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과 함께 여름캠프를 가신다던 스님은 잠시 걸음을 늦추고 기다리고 계셨다. 볕이 짱짱한 오후, 절 마당에 들어서니 먼저 관세음보살상이 보이고 그 옆의 아이들 놀이터와 어린이집이 보인다. 어린이들이 캠프장으로 모두 떠나고 한적해진 오후, 모시 적삼을 입은 스님은 몇몇 보살님들과 처소 앞 툇마루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 계셨다. 툇마루로 올라오라 손짓 하시더니 냉큼 선풍기를 내 쪽으로 돌려주신다. 여염집 어머니처럼.
“지금쯤 우리 애들은 물놀이 하느라 한창 신이 났을 거예요.”
역시나 여느 어머니처럼 아이들 얘기를 먼저 꺼내놓으신다. 그런데 그 애들이란, 성불어린이집에 다니는 150여명의 아이들을 말하는 것. 그러니 스님은 그 많은 아이들의 어머니인 셈이다. 게다가 스님은 스스로 당신을 성불어린이집의 머슴이라 하며 웃으신다. 그 소탈함을 보면, 법해스님은 성불사의 주지이자 성불어린이집의 이사장이라는 그럴싸한 호칭보다 그저 ‘스님’이란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듯하다. 처소 또한 스님의 소박한 성품을 그대로 보여준다. 스님을 따라 들어서니 몸 하나 누일만큼의 자그마한 방이다.
“난 집 지키는 사람이니, 이만한 방이면 됐지요.”
그러나 밭은 천 평이나 된단다. 그 밭에서 농사를 지은 것으로 어린이집 아이들의 밥과 간식을 다 차려낸단다.
“채소 살 일은 거의 없어요. 상추, 가지, 오이, 감자, 고구마 할 것 없이 전부 밭에서 농사지어서 먹어요. 배추, 무도 심어서 김장도 하고 콩 수확해서 메주 만들어서 장도 담가서 먹어요.”
어린이 급식에 문제가 많은 요즘, 손수 재배한 것을 먹이는 것은 엄마의 마음이 아니고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쉽게 시장에서 사 먹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게 대부분인 세상에, 농사일이 보통 일도 아닌데 누구라도 선뜻 손수 농사지어 먹일 생각은 못 할 것이다. 게다가 아이들이 그 밭에서 재배되는 것을 눈으로 보고 만지고, 김장을 담그고 장을 담그는 모습까지도 체험을 하니 이보다 더 좋은 교육이 없을 터. 어떻게 된장과 간장과 고추장이 만들어지는 지도 모르고, 그저 마트에 가서 사면 되는 것인 줄 아는 도시 아이들에겐 꿈도 꾸지 못할 교육환경이다.
“음식에 조미료는 절대 안 쓰고 되도록이면 오신채도 안 써요. 고기를 먹이지만, 부처님 도량이니 냄새가 많이 나는 건 되도록 피하지요.”
성불사가 생긴 지도 50여년, 성불어린이집은 19년이 되었는데 그 중 14년을 법해스님이 아무 탈 없이 지켜왔다. 기독교인이 유난히 많다는 대전에서 불교로써는 유일한 시립법인 어린이집이고, 늘 정원을 꽉 채운다니 별 탈 없다는 말보다 잘 운영되어왔다는 게 맞겠다.
“부처님 도량이라서 그런지 애들이 복이 있어서 그런지, 매해 150명 정원을 채워요. 지금 19회가 졸업했는데 그동안 문제 하나 없이 잘 운영되었어요.”
1회 졸업생이 벌써 대학생이 되었고. 그 아이 중 하나는 유아교육과를 나와 성불어린이집에 자원봉사자로도 온단다.
“2세부터 7세까지의 아이들이 있는데, 대부분 기저귀 차고 와서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 있으니 5,6년은 이곳에서 보내는 셈이지요. 선생님들보다 더 오래 있어요. 그러니 어린이들이 이곳의 주인이에요.”
