
물화)이 남아 있을 리는 만무하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달마도는 13세기 남송대 이후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으로 불교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 기존의 세밀하고 정교한 신앙용 불화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양식의 등장이었다. 풍채 좋고 인상 고약한달마의 모습은 아마도 송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나한도羅漢圖>[나한은 라한(Arhat)의 줄임말로 부처의 제자 중에 깨달음의 단계에 오른 사람을 말한다.]에 등장하는 그 서역 승려의 인상착의에 착상하여 몽타아주를 따온 것이 틀림없다. 나한도의 채색은 생략하여 검은 먹의 강약과 농담만을 조절하였고, 붓질의 속도감에 변화를 주어 아주 간결하면서도 강한 인상의 달마도를 완성한 것이 오늘날 우리가 보는 달마도이다. 이는 남송시대 그림이 비교적 생략적이면서도 관조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는 공통적 양식에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산수가 아닌 인물을 그릴 때도 대상의 정신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한 가지를 잡아 빠르게 완성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이것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보자면 내용적으로는 캐리커처(사건이나 인물의 특징을 잡아 익살스럽게 표현한 그림)이고 빠르게 단순화 시키고 요약되었다는 점에서 양식적으로는 크로키(Croquis)에 가까운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원래의 달마도가 캐리커처나 크로키와 다른 점이라면 그림 속의 선과 점을 통해 진리를 드러내려고 했던 관조미觀照美에 있다.
중국 원나라 때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그린 나한도는 나한상과 달마상 간의 관계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화면 안 나한은 두 손을모으고 옆을 응시하고 있다. 단정치 못한 옷매무새에 곱지 않은 눈빛은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평상심과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인다. 덥수룩한 수염과 매부리코, 눈꺼풀은 처져 있고, 툭 튀어 나온 눈하며 산속에 고요히 거하는 선사의 고상한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분이 거기 있다. 하지만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고 눈빛만은 살아 있는 호안(虎眼, 호랑이의 눈빛) 그것이다. 그것이 그림 속의 달마를 살아 숨쉬게 하는 근원이다. 꼭 아름다워야만 그림인가, 정신을 드러내는 것이 진정한 그림이 아니겠는가하는 것이 옛 선화나 인물화의 궁극이었다. 이런 면에서 선화는 매우 현대 미술의 지향점과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