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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 - 내 생애 가장 특별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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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바람 물결소리 - 동명(차창용)┃제 39기 행자 2010년 08월 342호
나는 지금 아주 특별한 곳에서 여행 중이다. 지난 인연을 잠시 접고 전화도 되지 않고, 편지를 보낼 수도 없고 인터넷도 사용할 수 없는 오지에서 상상 속에서만 꿈꾸었던 세계를 몇 개월째 체험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오랫동안 그려왔던 세계였던가. 그럼에도 이곳으로 오기까지 나는 긴 세월을 보내야만 했고, 여러 번 망설여야만 했으며, 언제나처럼 한 발 늦게 새로운 세상을 찾았다.
가야산 해인사!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매화교도였던 카샤파 삼형제에게 이른바 ‘불의 설법’을 베푸신 산의 이름도 가야산이다. 가야산 자락에 들어서면서 나는 산의 위용에 한껏 숙연해졌다. 이 험준한 산자락에 바다 해海자가 들어간 해인사가 있었구나.
해인사의 보이지 않는 바닷물로 40년 이상을 불태웠던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화로를 꺼야 하리라!
은사스님께서 소개해 주신 해인사 강원의 학장스님을 찾았더니 학장스님께서는 내게 이틀 동안 가야산을 등반하라고 말씀하셨다. 가야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풍경은 비와 안개와 구름과 바위가 파도처럼 출렁거리는 바다였다. 저 삼라만상의 바다가 바로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법이요, 이치일 것이다. 저 바다 한가운데 있는 절이 해인사海印寺인 이유를 알겠다. 해인사로의 출가도 그렇게 장엄한 풍경의 한 가운데로 들어가는 장엄한 여행일 것인가?
그러나 삼천배를 끝내고 삭발식을 준비하면서 환상은 끝나고 현실이 시작되었다. 부전장이 “입방”하는 소리를 듣고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나를 보고 별좌스님이 “동작 봐라! 우리 때 같으면 난리 났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군대에 온 것이구나. 주눅이 잔뜩 들어 향을 꽂고 자리로 뛰어가 삼배 올리는 것만으로 숨이 턱까지 올라왔다. 군대보다 더 많은 제약이 따를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일을 하고 힘든 일을 해야 하는 행자생활은 그렇게 숨이 턱까지 오른 채로 시작되었다.
삭발식을 하는 짧은 시간 동안 정신이 하나도 없으면서도 만감이 교차했다. 정말로 내가 출가했다는 실감이 삭발하면서 느껴졌고, 욕락을 추구했던 지난 시절이 싹둑 베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 새로운 땅에 들어섰음을 실감하면서 삭발이 출가 수행자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꼈다. 실로 삭발은 이 특별한 여행이 진정한 출발이었던 것이다.
삭발한 후 나의 생활은 완벽하게 달라졌다. 행자복으로 갈아입고 행전을 매니 한없이 어색했다. 걸을 때는 두 손을 모아 손마디를 최대한 보이지 않게 하는 ‘차수’자세를 취해야 했다.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해서는 안 되고, 웃어서도 안 되고, 주위를 두리번거려서도 안 되고, 스님들과 이야기할 때는 눈을 쳐다보면 안 되고, 해우소에 들어갈 때는 상의를 벗고 들어가야 했다. 어디를 갈 때는 상행자나 스님에게 반드시 보고해야 했고, 돌아와서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어린아이가 된 것 같기도 하고, 이제야 사람이 된 것 같기도 했다.
하루는 길면서도 매우 짧기도 했다. 저녁 9시에 취침에 들면 바로 전에 누운 것 같은데, 어느새 기상시간인 2시50분 직전이었다. 2시50분에 일과를 시작했는가 하면 금세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곤 했다. 그만큼 행자실의 일정은 꽉 짜여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몸이 그토록 바쁜데도 마음은 오히려 한가한 것이었다. 팔다리 어깨가 쑤시고 아파도 마음이 편안하니 충분히 견딜 수 있었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속가의 부엌에 해당하는 ‘후원’에서 보냈다. 법당이나 요사채처럼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뒤에 있다고 해서 후원後園이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후원의 하루는 새벽 일찍 시작된다.
2시50분에 일어나면 행자들은 바로 후원으로 들어가는데, 채공장은 김과 치즈를 반찬 그릇에 담고, 공양주는 쌀을 씻어 솥에 안치고, 갱두는 숭늉을 끓일 준비를 해놓는다. 사부대중의 식사를 책임지는 만큼 후원 생활은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후원에서 짓는 복으로 평생 승려생활을 할 수 있다 하니 감내하는 것은 당연하다.
몇 개월 동안 사찰에서 밥을 지어보는 것, 생각해보면 그런 기회를 갖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더욱이 나는 2개월여의 공양주 생활을 마치고 국을 끓이는 갱두 소임까지 맡게 되었다. 김치찌개밖에 끓일 줄 몰랐던 내가 채소로 끓일 수 있는 대부분의 국을 능수능란하게 끓일 수 있게 된 것도 큰 보람이다. 이제는 산골의 토굴에서 혼자서 수행해도 문제 없겠다 싶다.
원력을 굳게 세웠지만 마구니의 힘도 만만치 않다. 내가 이 길을 왜 해야 하는냐 하고 짜증을 내기 시작하면 순간적으로 신심이 바닥나게 된다. 예를 들면 선방스님들의 축구 운력에 동원되어 과일을 깎을 때, 왜 우리가 수업까지 빼 먹으며 스님들 운동하는 것까지 도와야 하는지 의문을 품으면 마구니의 군사력이 막강해지곤 한다. 빈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옛 여인에 대한 생각도 떨쳐버리기 힘든 마구니이다. 행자실에 귀빈의 상을 따로 차릴 때도 짜증이 몰려온다.
무엇보다도, 도반 행자들이 하나 둘 산문을 나갈 때 마다 가슴에 구멍이 하나씩 생기는 것 같다. 이 모든 마왕들을 물리치고 있는 것은 부끄럽게도 ‘시간’이다. 힘들거나 짜증나거나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나의 이 여행도 막바지에 와 있는 것이다.
또한 내가 힘든 행자 생활을 견디고 있는 것은 어쩌면 늦은 나이에 출가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속가에서 해 볼 것 다 해 보았는데 뭘 더 바랄 것인가. 결혼도 해봤고, 이혼도 해봤고, 직장도 여러 곳 다녔고, 긴 세월 대학에 몸담으면서 박사학위도 받았고, 여러 대학에서 강의도 해봤고, 글을 써서 명예도 얻었다. 이제 해보지 않은 것은 여법한 수행뿐이다.
대단한 신심도 아니요, 대단한 원력도 아니다. 출가 전 내 생애 가장 특별한 여행이었던 불교성지 순례와 같은 여행을 지금 이곳 행자실에서 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