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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16강 진출과 광장의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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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2010년 07월 341호
국가대표 축구팀이 남아공 월드컵대회에서 16강에 진출했다. 한국 대표팀은 우리 시간으로 6월 23일 새벽 3시30분부터 벌어진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 2:2로 비겼다. 이로써 우리 대표팀은 1승1무1패, 조 2위로 16강 문턱을 넘었다.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열린 대회에서 16강에 진출한 것은 처음이다. 이날 새벽 온 나라에 기쁨의 함성소리가 메아리쳤다.
언론들은 대서특필 했다. 문화일보는 ‘해냈다, 사상 첫 원정 16강’이라는 제목의 사진기사로 1면을 장식했다. 16강의 의미가 엄청나게 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해준다. 이 신문은 박주영 선수가 골을 넣고 동료들과 얼싸안고 기뻐하는 사진으로 1면의 절반을 채웠다. 이 신문은 1면 외에도 12개 면을 할애해 한국대표팀의 16강 진출 관련 기사를 실었다. 두 개면은 아예 사진으로 도배했다. 40면 중 12개 면을 할애했으니 ‘16강 진출 특집호’라 할만하다. 면면을 보니, 16강 쾌거 이룬 얼굴들, 한국축구 이제 8강이다, 나이지리아전 상보, 프리킥 역전골 박주영, 맹활약 이정수·정성룡, 허정무의 리더십, 허정무호 숨은 조력자, 한국축구 체질 바뀌었다, 남아공월드컵 화보, 16강 진출 외신 반응, 남미 강세·프랑스 몰락, 환호의 거리응원 등이다.
정치권도 들썩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나라와 나이지리아와의 경기를 관저에서 김윤옥 여사와 함께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월드컵 원정 첫 16강 진출의 꿈을 이뤄낸 것을 대한민국 국민과 함께 기뻐하며 축하한다. 8강을 향한 도전에도 국민 모두가 함께 할 것”이라고 남아공의 한국대표선수단에 축전을 보냈다.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정세균 민주당 대표도 축하의 말을 전했다. 이날 저녁 뉴스에는 월드컵 16강 진출의 경제적 효과가 1조8천억 원에 달한다는 현대경제연구원의 ‘월드컵 16강 진출의 경제적 효과’ 보고서 내용이 흥분의 여운을 이어지게 했다.
이날 모든 방송의 톱뉴스는 ‘16강’이었으며, 30분 넘게 월드컵을 전해줬다. 전날 세종시 수정법안이 국회 소관 상임위에서 부결된 데 따른 여야의 논란과 후속 조치는 뒤로 밀렸다. UN 안보리에 상정된 천안함 결의안 채택은 어떻게 되는 건지, 감사원의 국방부 감사에 대한 후속대책은 잘 마련되고 있는지, 유럽발 금융위기에 우리 경제는 괜찮은 건지, 이런 소식들을 전해주지 못했다. 이 대통령 부부도 새벽을 밝혀 응원을 할 정도이니 하루쯤은 월드컵에 빠져 시름을 잊어도 괜찮다는 것이 TV의 메시지였다.
축구는 어느 스포츠보다 박진감이 넘친다. 축구를 좋아해 일요일이면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사는 한 지인은 축의 매력을 이렇게 말했다. “나와 동료들의 거친 숨소리, 몸을 부딪는 쾌감이 있다.” 그렇다 축구는 재미있다. 육체적 한계를 느끼게 해주는 운동량, 육체뿐만 아니라 전술과 테크닉을 적절히 섞어 구사하는 작전에 이르면 하나의 소우주를 만들어내는 쾌감까지 느낄 수 있다. 여기에다 공 하나에 조그만 공터만 있으면 둘이건 스물이건 즐길 수 있으니 저렴한 비용의 대중스포츠가 될 조건을 갖췄다.
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진압하고 등장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축구를 무척 좋아했다. 그 덕분에 우리나라에 프로스포츠제도가 도입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박스컵’이라는 아시아축구대회를 만들었다. 권위주의 시절에 축구를 비롯한 스포츠는 정권의 애호품이었다. 우리나라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이지리아에서도 그랬다.
