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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 바람이 일깨워 준 내면의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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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이야기 - 조민영(연화선)┃1차여름수련생 2010년 08월 342호
010년 여름. \'그동안의 지친 심신을 단련하고,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문구와 함께 내 눈길을 끌게 된 해인사 템플 스테이. 깊게는 아니지만 예전부터 불교에 대한 관심은 꽤 있었다. 천주교 신자이긴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가족을 따라 여행을 다니며 절에 자주 다녔었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학교강의를 통해 불교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아보기도 했다. 사실 템플 스테이에 대해서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앞서 말했던 템플 스테이 홍보 문구처럼, 또 이번 수련회의 테마인 \'쉼(休)\'이란 말처럼 여러 가지 생각과 고민으로 그동안 지친 심신의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아무런 정보를 알지도 못한 채, 마치 오래 전부터 하기로 되어있는 듯, 곧바로 1차 신청을 하게 되었고 7월 15일을 손꼽아 기다렸다.

정말 \'쉬고\' 싶어서 온 나의 바람과는 달리, 사실 수련회의 스케줄은 처음엔 나의 몸을 힘들게 만들었다. 낯설고 어색한 불교 사찰 예절, 불교용어, 예불, 묵언, 차수, 발우공양 등이 몸에 익숙지 않아 처음 첫째 날은 그저 피곤하기만 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날수록 온몸이 고단해 지는 것보다는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멀리서도 들려오는 시원한 계곡소리와 산에서 불어와 잠시 머물렀다 가는 바람, 새소리, 하나하나 살아있는 것들을 느끼며 그 속에서 생활하다보니 정말 내 마음이 휴양지에 온 것처럼 편안해졌고, 매일이 즐겁고 행복했다. 해인사에 오기 전에는 평소에 가졌던 여러 가지 고민거리를 모두 해결하고 오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수련 기간 동안 그 고민거리는 단 한 번도 내 머릿속에서 떠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모든 것이 해결된 듯한 느낌이다. 어떤 스님께서 \'이 곳에서 무언가 얻으려고 하지 말고 버리려고 하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4박 5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내가 그동안 집착했던 많은 것을 버렸고, 그리고 버릴 줄 아는 방법을 얻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프로그램을 꼽으라고 한다면, 서슴지 않고 1080배를 말할 수 있다. 처음엔 108배가 생각보다 많이 힘들지 않았고, 1080배도 충분히 잘 할 수 있을 거라 믿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절을 하기 전에 진지하게 마음을 가다듬기보다는, 지나친 \'승부욕\'으로 1080배를 시작한 듯하다. 1080배를 할 때 그 때의 그 감정,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르며 잊히지 않는다. 200배를 미처 다 하기도 전에 힘이 쭉 빠졌고, 이것저것 많은 생각들이 떠오르면서 집중이 흐려졌다. 500배가 넘어서는 이미 \'힘들다\'라는 생각 하나가 나의 온 몸을 지배했고, 나는 그 마음 하나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다. 점점 힘에 부치기 시작하고 결국 죽비 소리를 놓치고 일어나지 못했다. 처음에는 그 순간 내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나고 견딜 수가 없어는 컥 눈물을 쏟아버렸다. 거기까지가 나의 한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포기한 내 자신이 밉고, 또 아쉬웠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나의 한계였다. 절이 끝난 후 한참는 고 고개를 들고 눈을 떴는데, 부처님상이 눈앞에 들어왔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순간 나는 그 부처님의 모습이 그렇게 힘들어는하는 나를 바라보는 또 다른 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나의 한계를 느끼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또 다른 나의 모습과 대면하며 흘린 눈물과 땀. 그저 \'힘들었다\'고 표현하기엔 너무나도 값진 의미를 지닌 눈물과 땀t의미. 이때의 이 감정을 잊지만 않는다면, 앞으로 어떠한 일이 닥쳐온다 해도 모두 헤쳐 나갈 수 있을 듯하다. 젊은 날에 부리는 괜한 객기가 아니다. 정말로, 이렇게 진심어린 눈물을 흘려본 적이 살아오면서 과연 몇 번이나 있었는가. 내 한계에 좌절하며 한층 더 겸손해진 마음으로 내 자신을 돌아본 적이 있었는가. 뭔가 해냈다, 극복했다기보다는 가슴 깊숙한 곳에서 응어리 진 무언가가 뭉글뭉글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사찰 기본예절인 차수, 묵언, 안행, 그리고 참선, 108배. 사찰에서 주로 이루어진 프로그램들은 모두 평소에 \'밖\'으로 향하던 자신을 돌이켜보며 나의 \'안\'을 들여다보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고요히 앉아서 깊이 있게 명상을 하는 참선의 시간. 처음엔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2분도 되지 않아 다리가 저려오고, 온갖 잡생각이 들고, 내 호흡 하나 제대로 조절하기 힘들었다. \'내가 평소에 이렇게 산만한 사람이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차수도 마찬가지였다. 걸을 때 두 손을 모아 가지런히 하고 걷는 그 간단한 것이 어찌 그리 어렵고 번거롭던지. 하지만 참선과 차수를 하면서 느낀 건 내 자신이 좀 더 차분해진다는 것이다. 내 느낌과 감정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정갈한 마음자세로 새롭게 돌아 본 주위는 이전과는 다른 세계였다. 그런데 어찌 보면 가장 힘들고 어색한 건 묵언이었다. 평소에 내 주장으로 남을 설득하기 좋아하고, 어떤 말이든지 일단 밖으로 내뱉고 나서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 때문에, 내 속에는 진짜 나의 모습보다는 남에게 비춰지는 나의 모습이 자리 잡고 있었다. 묵언을 하면서 그동안의 나의 삶을 돌이켜봤고, 내가 얼마나 지기 싫어하는 성격을 가졌는지를 알 수 있었다. 사소한 일에도 자존심 상해하고, 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서슴지 않고 다른 사람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행동의 반복. \'말\' 하나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무서운 세상에서 살고 있다. 나 역시 내가 무심코 뱉은 말로 그 사람의 영혼을 다치게 하지 않았나하는 걱정이 앞선다. 그런데 적어도 이번 수련회를 통해, 아직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그런 심적 나약함을 가다듬고 조금은 깨어 있는 진짜 나의 모습을 발견하지 않았나싶다.

