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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신불, 이 지옥이 저로 하여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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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한인우 2010년 08월 342호
누구나 한여름에 도시를 떠나 깜깜한 밤하늘의 별들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펴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저 막막한 하늘의 끝은 얼마나 멀까, 과연 끝은 있을까? 별들의 숫자는 얼마나 될까? 저기 어디에도 우리 같은 생명체가 살고 있을까? 등등. 현대 천문학의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외계 생명체에 관한 마지막 물음에 대해서 우리는 아직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이제 생명의 문제는 21세기 천문학의 가장 중요한 관삼서 중의 하나가 되었다. 외계생명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문제 중 하나가 다른 별들에도 행성계가 존재하느냐이다. 태양계의 경우에 비춰보면 생명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행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외계행성계는 15년 전 처음으로 발견된 이래 현재 500여개가 발견되었다. 아직 외계행성계의 특성을 세세히는 모르지만 다른 별에도 행성계가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지금까지 천문학의 발전과정은 우리 태양계가 우주에서 결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관점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관점을 더 확장하면 생명이 지구에만 있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전 우주에 존재하는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이나 사변일 뿐이다. 자연과학은 실증적인 증거에 의하여 가설을 확인해야 된다.

필자도 외계행성을 찾아 그 특성을 연구하고 있다. 이십여 년 전 대학원생 때부터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는 주제이다. 필자가 외계행성을 탐색하는 방법은 별의 움직임(속도)을 관측하는 것이다. 별 주위에 행성이 있으면 별의 움직임에 미세한 변화가 규칙적으로 보이게 된다. 어떤 별들은 5년 이상 계속 관측해야 결과가 나오는 것들도 있다. 관측은 경북 영천에 있는 보현산천문대의 1.8m 망원경을 이용하고 있다. 두 달에 한 번 정도 관측을 하고 있다. 밤하늘도 좋지만 특히 산을 좋아하기에 보현산에 관측을 하러 갈 때는 마음이 설렌다.

얼마 전에 보현산천문대에서 관측을 마치고 산길을 내려오는 중 지인 한 분의 전화를 받았다. 해인지 유마의 방에 글을 써보라는 제안이다. 나에게 그런 제안이 오다니 적이 놀랐고 당황스러웠다. 그동안 살아가며 대중들에게 들려줄 만한 절실한 경험이나 큰일을 이룬 것도 없고 재미있는 글 솜씨도 없는데… 망설이다 결국 응하게 된 것은 오래 전의 해인사 수련회 추억 때문이었다. 빗속 고속도로를 달려 집에 도착하여 앨범을 펴고 수련회 사진을 찾아보았다. 단체 사진 밑에 ‘제 12회 해인사 하계수련대회 불기 2540년 7월 13일 - 17일’ 이라 적혀있다. 16년 전 이맘때이다. 당시를 회상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는 것이다. 새벽 4시 전에 일어나 스님들과 똑같이 새벽 예불에 참석하고, 똑같은 방식으로 발우공양을 하고 밤 10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특히 잠잘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 시간을 앉아서 생활하다 보니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수련은 독경, 절, 좌선, 사경 등 매우 빡빡하게 진행되었다. 사실 가야산에 들어갈 때는 ‘며칠 속세를 떠나 조용한 산사에서 휴식을 취하겠다’는 마음이었는데, 정말 어이없는 전도몽상이었다.

단체 사진 옆에는 수련회에서 받은 수계증이 있다. 수계증을 보니 종진宗眞 스님을 계사戒師로 모시고 대연大然이란 법명을 받았다. 사실 나는 신실한 불자가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불제자라고 말할 때는 이 수계증이 큰 힘이 된다. 문득 제자의 소임을 까마득하게 잊었다가도 내가 대연이라는 법명을 받은 불제자라는 것을 상기하고 잠에서 깨어난다. 그런데 수계증을 찬찬히 보니 여태 무심코 흘려 못 봤던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법어 - 이 도리는 하늘이 덮지 못하고 땅이 싣지 못하며 항상 자비광명을 놓아 일체를 윤택하게 하느리라.”

가야산 기상만큼 호탕하고 마음을 활짝 열어주는 말씀이다. 여름에 어울리는 법어이다. 만물에 햇빛(광명)과 비(자비)를 놓아 키우는 것이 여름의 길 아니던가. 그런데 지금 이 자비광명이 넘쳐 생명을 길러내어야 하는 계절에 만물이 아파한다. 인간과 온갖 식물과 동물과 그리고 땅과 바다와 강이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다. 유마거사는 중생이 아프니 내가 아프다고 하였다. 지금 여기 유마거사는 어디에 있는가. 앞이 보이지 않는다. 이 고통의 시기에 우리는 어디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이 화두를 들고 유마의 방을 찾은 분들과 같이 읽어보고 싶은 시가 있다.

중앙성당 앞 길가에
졸고 있다
다 팔아도 2만원 어치가 안 될 푸성귀를
늘어놓은 할머니 한 분

양버즘나무가 제 그림자를 끌어당겨 덮어주려 하지만
8월 오후 세시의 햇볕이
속살까지 구워내는 등신불상 하나

한 찰나라도 먼저 56억년 저쪽에 이르기 위해
자동차들이 질주해 가는 동안

이미 용화세상에 들었을까
가끔 꿈결에 깨어
경전을 넘기듯 무심히 몇 가닥씩 다듬어 놓는
상추경經 우엉경經 열무경經 부추경經 쪽파경經...

이 지옥이 저로 하여 눈부시다

복효근 시 \'등신불\' 전문

그렇다. 저기 계신 할머니가 진정한 보살이고 온갖 푸성귀가 팔만대장경이 아닌가. 이것을 깨달으면 ~ 이 지옥이 눈부시다. ‘속살까지 구워내는 등신불상 하나’가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한다. 그를 생각하며, 이 여름 우리 모두 간절한 염원으로 가정에, 직장에, 이 땅에, 저 하늘에 상추경經 우엉경經 열무경經 부추경經 쪽파경經을 새겨보자. 그리하여 이 지옥을 눈부시게 밝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