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뒹굴고 있던 나에게 친구가 해인사 자원봉사를 권하였다. 봉사에 관심이 좀 많았던 터라 쉽게 승낙하고 해인사로 갈 채비를 하였다. 버스로 3시간쯤 걸려 도착하였는데, 해인사의 경치와 풀냄새를 맡자마자 피곤함이 가시었다. 원래 원주실에 봉사를 지원하였는데 어떻게 하다가 포교국과 인연이 닿아 포교국에서 친구와 함께 봉사를 하게 되었다.
절에서 이렇게 머무는 것도 처음이고 예불 드리는 것이나 공양하는 것도 난생 처음하는 거라 거기에 대한 예절을 잘 몰라 많이 서툴렀다. 하지만 하면 할수록 익숙해졌고 전혀 불편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신기한 건 난 원래 잡념이나 걱정고민거리가 굉장히 많은 편이였는데 해인사에 머무르는 동안은 그런 게 싹 사라졌다. 특히 예불을 드릴 때는 마음이 안정이 되어 몸과 정신이 편안해져서 좋았다. 집에서는 하루에 한 두끼 정도 불규칙하게 먹다가 해인사에 와서 세 끼를 규칙적으로 먹으니 속도 편해져 해인사에 머무르는 일주일동안 위가 아플 일이 없었다. 채소 위주의 식단이라서 피도 맑아지고 몸도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내가 포교국에서 봉사하면서 주로 맡은 업무는 해인사 여름수련회 수련생 명단 정리와 수련회 관련 문의 전화를 받는 것이었다. 이런 일이 생소해 처음에 서툴렀지만 하면 할수록 요령이 생겨 서류 정리 같은걸 빠른 속도로 끝내게 되었다. 그리고 문의 전화 받을 때 처음 몇 번은 뭔가 말하기가 부끄러워 어색하였는데 이것도 계속 할수록 무덤덤해졌다. 한 번은 외국인과 전화통화를 한 적이 있는데 너무 급작스럽게 받은 전화라 알고 있던 영어단어까지 다 까먹어 하마터면 대화를 못 이어 나갈 뻔하였다. 그래도 짧은 단어 몇 개가지고 대화를 하고 끝내고 나니 외국인과의 첫 대화에 왠지 기분이 좋았다.
친구랑 나랑 자원봉사 했던 기간이 여름수련회 1차와 겹쳐 목요일부터 수련회 자원봉사를 하게 되었다. 수련회 프로그램도 참가하면서 같이 봉사하게 되었다. 발우공양 차리기와 설거지가 제일 힘들었었다. 발우공양에도 나름 룰이 있어 처음에 그 룰을 외운다고 좀 머리가 아팠고, 무거운 걸 이리저리 나르니 팔도 아팠다. 심지어 설거지 할 때는 장갑이 좀 더러웠는지 어쨌는지 낄 때마다 봉사자들 팔에 습진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래도 수련생들의 식사를 우리가 책임진다고 생각하니 뿌듯하기도 하였다.
수련회 프로그램 중 암자순례와 3보 1배에 참석하였다. 암자순례는 가볍게 주변 암자를 돌아보는 거여서 즐겁게 참석하였지만, 3보 1배는 달랐다. 세 번 걷고 한 번 절 한다는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였다. 게다가 비도 왔었고 바닥에 물이 고여 있어서 더 힘든 것 같았다. 주변에서 3보 1배하라고 권했을 땐 순간 정말 하기 싫었지만 그래도 한 번 경험하면 왠지 좋을 것 같아서 짜증 반 설렘 반 섞인 마음으로 3보 1배를 시작하였다. 석가모니불을 외치며 3보 1배를 하는데 처음에는 힘이 아직 안 빠져서 쉽게 하였지만 갈수록 몸이 무거워지고 땀이 막 솟구치고 심지어 머리끈이 없어져서 머리카락이 얼굴을 뒤덮었었다. 시작한지 한 삼십분이 지났을까 이젠 몸이 힘들다고 생각이 안 들고 그냥 자동적으로 3보 1배를 하고 있었다. 머리도 마음도 텅 비어졌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나머지 3보 1배를 하고 마지막이 되었을 때 ‘아, 내가 해내었구나’ 이 짧은 생각이 들면서 내가 이때까지 살아온 인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이 프로그램을 참가 안 했으면 해인사에서의 특별한 경험이 없을 뻔하였다. 끝나고 나서 시원한 수박을 먹으면서 3보 1배를 참가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부모님께 자랑거리가 생긴 것 같아 뿌듯하였다.
이 3보 1배를 마지막으로 6박 7일, 길면서도 짧은 이 시간. 하루하루가 새로웠던 것 같다. 주변에서 월요일까지 봉사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셨지만 또 다른 계획이 있어 아쉽지만 다음에 다시 해인사에 오길 기약하며 일요일 아침에 떠났다. 내려오는 길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텔레비전과 컴퓨터를 안 하면서 일주일을 버티다니, 게으른 내가 새벽 세시에 일어나다니, 봉사를 이렇게 많이 하다니 등 만감이 교차하였다. 아무튼 지루한 내 일상에서 벗어나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기회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