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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의 번뇌·망상이 침잠하는 곳, 해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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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이야기 - 이세화┃1차여름수련생 2010년 08월 342호
매 순간 시간의 노예로 속박되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그들에게 단비가 되어줄 휴식을 찾아 여행을 떠나곤 한다. 최근 이러한 흐름의 일환으로 템플스테이가 각광을 받고 있다. 사찰에서 수행자의 생활을 몸소 체험하며 불교문화를 배우고 동시에 마음의 휴식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무신론자이지만, 교리의 완성도가 높다는 불교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고, 대학 졸업 후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생각정리를 할 여유도 필요했기에 이번 여름 방학을 빌어 템플스테이에 참여해 보기로 결심했다. 템플스테이 운영 사찰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을 통해 손쉽게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많은 사찰들이 알찬 프로그램을 구성하여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 군데로 마음을 정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템플스테이에 참여했던 블로거들의 후기도 꼼꼼히 살펴보고 사진 자료도 훑어보며 고민한 끝에, 한국의 삼대 사찰로 손꼽히며 세계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는 해인사의 여름수련회를 선택하게 되었다.
회상해보면 처음 해인사로 향하는 차에 올라 서울 톨게이트를 통과할 때에는 일상으로부터 자유를 찾은 듯한 해방감에 나의 몸과 마음이 한껏 들떠있었다. 그러나 곧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4박 5일을 함께하며 내 몸에 익숙지 않은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 지에 대한 걱정이 마음 한편에 자라났다. 이러한 불안함과 설렘을 안고 해인사에서의 4박 5일 수련회 첫 날에 임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수련회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회향한 지금 내가 해인사의 여름 수련회를 선택한 것에 대한 만족도는 200%.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해인사에서 생활한 4박 5일 동안 느꼈던 매 순간의 감동, 나의 오감이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자연의 아름다움, 거룩하신 부처님의 미소와 자비로운 스님의 가르침, 수련회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 그리고 내가 그곳에서 만난 진정한 자아까지.. 이 모든 것 하나하나가 억만금을 주고도 얻을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기에 지금도 해인사를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낀다.
해인사 수련회 참여를 고민하는 이들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러나 수련회 참여를 통해 육체적 휴식을 기대하는 이들에게는 재고해볼 것을 권한다. 해인사의 여름 수련회는 단순히 사찰에서 숙식을 하는 행위가 아닌, 그 이상이다. 더군다나 이번 제27차 수련회의 수련 주제는 ‘쉼(休)’이기 때문에 혹자들은 이를 육체적 휴식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포교국장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이번 수련회는 수련생들이 육체적 수련을 거쳐 정신적 휴식을 얻는 것이 의도하신 바이다. 특히 해인사 수련회의 프로그램은 그 구성이 다른 사찰과 대동소이할 지라도 그 강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하니, 안일한 마음으로 해인사를 찾으려는 이들은 다시 생각해보길 바란다. 그러나 해인사의 고된 수련활동으로 느껴지는 육체적 고통은 그 이상의 가치 있는 열매를 선물한다는 것을 단언할 수 있다. 결코 쉽지 않은 1080배와 3보 1배 그리고 안행과 차수를 통해 평소 육체와 휴에 젖어있던 내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발우공양을 체험하며 내가 먹는 음식들이 나에게 오기까지 과정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동시에 일상의 나를 성찰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또한 특강 스님들의 주옥같은 강의를 통해 불교 교리에 대해 학습하고, 부모은중경과 같은 훌륭한 불경을 독경함으로써 부모님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되새겨 보기도 한다. 그리고 아침마다 진행되었던 가야산 자락의 암자순례. 그리고 웅장한 가야산 자락에 걸린 자욱한 안개, 맑은 공기와 새들의 지저귐, 계곡물 흐르는 소리 그 가운데 자리한 성철스님의 부도탑에서 진행되는 참선은 지금 생각해도 전율이 느껴진다.