연화선(蓮華宣). ‘불가에서든 속가에서든 더러운 곳에 처해도 항상 청정한 연꽃처럼 수행하여 부처님의 지혜광명을 널리 펴라는 불명’ 내게 주어진 새로운 이름을 보고 있으니 괜스레 가슴이 두근거리고 책임감이 느껴진다. 늘 밝고 순수한 모습. 그 모습으로 자신을 베풀라는 스님의 말씀. 지킬 수 있을까? 무언가에 쉽게 빠지고 쉽게 싫증내는 고질병을 가지고 있다. 이번 여름 수련회에서 느낀 바도 언젠가는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갈까봐 두렵기도 갈까봐하지만 이번은 다르리라 굳게 믿는 이유는 4박 5일 간 내 속에서 끓어오르는 열정이 더운 여름보다 더 뜨거웠고, 그런 뜨거움을 가야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적절한 때에 차분히 식혀줬기 때문이다. 4박 5일간 가졌던 그 뜨거운 \'열정\'과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냉철함\'과 \'정신력\'으로 앞으로의 하루하루를 살고 싶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늘 곧은 자세로, 깨어있는 마음으로.

유난히 ‘소리’가 지배했던 수련회였다. 새벽의 어둠을, 그리고 잠들어 있는 내 가슴을 울리던 스님들의 법고 소리, 새벽에 참선을 하면서 동이 트는 하늘을 바라볼 때 들리던 빗소리, 사각사각 땅을 스치던 스님들의 정갈한 장삼자락 소리, 밤새 잠에 들기 전까지 내 귀를 간질이던 계곡 물소리, 발우공양 할 때 내 몸으로 들어가 살아 숨 쉬는 밥알 한 톨 한 톨의 오묘한 소리, 108배 참회를 할 때 고요함 속에서 느껴지는 나의 호흡 소리. 묵언은 했지만, 끊임없이 살아있는 ‘진짜’ 소리를 듣고 왔다. 훗날 이 소리들을 다시금 떠올려 보고, 그 때처럼 행복한 부처님의 미소를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련회의 추억이 앞으로 내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크고 소중한 원동력이 되리라 믿는다. 그런 원동력을 함께 만들어 나간 법우들과, 몸소 깨어 있는 자세를 보여주신 우리 멋진 습의사 스님들, 조용히 뒤에서 도움을 주시고 프로그램을 함께 한 자원봉사님들, 그 외에 프로그램을 지원해 주신 해인사 모든 분들께, 후회 없는 22살의 여름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