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술사를 공부하다보면 ‘고졸古拙하다’는 용어를 쓰게 된다. 특히 서화書畵를 감평할 때 주로 사용하였는데, 묵객墨客들은 나이가 들수록 또 필력이 좀 된다싶을 때 이 ‘졸拙’하다는 평을 받기를 원했다. 사전적 의미에서 졸拙이란 ‘서투르다’라는 말이다. 그런데 앞에 옛 고(古)자 하나를 붙였을 뿐인데, 뜻은 완전히 달라진다. ‘기교는 없으나 예스럽고 소박하다’는 의미다. 작품이 고졸하면 옛스러운 맛이 있고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어린아이와 같은 순박함이 있다는 평이니 작가들이 탐을 냄직한 감상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졸’ 앞에 어릴 치稚를 붙이면 치졸이 되는데, 유치하고 졸렬하다는 뜻이다. 사람이 치졸하면 문제지만 예술품이 치졸하면 다행히도 여기에는 치졸미稚拙美가 생긴다. 즉 소박하고 유치한 예술품이 갖는 독특한 아름다움이 생긴다는 뜻이다. 이것은 현대나 근대 예술품보다는 고대 선사시대미술이나 민속예술품 등이 지니고 있는 그만의 아름다움을 논할 때 쓰는 말이다.
어찌보면 치졸미는 정교하게 의도된 아름다움이라고는 할 수 없으니 논외로 하고, 오늘은 고졸古拙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 고졸의 의미와 상반된 것이 바로 기교技巧나 공교(工巧; 솜씨나 기술이 교묘하고 재치 있음) 쯤 되지 않을까 싶다. 즉 그림에서는 붓질과 먹을 쓰는 기술을 연마하여 그 솜씨가 매우 뛰어난 것을 의미한다. 붓을 처음 들기 시작한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필력을 연마하고 붓놀림의 기술을 익히는 것이 우선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면 기술을 드러내는 것보다 그것을 감추는 일이 더욱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기술을 드러내어 기교 넘치는 그림을 하수下手라고 한다면 고수는 어눌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순박하면서도 절제된 기술이 숨어 있는 붓질을 구사한다.
대교약졸(大巧若拙;훌륭한 기교는 도리어 졸렬한 듯 보인다)이란 말은 노자老子로부터 유래하였다. 이는 아주 교묘한 재주를 가진 사람은 그 재주를 자랑하지 않으므로 언뜻 보기엔 서투른 것 같다는 뜻인데 이런 장면은 종종 무협영화에서 목격된다. 눈 먼 외팔이 무사가 알고 보니 고수 중에 최고 칼잡이였다든지, 취한 척하면서 상대방의 공격을 모두 받아 내는 취권 같은 것도 여기에 속하는 부류이다.
중고등학교 그림을 처음 배우는 시절, 데생이면 데생, 정물이면 정물 척척 그려내면 그것이 최고인 줄 알지만 이제 인생의 절정에 다다른 노화백들은 다시 어린아이들과 같은 그림으로 돌아간다. ‘바보산수’라는 이름이 붙었던 운보 김기창 화백의 그림이 그렇고, 장욱진 선생의 어린이와 같은 그림이 바로 그런 것이다. 고졸에는 소박하고 예스러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는 바로 ‘순수함’이 합쳐져야 비로소 제대로 된 경지의 ‘고졸’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유행하는 생얼이나 투명화장 열풍에서도 이런 졸박함의 트랜드를 읽을 수 있다. 진짜 잘 된 화장은 한 듯 안한 듯 한 정도의 것이 최고라는 품평도 있다. 하지만 여자의 맨 얼굴이 제대로 먹히려면(!) 그야말로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 그래서 아마 피부과가 문전성시를 이루고 온갖 각종 피부미용법들이 가격 고하를 막론하고 시술되나보다. 하지만 피부의 기초가 어디 의학과 기술의 승리만이랴. 피부가 좋으려면 꾸준히 운동 하고 잠 잘 자고 소박하게 잘 먹고, 그리고 마음으로는 욕심을 버리고 즐겁게 사는 것이 최고의 도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역시 기교는 쉬우나 순수하면서도 기품이 넘치는 경지는 도달하기 어려운 곳에 있다.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자면 고졸은 붓끝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순수할 때 이루어지는 것으로 그 근원인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 마음이 담박하여야 붓질이 소박해질 수 있고 그래야 기교를 덜어낸 소박하고 순수한 그림이 완성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어린아이같이 순수한 마음이란 욕심을 덜어낼 때 가능해 진다. 기교를 덜어내려면 붓을 움직이는 횟수를 덜어내야 하고, 먹도 아껴야한다. 그래서 욕심을 버려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