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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계에 법이 없고 사대는 본래 공하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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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 해인총림 방장 법전 스님 2010년 08월 342호
계성변시광장설溪聲便是廣長舌이요
산색기비청정신山色豈非淸淨身이로다
시냇물 소리는 부처님의 장광설이요
산색인들 어찌 청정법신이 아니랴?

반산보적 선사가 말했습니다.
“삼계三界에 법이 없는데 어느 곳에서 마음을 구할 것인가?
사대四大가 본래 공空한 것인데 부처가 어디에 머무르겠는가?”

반산보적 선사는 마조문하의 선승입니다. 하북성 유주幽州 땅 반산盤山에서 종풍을 드날렸습니다. 상여행렬의 곡소리를 듣고 깨침을 얻었고 푸주간에서 나눈 주인과 손님의 대화를 듣고 경지가 달라지는 등 기이한 일화 몇가지가 선가에 전해오고 있습니다만 전체행적은 크게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제자에는 진주보화鎭州普化선사가 있습니다. 그는 임제선사와 몇마디 문답을 남기고 있는 격외장부이기도 합니다. 반산과 보화선사 모두 그 어떤 선사의 공부경지 보다도 더 깊은 수행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후세에 별다른 행적을 남기지 않는 몰종적沒蹤迹의 경지를 참으로 제대로 보여준 장부 중의 장부라고 할 것입니다.

반산선사의 ‘삼계에 법이 없다’는 말에 대하여 있다거나 없다거나 하는 양단에 집착하지도 않고 또 그것을 벗어나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그 도리를 제대로 드러낼 수 있는가 하는 것에 이 화두의 관문을 푸는 열쇠가 있습니다. 그 대답은 절벽에서 곧장 폭포수가 쏟아지는 것처럼, 소나기 이후에 흙탕물 급류가 흐르는 것처럼, 무사가 칼을 휘두르는 것처럼, 마른 하늘에 번개가 치는 것처럼, 달없는 밤에 별똥별이 사라질 때 처럼 순식간에 재빠르게 대답해야만 합니다. 만일 머뭇거리면서 이 생각 저 생각으로 궁리하면서 대답을 찾으려고 한다면 무수한 부처님이 다시 이 세상에 나타나신다고 해도 반산선사의 본의를 제대로 찾아낼 수가 없을 것입니다. 또 선사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종지宗旨를 알아차려 보겠다고 이리저리 잔머리를 굴리거나 혹은 온몸을 수없이 쌓인 소리나 모양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더럽힌다면 꿈속에서도 반산의 뜻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고인이 말하길 ‘삼계가 유심이요 만법이 유식’이라 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공안에서는 ‘삼계에 법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마음 또한 구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또 선인이 말하길 ‘부처를 어찌 멀리서 찾으려고 하느냐? 그것은 사대를 여의지 않는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공부하는 안목 있는 납자들은 이 말에 절대로 속지 않습니다. 사실 제대로 알고서 본다면 벗어날 삼계도 없으며, 또 구할 마음도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의어야 할 4대도 없고 이루어야 할 부처도 없는 법입니다. 흔히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소리로 ‘마음 밖에 달리 법이 없다心外無法’고 하였으나 반산선사는 이렇게 전도되고 착각하는 중생들의 고질병을 단박에 치료하기 위하여 ‘어디서 마음을 구하려고 하는가?’라고 했던 것입니다.

금강경에는 과거심도 얻을 수 없으며, 현재심도 얻을 수 없으며, 미래심도 얻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마음은 모양도 형체도 색깔도 없기 때문에 그 마음의 본체는 얻을려고 해도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자세히 살펴보면 이러한 마음의 작용으로 나타난 것이 중생의 삼계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삼계 역시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입니다. 그리고 일체의 모든 존재나 삼라만상도 텅비어 공한 것이기 때문에 사실 절대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금강경은 ‘만약 모든 모양이 있는 것을 모양이 아닌 것으로 볼 수 있다면 여래를 친견하리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달마대사가 혜가에게 ‘불안한 마음을 가져오너라’고 하자 ‘불안한 마음을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다’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달마대사는 ‘내가 그대를 안심시켜 주었다’고 말하는 것이였습니다. 그 말에 총명한 혜가스님은 얻을 수가 없는 그 마음이 안심을 체득한 경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반산선사도 ‘삼계가 무법인데 어디서 마음을 구할 수가 있겠는가’라고 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마음이란 어느 곳에서도 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자항료박慈航了朴선사는 이렇게 자문자답 했습니다.
삼계에 법이 없거늘 어디서 마음을 구할 것인가?
하늘은 높고 땅은 두터우며 바다는 광활하고 산은 깊다.
사대가 본래 공인데 부처인들 어디에 의지하여 머물 것인가?
솟았다 가라앉았다 하고 인도에서 번쩍 중국에서 번쩍번쩍 나타난다.

흰구름은 무법의 상태를 과시하지도 않고 흐르는 물도 자신의 입장을 무심이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구름이나 물이나 그냥 유유히 왕래하고 도도하게 흐르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면서도 눈있는 사람에게는 무법의 경지와 무심의 세계를 가만히 말없이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일체의 모든 법은 인연의 화합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법이라고 하는 것도 독자적인 자성自性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성이 없기 때문에 무법無法인 것입니다. 그래서 일천파도가 다투어 일어나는 것은 문수의 가풍이요, 하나같이 맑은 허공은 보현의 경계인 것입니다.

삼계는 중생이 살고 있는 세계를 말합니다. 욕심도 가득하고 또 몸뚱아리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물과 다름없는 중생심도 있고 동시에 부처의 자비심도 함께 하는 것이 바로 이 사바세계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하안거 반살림 대중에게 묻겠습니다.
삼계에 법이 없는데 어느 곳에서 마음을 구할 것입니까?
사대四大가 본래 공空한 것인데 부처는 어디에 머물고 있습니까?”
열심히 남은 반살림동안 잘 참구하여 해제 때는 일주문을 향해 힘차게 껄껄 웃을 수 있길 바랍니다.

호상부용맹하신湖上芙蓉孟夏信요
일지영수양지홍一枝映水兩枝紅이로다
연못에 뜬 연꽃이 한여름의 소식을 전하니
가지 하나가 물에 비침에 두 개의 가지는 붉구나.

2554(2010) 하안거 반산림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