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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갤러리 아소我所 조덕순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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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 피플 - 최현태 2010년 08월 342호

젊음과 늙음의 경계는 어디쯤일까? 나이 듦에 이르러 노경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헤아릴 수 있다면 부처님께서 ‘어서 오너라. 비구여’ 하셨듯이 육십이든 칠십이든 그 나이도 기꺼이 받을 것만 같다. 노老의 경지란 서툼과 미숙을 건너온 인생의 완숙 또는 익숙한 경지 아니던가. 완만하고 넉넉하고 편안하고 자연스러움을 곁에 둔 갤러리 아소 조덕순 관장을 보고 있으면 나이 드는 것이 두렵지 않다. 풍년이 분명한 그이의 인생 2모작을 한 번 들여다보자.

1만 시간의 법칙은 정직했다
말콤 글래드웰이 지은 책<아웃 라이어>는 자기분야에서 최소한 1만 시간의 노력을 기울이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1만 시간의 법칙을 이야기 한다. 1만 시간, 그것은 하루 3시간씩 10년에 해당하는 숫자다. 야생화를 심고 가꾸기 20여년, 조덕순관장의 만만찮은 그 세월이 전국에 하나뿐인, 어쩜 세계적으로도 하나뿐일 야생화갤러리를 세상에 내놓았다.
“제가 쉰아홉에 갤러리를 오픈했어요. 주변사람들이 꼴랑 야생화로 갤러리라니 그 돈 있으면 여행이나 가고 놀러나 다니지 아이구 참 잘났네...그러대요. 저만 제 인생을 그렸지 남들은 미쳤다 그랬어요.”
육십이 넘으면 저지르지 못할 것 같은 조바심도 있었다. 장성한 아들, 딸의 응원과 지지가 있었기에 대구시 수성구 중동 주택가에 아주 특별한 문화공간이 만들어졌다. 나를 돌아보는 공간 갤러리 아소我所는 그곳을 찾는 이들을 스며들게 한다. 한편 갤러리라는 어감이 주는 약간의 부담스러움도 더 이상 넘기 힘든 벽이 아니다.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일상의 쉼터 아니면 놀이터라고도 말하고 싶다. 온갖 지청구를 들어가며 시작했지만 갤러리 아소에서 누리는 그이의 행복은 각별하다.
“생각차이에요. 돈 있다고 갤러리 할 수 있는 사람 몇이나 될까요? 갤러리 해서 돈벌이는 안 되지만 사람벌이가 나를 부자로 살게 해요. 기본관리비는 야생화수업으로 충당하구요.”
사람벌이, 그거 참 좋다. 햇살과 바람이 드나들고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번뇌를 물리치는 갤러리 아소, 조덕순 관장이 공들여 키운 야생화분(분盆)이 사람들을 반긴다. 물레초선을 좋아하는 이, 해오라비난초를 맘에 둔 스님, 자주도라지꽃 필 때면 찾아와 고향을 그리는 중년, 가을꽃 뻐꾹나리 기다리며 한여름 이기는 인연, 사각연못의 물 바라보기를 즐기는 여인, 설치미술 같은 갤러리를 제집이라 우기는 단골.
그들이 있어 풀꽃들은 봄소식을 전하고 단풍 든다고 기별한다.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화양연화化樣年華
마당에서 따온 무화과 담은 접시한쪽에 얌전히 얹혀 있는 꽃 한 송이, 그로 하여 과일접시는 또 하나의 풍경이 된다. 그 너머로 산수국 자태가 곱다. 홀린 듯 바라보다 문득 들꽃을 대하는 그이 속내가 궁금해진다.
“꽃이 피고 질 것을 상상하면 하루 종일 심어도 물리지 않아요. 조그맣고 이름도 몰랐던 풀꽃들이 꽃 피고 열매 맺는 거 보며 예전에는 아이들 생각을 했는데 이즈음은 달라요. 사람도 누구나 한번쯤 활짝 꽃 피우는 시절이 있다는 걸 배워갑니다. 빈부귀천 차별 없이 말이죠.”
들꽃과 살아오면서 누구라도 꽃처럼 아름다운 시절,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때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그이에게 화양연화는 지금 이 순간이다. 반백의 머리가 멋지다고 찬사를 보냈더니 그이의 정서를 지배하는 당당함이 드러난다.
“보기 좋습니까? 여든 넘은 친정모친과 같이 나가면 자매 같다면서 다들 염색하라 난리치는데 보기 좋다니 좋습니다. 사실 우리 남편이 그랬어요. 뭘 믿고 그리 당당하던지 선보러 나오면서 키도 쪼맨하면서 단화 딱 신고 화장도 안하고…그래도 귀걸이만큼은 꼭 하고 다녔어요.”
귀걸이는 꼭 하고 다녔다는 그이 말에 맞선 보는 자리에 귀걸이 했다는 이유로 퇴짜 맞은 필자의 기억 한 자락 들춰내 마주 보고 웃었다. 웃음소리가 흩어지며 집이 울린다. 공명을 느끼며 갤러리 아소를 설계한 건축가의 다음 프로젝트를 기다려본다. 그것은 집짓기에 비하면 그다지 어려울 것 같지는 않다. 다름 아닌 저녁바람이 수면을 훑고 가는 시간에 사각연못가로 거문고 연주자를 초대하는 일이다. 단언컨대 그 순간이 또 누군가의 화양연화가 되리라.