그 주인들을 위해 스님은 늘 바쁘게 움직인다. 넓은 절 마당이 다 아이들 운동장이라며 넘어지지 않게 자갈을 깔아주고, 아이들이 다치지 않게 놀이터에 잔디를 깔아주고, 뒷터엔 30평 규모의 자체 수영장도 만들었다. 어디 한 군데 스님의 마음과 손이 가닿지 않은 곳이 없다. 여름이면 아이들이 수영장에서 신나게 물장난을 치며 노는데, 스님도 반바지를 입고 들어가 아이들과 함께 놀아준단다. 매일 한 시간씩 그렇게 아이들과 춤도 추고 노래도 하며 노는 게 스님의 일과 중 하나란다. 힘들 법도 한데 스님은 되레 즐겁단다.
“아침마다 기분이 좋아요. 버스 세 대가 아이들을 태우고 들어서는데, 애기들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뛰어 들어와서 관세음보살님 앞에 서서 ‘귀의합니다’하면서 절을 해요. 밥 먹을 땐 늘 공양법계를 하고, 집에 갈 때도 꼭 스님을 불러서 ‘성불하세요’하고 가요.”
매주 월요일엔 강당에서 법회를 하는데, 스님은 아이들과 함께 찬불가도 부르고 반야심경도 읽는다. 두 살짜리 아이들이 거의 눕듯이 절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참 좋단다.
스님과 함께 어린이집을 둘러보니, 오래 되었지만 정갈하고 반지레하다. 거의 20년의 세월이 흐르다보니 오래된 느낌은 있지만 구석구석에 세심하게 모든 것이 구비되어 있고 따뜻하다. 각 반의 이름도 ‘연꽃’‘동자’‘보리수’‘등불’이라 붙여져 있다. 교실을 구경하는데 스님이 한 마디 건네신다.
“모든 건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가꾸는 게 중요한 것이지요.”
스님이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어려운 것은, 선생님과 어머니들 포교였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부처님 품으로 들어오지만 어른들에겐 쉽지 않은 일. 그러나 아이들 곁에서 가르치는 게 선생과 부모이다 보니 아쉽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스님은 매해 바자회도 마련한다. 농사지은 감자나 고구마, 배추나 무를 쌓아놓고 바자회를 열어 어린이들이 엄마와 시장놀이를 하게 만든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절에 오게 하고 절에서 농사지은 것들을 먹으면서 불교와 친밀해지기를 바란다.
어려서 출가한 스님은, 예전에 어른 스님들한테 들은 말씀은 30년이 지나도 안 잊혀 진다며 어려서부터의 공부가 중요하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신다. 그래서 스님은 그치지 않고 어린이법회를 한다. 사람들은 뭐 하러 힘들게 어린이집 일에 세세하게 관여 하냐고도 하지만, 스님은 소임을 맡은 이상 완벽하게 살고 다음 사람한테 넘겨야 하지 않겠나 하신다.
“늘 복 짓는 마음으로 해요. 내가 중놀이를 40년 가까이 하는데, 부처님 제자로써 어린이 포교를 하며 복을 짓고 인연도 맺는다는 마음으로 해요.”
스님은 ‘중놀이’라고 하셨다. 그 의미를 여쭈니 웃으며 답하신다.
“우리 지금 놀고 있잖아요.”
그 웃음이 하도 환해서, 머리도 새지 않고 주름도 없으시다 하니 또 웃으며 답하신다.
“애기들이랑 놀아서 그런가 봐요.”
스님은 아이들이 참 좋단다. 그래서 더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어린이집에 버려진 여자 아이 넷을 곁에 두고 키울 수 있었던 것은. 두 살 바기 아이가 지금은 중학교 1학년이 되었으니 오랜 세월이다. 그동안 스님은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전 과목 학습지도 시키고 학원도 보내고 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는 과외도 시켰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모두 반에서 1,2등은 한단다. 그리고 이 아이들은 절집에서 10년 넘게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시간이 되면 대종을 치고 예불을 하러 간단다.
“저 애들이 밥 먹고 알아서 크는데 내가 뭐 힘드나요.”
스님이 머무는 방 한가운데 미닫이문이 있다. 그것을 반으로 나눠 한쪽은 스님이 머물고 또 다른 한 쪽에선 아이들이 함께 머문다.
