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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산廬山 혜원 선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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續 선과 그림이야기 - 김현정 2009년 12월 334호
우리가 알고 있는 선禪의 시조는 보리달마(菩提達磨 ?~528?) 스님이다. 달마 스님은 저 서역의 천축국에서부터 갈댓잎 하나에 몸을 의지하여 중국에 도달하였고, 그 놀랍고도 우발적인 사건으로 중국에 선종이 성립하게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달마 스님의 출현 하나만으로 선이라고 하는 흐름이 갑자기 불어난 강물이 되고, 천오백년도 넘게 넘쳐흐를 수가 있었을까. 그래서 역사에는 배경이 있고, 필연이란 것도 있는 것 같다.
이천년 전 중국에 불교가 들어온 것도 그럴 만하여 그렇게 된 것이고, 남북조시대에 이르러 선종이라는 큰 흐름이 형성되었을 때도 이미 이전부터 드러나기 시작한 크고 작은 물길을 보면서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있었어야 했다. 불교가 중국에 들어와 널리 받아들여지게 된 것은 이것이 중국적인 언어와 문맥으로 이해될 수 있게 된 이후였다. 서역으로부터 온 승려들은 중국인의 심성에 부합하는 언어로 불교 경전을 번역하기 시작하였고, 그러는 와중에 중국 내에서는 도가사상의 한 흐름인 황로학(黃老學: 고대 삼황 중의 하나인 황제와 도가의 시조인 노자의 이론을 중심으로 한 학파)이 위정자들을 중심으로 유행하였다. 같은 흐름에서 초기의 불교 경전들은 삼매수행(三昧 : 마음을 하나에 집중하는 정신력의 수행)과 선정을 추구하는 방법을 담은 내용이 주로 번역되었다. 이미 중국의 전통사상에는 조기법(調氣法 : 기운을 조절하는 수행)이나《장자莊子》에서는‘좌망(坐忘 : 조용히 앉아 잡념을 버리고 무아의 경지에 들어가 있는 상태)’이 이야기되고 있었던 것은 이미 고대로부터 신비로운 체험을 얻기 위한 모종의 수양법이 존재했었음을 보여준다.
이런 초기 중국 불교의 흐름에 있었던 분이 여산 혜원(廬山 慧遠, 334~416) 선사이다. 그는 ≪반주삼매경≫에 기초한 종교결사를 구성하였던 것으로 유명한데, ≪사문불경왕자론沙門不敬王者論≫을 통해서는 사문 즉 불교의 출가자인 승려는 세속을 떠난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신의 어버이나 자신의 지배자인 국왕에게조차 예경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혜원 선사의 이러한 주장은 당시 왕실의 권위가 귀족만 못했던 중국 남조에서는 널리 받아들여졌고, 유교적 관점에 서 있던 군주들에게 불교수행자를 배척하지 않도록 설득하여 크게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이러한 혜원 선사가 주로 머물렀던 곳이 바로 여산廬山이다. 여산은 현재 중국 강서성江西省 구강시九江市에 있는데, 북쪽으로는 중국의 남북을 가르는 양자강과 접한 절경으로 아름답고, 우아하면서도 가파른 산으로 평가되어 지금도 중국 국내관광객들에게 매우 인기가 높은 산이기도 하다. 소동파, 이백과 같은 이름 높은 문인들은 입 모아 여산의 경치에 반하여 산중 여기저기에 시를 남겼기도 하였다하고, 승경勝景으로 이름 높다보니 불교 사찰, 도관, 유교의 사원은 물론이고 명대에는 이슬람사원, 청대 이후에는 기독교 교회까지 종교박람회를 하듯 수많은 종교사원들이 그 산중에 자리 잡고 있다. 혜원 스님은 일찍이 이곳 여산을 사랑하여 동림사東林寺라는 절을 시주받아 머물렀다고 한다. 가보진 못했으나 여산 동쪽 숲 어딘가에 있는 절이지 싶다. 자신의 법호를 여산이라고 했던 만큼 여산을 사랑한 선사였고, 여산 혜원 선사의 수행 중 벌어진 유명한 일화가 이곳 여산 호계虎溪에 전해지고 있으니 그것이 유명한 호계삼소虎溪三笑라는 이야기이다.(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