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와 주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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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대 - 성준 / 해인사 승가대학 4학년
2010년 08월 342호
많은 사회과학 공부를 하다보면 소위 이야기하는 학설學說의 지리한 다툼과 설명을 마주 대하지 않을 수 없다. 흔히들 쉽게 접하는 류類중에 하나가 바로 주관설主觀設 객관설客觀設 그리고 단골로 등장하는 회색분자 절리설絶裏設이다, 어느 순간인가 이러한 대립들을 보면서 든 생각은 “과연 이 세상에 진정한 객관客觀이 존재하는가” 였다.
잠시 말장난을 해보자면 진정한 객관이란 보편적普遍的 합리合理를 담보할 수 있는 것 이라고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과연 보편적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이야기하는 걸까.
보편이란 “두루 널리 미침, 모든 것에 공통되거나 들어맞는 그런 것”이라 사전에 정의 된다. 참으로 애매한 것이다.
실지로 서두에 이야기 했던 객관설에 대한 비판논거로 가장 자주 등장하는 것이 객관의 기준의 모호함이다. 과연 어느 정도를 객관이라 하며 어느 정도를 보편이라 하는가. 가장 일반적 평균인이 판단하는 합리적 근거란 무슨 이야기인가?
키에르 케고르의 “주체성이 진리다”라는 말에는 이러한 의미가 내재적으로 흐르는 것 같다. 주체적이고 개별적인(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것이 아닌), 현실적 자기 존재만이 바로 확인되는 진리이며 실존實存 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들 저지르는 실수. 진리라는 거대한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 결국엔 자기 자신의 회기, 그 후에 나 밖의 거대한 그 무엇보다 비교할 수 없는 크기의 아我가 서 있다.
키에르 케고르는 여기까지 본 것일까? (아직 난 키에르 케고르에 대해 잘 모른다)
그래서 “주체성이 진리다”라는 명제까지만 도착했을까.(나라는 거대한 벽은 무너뜨릴 엄두가 나지 않았기에 충분히 진리라 전도된 생각을 내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언뜻 개인적 비약을 해보자면(아직 정보가 부족해서 비약일 수 밖에 없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닮았다. 결국엔 삼라만상은 너의 마음도 우리의 마음도 아닌 바로 이 마음이 지어놓은 세계이기에…
하지만 결국엔 나와 남이 둘이 아니고 자타가 둘이 아닌 경지 아상我相이 무너져 내려버린 그 곳엔 어쩌면 그가 그토록 찾아 해멘 진정한 객관 진정한 보편 진정한 합리가 거기에 있을지도… 이미 그 곳엔 주·객의 구별이 없고 나와 남의 구별이 의미 없는 곳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