“저녁이면 나는 여기 앉아서 공부하고 애들은 내 앞에 일렬로 앉아 공부하지요.“
공부하라는 백 마디의 잔소리보다 훨씬 효과적인 교육법이다. 게다가 스님은 한 방에서 아이 넷과 머리 맞대고 얘기하다가 웃다가 놀다가 함께 잠든다. 그렇게 살 부비며 살아간다.
“인연이 되어 부처님 법안에 들어와 스님 밑에서 컸으니, 이 애들도 언젠가는 갚아야하지 않겠나 생각해요. 그래서 가르칠 수 있는 건 다 가르쳐요. 내가 잘 가르쳐서 이 애들이 불자로써 성불어린이집을 위해 일해도 좋겠다 싶고, 불교 포교를 위해 앞장 설 수 있는 사람이 되어도 좋겠고, 출가를 해도 좋겠다 싶어요.”
스님은 그렇게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만 봐도 좋다. 그래서 길을 가다가 성불어린이집 출신 아이들을 만나면 그렇게 뿌듯하단다. 벌써 19회이다 보니 대전시에서 다니다보면 역전에서든 시장에서든 아이들을 만나게 되는데, 아이들이 다가와 합장을 하고 ‘성불하십시오’하고 인사를 할 땐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그래서 스님은 늘 주머니에 천원 짜리 몇 장을 넣어 다니신다.
스님도 어린 나이인 14살에 출가했다. 어린 나이에 지리산 첩첩산중의 산불주, 문수암, 상무주에 살며 밥만 먹으면 산으로 다니며 머루나 다래를 따먹고, 결제철 해제철에 오가는 스님들을 보고, 혜암 스님 월인 스님이 주시는 사탕을 받아먹곤 했다. 그러다가 대중에 나가서 공부하고 강원도 졸업하고 불영사, 수덕사 선방에도 10여년 다니고 괴산 각연사에서 천일기도도 하며 살아오다니 보니 벌써 법랍이 40년을 훌쩍 넘겼다며 놀라신다.
“어른 스님들이 불법이 좋다하니 그런 줄 알았지, 그때 뭘 알았나요. 나이 40이 넘으니 내가 중이 되길 참 잘했구나 싶은 마음이 가슴에서부터 진정하게 우러나대요.”
스님의 원력은 성불어린이 불자들이 건강하고 훌륭하게 자라 어느 사회에서든 당당한 불자로써 우리 불교에 앞장서서 활동하는 것이다.
“어울려 사는 것 자체가 포교라고 생각해요. 나는 ‘나’라는 상을 버리고 가는 날까지 신심으로 공부하고 아이들하고 있으면서 복과 덕을 지으며 살고 싶어요.”
스님이 늘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은 혜암 스님의 ‘공부하다가 죽어라’라는 말씀이다. 출가한 것은 앉으나 서나 오나 가나 한 마음이 되어서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 목적이니, 그것을 항시 마음에 두고 산다.
“모든 것은 다 공부를 향해 가는 것이지요.”
스님과 점심공양을 하러 공양간으로 가는 길에 네 살쯤 됐을 법한 여자 아이가 다가와 스스럼없이 스님의 손을 잡더니 오늘은 밥을 아주 많이 먹었다며 친구한테 말하듯 얘기한다. 그러자 스님은 아낌없이 칭찬을 하며 아이의 두 볼을 감아쥐신다.
된장찌개, 호박볶음, 두부조림, 감자볶음이 전부인 밥상. 요즘 아이들이라면 손도 대지 않을 밥상이건만 성불어린이집 아이들은 최고의 재료로 차려진 싱싱한 황제 밥상을 알아볼 줄 아는 모양이다.
스님과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하루가 정말로 휴가인 것만 같은 오후. 장대비가 쏟아질듯 구름이 몰려들 때, 이만 스님께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스님이 밭에서 딴 포도이니 가면서 먹으라고 포도를 봉지에 가득 담아 건네신다, 마치 우리 어머니처럼.
스님이 농사지으신 포도, 그 맛이 얼마나 달디 단지 비가 한 방울씩 떨어지는 길을 걸으며 한알 한알 따먹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린이들이랑 신나게 뛰어놀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어린이 같은 마음이라서 어린이처럼 맑게 웃는가 보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