그러나 축구가 권위주의 정권에 복무만 한 것은 아니다. 전쟁을 멈추도록 한 예도 있다. 코트디부아르 출신의 디디에 드로그바 선수로 현재 첼시에서 뛰고 있다. 코트디부아르는 2002년부터 5년간 내전으로 수만 명이 숨지는 등 혼란에 빠졌었다. 반군인 북부 이슬람 세력은 정부를 장악한 남부 기독교 세력이 코코아 수출의 이득을 갈취하고 있다면서 쿠데타를 기도하려다 실패하자 내전을 벌였다. 초콜릿의 원료인 코코아가 정부군과 반군의 전쟁 자금으로 사용되면서 ‘피의 초콜릿(blood chocolate)’이란 말까지 생겨났다. 2002년 9월 정부군과 반군의 내전 이후 평화과정 이행과 관련하여 프랑스군 약 4000명, 유엔평화유지군 약 6000명이 주둔하고 있다.[위키피아]
이 내전으로 인해 7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이런 가운데 2006년 독일 월드컵 아프리카 지역예선에서 코트디부아르가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에 출전하게 됐다. 드로그바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적어도 1주일만이라도 전쟁을 멈춰주세요!\" 그후 코트디부아르의 정부와 반군은 평화협정을 체결, 내전은 종식됐다. 드로그바는 내전을 멈추게 한 사나이로 불리게 되었다. 그가 국민의 존경을 받는 축구선수였으며, 축구를 너무나 좋아한 코트디부아르 국민들이었기에 가능했다.
이번 월드컵대회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배경에는 넬슨 만델라 당시 대통령과 축구, 럭비가 얽혀 있었다. 백인 정권의 인종차별정책에 저항해 27년6개월 동안 수감됐다가 풀려난 만델라는 1994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백인을 단죄하는 대신 \'흑백 단합\'을 내세웠다. 남아공에서 럭비는 백인들이 즐기는 운동이었고, 흑인은 축구를 더 좋아했다. 흑인 단체들은 백인 우월주의 상징인 럭비 대표팀 \'스프링복스\'를 증오해 해체하려고 했다. 그러나 만델라는 오히려 \'스프링복스\'를 살려내 선전을 당부했다. 월드컵 결승전 날 만델라는 \'스프링복스\' 유니폼을 입고 나왔다. 그의 관용에 감동한 백인 선수들은 투혼을 발휘했고, 럭비 월드컵 우승은 \'만델라 마법\'으로 불렸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만델라는 스포츠를 통한 화해와 단결의 힘을 재확인하기 위해 이번에는 축구 월드컵 유치에 직접 나섰다. 2000년 독일과 경쟁했다가 1표 차이로 패해 눈물을 삼켰던 남아공은 2004년 마침내 아프리카 최초의 월드컵 개최권을 따냈다. 당시 86세의 만델라가 FIFA 집행위원들에게 일일이 호소한 덕분이었다. [박해현, ‘만델라와 월드컵’, 조선일보 2010. 6. 12] 14.2
축구는 이렇듯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 국민의 민주화 요구를 잠재우는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전쟁을 멈추게 하고 화합을 이뤄내는 위대함이 되기도 한다.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한밤중이 되었건, 새벽이건 가리지 않고 광장에는 한국팀을 응원하는 ‘붉은 악마’로 가득 찼다. 그동안 우리는 광장에 익숙하지 않았다. 있었다면 관제의 5.16광장(지금의 여의도공원)이 있었다. 서울역광장은 민의를 드러내는 광장의 본래 뜻이 아니라 반공궐기대회로 채워졌었다. 30대 중반 이후의 사람들이 기억하는 광장이며, 그것은 관제官制의 풍경이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은 광장의 주인을 관(官)에서 백성의 것으로 되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 전에도 물론 미군 장갑차에 압사한 효순이와 미순이를 추모하는 열기가 서울시청앞과 광화문 거리를 메웠다. 2002년은 비정치적 사안으로 온 국민이 광장에서 어울어지는 장관을 연출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한 해였다.
여전히 광장은 그 이름이 지닌 뜻과 다르게 폐쇄된 상태다. 광화문광장은 1인 시위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용자의 안전과 외국 대사관이 인접해 있다는 것이 불허의 이유다. 표현의 자유는 광장에 이르러 닫히고 만다. 30여 년 전의 전두환 정권 시절이 아닌 2010년 6월의 상황이다. 월드컵 응원 때만 열리는 광장이어서는 광장이라 이름 붙이기 민망하다. 월드컵 해외원정 16강 진출을 계기로 광장은 열려야 한다. 그래야 16강 진출이 주는 기쁨이 배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