이 외에도 해인사 수련회에서는 다양하고 알찬 프로그램들이 진행되었는데, 개인적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 활동은 1080배였다. 한 번씩 절을 올릴 때마다 머릿속을 스치는 장면들, 시간이 갈수록 나약한 생각이 드는 내 자신과 마음만큼 따라주지 않는 몸에 대한 원망 그리고 뒤에서 끊임없이 절을 하고 계실 법우님들에 대한 죄송한 마음들이 뒤섞였다. 그러던 중 또 한 번의 절을 올리고 일어서며 눈앞에 있는 불상을 바라보는 순간 갑자기 가슴 속에서 뭔가 울컥하고 치솟는 것이 느껴졌다. 22년 동안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아직까지도 그 때의 감정이 무엇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날 흘린 눈물 속에서 만난 내 모습이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되어줄 것이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다. 1080배를 마치고 당신도 힘드셨을 텐데 밝게 웃으며 나의 손을 꼭 잡아 주시던 옆 자리의 보살님, 힘이 되는 소중한 말씀을 해주신 스님, 그리고 함께 절을 올리며 존재만으로도 나에게 큰 의지가 되어준 법우님들까지… 그 분들 그리고 그 장면 하나하나를 경험한 이라면 어느 누가 그 순간들을 쉽게 잊을 수 있을까?
해인사 여름수련회에서 인상 깊었던 것을 하나 더 꼽자면 단연 습의사 스님들의 열정이다. 수련생들의 공양은 스님들의 공양 시간과 똑같은 때에 진행되었는데, 나중에 스님들께 여쭈어보니 수련생들을 지도하시느라 공양 시간을 놓쳐 끼니를 거르기도 하셨다고 한다. 1080배를 할 때엔 앞에서 스님들께서 우리 수련생들과 함께 한 배씩 절을 올리며 구슬땀을 흘리셨는데, 그 모습을 보며 더욱 신심을 발휘해서 절을 할 수 있었다. 심지어 3보 1배를 할 때에는 포교국장님께서도 맨발로 수련생들과 함께 비를 맞으며 절을 하셨다. 그리고 암자순례를 할 때, 해인사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세심하게 설명을 해주시는 습의사 스님의 모습을 보면서 ‘아! 이런 스님들이 해인사에 계시니 해인사가 최고의 사찰로서 명맥을 이어갈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나하나 다 꼽을 수 없을 정도로 해인사를 가득 채우고도 우리 수련생들에게 전해지던 스님들의 열정과 해인사에 대한 애정에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이 글을 통해 다시 한 번 스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내 마음은 여전히 그곳에 있는 것 같은데, 달력을 보니 해인사를 떠나온 지 어느덧 나흘이나 지났다. 돌이켜보면 짧은 기간이지만 해인사 여름수련회는 내게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이전보다 더 매사에 진중하게 임하며 언행이나 행동 이전에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내 자신과 나의 목표에 대한 믿음이 확고해졌다. 가끔 차수를 하고 걷는 내 자신을 발견할 때엔 혼자 멋쩍게 웃기도 한다. 엊그제는 눈앞에 어른거리는 가야산 자락이 그리워져 차선책으로 동네 뒷산에 올랐다. 낮게 깔린 산등성이와 탁한 공기는 웅장하고 청량한 가야산의 그것에 견줄 것이 못되었지만, 그곳에서 해인사로부터 가져온 소중한 추억과 경험을 하나하나 되새기며 위안을 삼았다. 나에게 커다란 감동과 추억을 선물해준 해인사가 도저히 잊히질 않아 조만간 한 번 더 그곳을 찾을 것 같다. 사진 속에 밝게 웃고 있는 스님들과 법우님들 그리고 아름다운 해인사가 너무나 눈부시다. 우리 모두 항상 이 날의 눈부심을 기억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합장하여 부처님께 기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