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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 위의‘선線’에‘선禪’의 정신을 담는 서도書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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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禪으로 본 문화 - 김성우 2010년 08월 342호
‘난초 그리지 않은 지 20년, 우연히 그렸더니 하늘의 본성이 드러났네/ 문 닫고 찾으며 또 찾은 곳/ 이것이 유마의 불이선佛二禪일세/ 만약 누군가 억지로 요구한다면, 마땅히 유마거사의 말 없는 대답으로 거절하리라.’
추사 김정희金正喜(1786~1856)의 유명한 걸작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 상단에 있는 첫 번째 제문에는 서도書道 성취에 대한 추사의 자부심이 담겨져 있다. 추사는 자신을 대승불교의 대표적인 선지식으로서 부처님의 10대 제자를 능가하는 유마거사에 비유하고 있다. 문수보살이 불법의 진리를 묻는 질문에 아무 말도 않음으로써 대답했다는 유마의 불이선 경지를 체험했다는 확신에 찬 목소리가 담긴 글이다. “서화의 이치가 곧 불교의 선과 통한다”고 했던 추사는 서선일여書禪一如의 경지를 불현듯 일궈냈다는 자부심을 드러낸 셈이다.
서예란 검정의 묵색을 이용하여 지면에 선과 점으로 표현하는 예술로서 문자의 아름다움을 대상으로 삼는 조형적, 추상적 예술이다. 필묵할 때 검은 필선은 흰 여백과 어우러져 글자가 되고, 우주법계가 그 안에 담긴다. 서예가 김양동 씨는 ‘가장 불교적인 색이 먹빛’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검은색은 모든 색을 집합한 것으로 색 아닌 색이다. 만 가지 색을 함유하고 있기에 또한 만색을 나타낼 수도 있다. 그러기에 먹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오랜 수련을 쌓은 서예인들은 붓을 잡는 순간, 온갖 상념이 사라지고 고요의 경지에 이른다. 생명의 꿈틀거림이 붓끝과 종이를 통해 하나의 점과 선으로 나타나는 백지 위는 어느새 침묵의 공간이 된다. 흰 종이 위에 한 획, 한 획 선과 점을 그어 가면 어느새 서예인들은 창조적인 성취감에 젖어 든다. 서도의 행위는 한마디로 예술을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수양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서도의 달인들은 필묵할 때 최고의 경지는 선정禪定의 경지에서 쓸 때라고 한다. 정적인 먹과 동적인 필이 상호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묵선墨禪이 되며, 선필禪筆은 최고 이상을 구현하는 서예의 경지가 되는 것이다.
생각이 흩어지면 대상의 노예가 되고 말기에, 서도의 달인들이 가장 중요시 여긴 것은 사색의 집중과 그 마음의 울림에 따라 붓을 드는 일이었다. 하나의 글자를 쓰기에 앞서 만물을 전체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글자의 뜻을 깊이 사유한 뒤에 붓을 드는 것은 단순히 쓰는 동작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에 해당한다. 이것은 쓰는 사람과 글자가 혼연일체가 되어 텅 빈 종이 위에 새로운 형상이 드러난다는 뜻이다. 여기에 무슨 화법이며 기술 따위가 중요하랴. 오히려 화법을 부정해 버린 순간 위대한 서도가 실현된다.
서書와 선禪의 일치를 본격적으로 주장한 당나라의 변광 스님은 《위료옹ㆍ학산집》에서 “서書는 부처의 심인心印과 같다. 마음의 근원에서 비롯되어 깨달음을 통해 완전하게 된다. 입과 손끝으로 전할 수 없는 것이다” 라고 했다. ‘글씨는 곧 그 사람(서여기인書如其人)’이란 말이 있듯이, 겉멋만 추구하지 않고 마음을 닦으며 꾸준히 노력해야 완성되는 게 서도라는 의미다.
서도를 통해 마음을 닦는 대표적인 방편을 든다면, 요즘 새로운 수행방편으로 각광받고 있는 사경寫經이 될 것이다. 경전 속에 담긴 가르침을 한 자 한 자 되새겨 마음속에 각인시키는 사경에는 깊은 신심과 원력, 정진력이 깃들어 있어 그 행위 자체가 참회요 염불이요 기도요 참선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기원 전ㆍ후로 인도 서북부에서 일기 시작한 대승불교 운동이 불경 유포를 강조하면서 비롯된 유서 깊은 사경 수행은 이제, 경전의 유포나 복장물 조성을 위한 불사佛事 차원의 의미를 넘어 구도자의 마음을 맑혀 가는 기도와 수행의 의미로 부각되고 있다. 한 자 쓰면서 한 번 절하는 사경의 ‘일자일배一字一拜’나 한 줄 쓰면서 세 번 절하는 ‘일행삼배一行三拜’ 의식은 사실 눈, 귀, 코, 혀, 몸, 뜻의 육근六根을 모두 이용하는 ‘토털total 수행법’이다. 눈으로 보고 코로 호흡을 가다듬고 입으로 읽고 귀로 들으며 손으로 쓰면서, 마음에 부처님 가르침을 새기는 방편이기 때문이다. 특히 사경은 정진 과정에 수행자가 스스로의 마음자리를 즉각 확인하고 점검해 나갈 수 있는 효과적인 공부법이다. 순간순간 일어나는 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부처님 말씀으로 말끔히 걷어내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사경은 수행자의 발원과 신심을 사경 속에 담아 지혜와 자비를 구족하는 원력을 키워 나가는데 큰 도움이 된다. 경전을 눈으로 읽고 소리 내어 염송하고 마음으로 잘 이해하며 무아無我의 상태에서 사경에 집중할 때, 부처님께서 함께 하는 듯한 법희선열法喜禪悅을 체험할 수 있다. 경건한 분위기에서 조용히 앉아 호흡을 가다듬어 마음을 모은 후, 정성 들여 행하는 사경은 번뇌와 미혹의 마음을 벗어나 청정한 심신으로 본래면목本來面目과 하나되는 수행의 과정이다. 우리 자성自性이 불성과 하나 될 때 스스로 지혜를 갖추고 몸과 마음의 안락을 느끼면서 모든 생명을 사랑하고 돕는 자비심이 일어난다면, 이것이 바른 사경이라 할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법신 사리’인 경전의 글자 하나 하나를 써내려가는 순간 순간,‘머무는 바 없는 마음(무주심無住心)’을 쓰는 공부는 집착과 분별을 여읜 무심無心을 닦는 선禪 수행과 다름 아니다. 사경을 통해 집착하지 않고 머무르지 않는 마음을 내는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의 무념행無念行이 깊어지면, 저절로 자기의 번뇌망상을 항복받아 업장을 소멸하고 공덕을 쌓아 자유와 행복을 누리는 맑고 향기로운 삶이 다가올 것이다. 결국 서도가 극치에 이르러 선禪이 되면, 마음과 우주의 이치에 계합하여 자유롭고 조화로운 예술적 삶을 구현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