그녀가 꽃피운 이야기꽃 한 송이
오늘이 내일이고 내일 또한 오늘과 다르지 않는 매일이 몸서리치게 싫증 날 때가 있다. 여느 사람과 다르지 않던 조덕순 관장에게 우연처럼 다가온 깽깽이풀이 마음을 흔들었고 이제는 들꽃이 그이의 삶이고 일상이 되어 수행과 다름 아니다. 나날이 새벽을 열고 마당을 내다보는 그 시간들이 황홀하다.
“언제부턴가 곱지 않은 꽃이 하나도 없었어요. 가만히 보면 각각의 아름다움이 있지요. 인연도 그런 거 아닐까요? 누군가를 깊게 들여다 보아주는 거라 생각해요. 그리고 봄부터 겨울까지 싹 틔우고 꽃 피우고, 결국은 뿌리만 남아 있는 빈 화분을 보면서 내가 알지 못하는 다음 생을 그려봅니다. 여러 가지 풀과 꽃들을 모아심기하면서 배려하고 어우러져 살아야 함을 확인하지요. 풀꽃 또한 우리네 인생과 다를 바 없습니다. 꽃들과 지내면서 자연의 섭리를 거듭 거듭 배운답니다.”
꽃에 감동하고 풀에 취해 사는 동안 꽃이 그인지 그가 꽃인지 대문 밖의 세상사는 멀리하고 꽃같이 살았다. 야생화에 빠져있는 엄마에게 글쓰기를 부추긴 속 깊은 딸이 있어 가족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꽃으로 풀어낸 책<풀꽃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도 한권 엮었다. 그이는 말한다.
“지금의 내 나이가 갖고 있는 풍요로움이 좋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현명해지고 매일매일 더 나은 내가 되는데 속수무책이었던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 위선이라 여길 수도 있지만 수긍이 되지 않는바가 아니다. 새로운 에너지의 원천인 원숙함은 가뭇없이 스러지는 시간 속에서 액난을 막아주는 든든한 방패가 되리니.

새벽예불소리에 나를 맡기고…감사합니다
감동 잘하고 사람에 잘 빠지는 그이는 마음공부를 하면서 자유로워졌고 시절인연 따라 몸이 매이는 것에서도 놓여났다. 하여 절집을 찾아가는 일도 여유롭다.
“운문사 새벽예불소리에 온전히 나를 맡기고, 내안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108참회는 감동이었어요. 그리고 해인사는 젊을 때 짧은 바지 입고 도량을 걷다가 스님께 혼났던 기억이 지금도 새로워요. 아! 며칠 전 백흥암 수미단 아래서 3배를 올릴 수 있는 귀한 시간이 있었어요. 아름답기도 하거니와 모태로 회귀하는듯한 서늘함에 가슴을 쓸어내렸지요. 감사하고 또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풀꽃과 살아가는 이야기 가득한 자리에 들뜨지 않고 소박한 비비추가 긴 꽃대를 빼 올리고 서늘하게 웃고 있었다. 연보라 빛으로…. 이 집을 지은 건축가는 갤러리아소를 두고 “단순하고 절제된 공간, 그리고 적막 속에서 자신을 조우하는 자기 성찰의 공간, 선방禪房”이라 칭한다. 그 언저리에 조덕순 관장은 능소화 가지처럼 넌출거리는 여름을 궁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