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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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대 - 정산┃해인사 승가대학 2학년
2010년 07월 341호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
지하철 화장실 입구나 내부에 걸려있는 문구이다. 참 좋은 표현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공중화장실이나 공공장소는 나만의 위한 장소가 아니기 때문에 한 사람이 한 사람이 깨끗이 사용하면 우리 모두는 깨끗한 공간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공공의 장소를 그렇게 깨끗이 사용하는 그 사람, 그는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지 않을까? 라고 대충 이런 뜻이라고 알고 지나쳐 왔다.
그런데 이 뜻이 나에게 화두로 다가온 것이었다.
화두의 주인공은 저의 은사스님이셨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장소뿐만 아니라 스님이 계셨던 장소는 치우지 않아도 깨끗해 보였고, 아름다워 보였다.
왜 그럴까? 왜 그럴까?
강원에 오기 전까지는 알지 못하는 숙제였다. 그런데 강원에 와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생활을 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접하다 보니 차츰 화두가 현실 속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큰 나무 아래에서는 나무들이 자라지 못하지만, 큰 사람 아래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의지처가 된다” 라는 속담이 있다. 왜 그럴까?
부처님도 하느님도 존재 유무를 떠나서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분들이 머물다 간 자리는 2010년과 260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도 그 분들이 머물다 간 그 자리에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분들과 같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행이고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인가?
염불이라는 말이 있다. 개인적으로 참으로 좋아하는 말이다. 무엇인가를 이루어지는 소원을 비는 행위로써가 아니라 아름다운 이름을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모습을 생각하는 그 모습하나 만이라도 이 얼마나 경이롭고 신비한 일인가? 덧붙여 나도 그와 같은 행을 실천한다면 이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금강경뿐 아니라 수많은 경전에서 수지 독송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설법해 주는 공덕을 가장 수승한 공덕으로 여기고 있다. 또 법화경에서는 법화경이 설하고 있거나 경전이 있는 곳을 지나쳐가는 공덕으로도 무량겁에 죄가 다 용서가 된다는 말도 있다.
성경,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일요일이면 교회에 나아가기 위해 손에 들고, 기도를 하면 읽고 외우고 타인의 위해 설하고 있다. 그리고 아름다운 이, 예수의 명호와 기도의 명호인 아멘을 수 없이 많이 읊고 있을 것이다.
아미타 부처님의 무량광불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있다.
무명의 밝히는 아름다운 빛인데, 1촉을 가진 등불 아래에는 1명이 모이고, 10촉을 등불아래에는 10명이 모이듯 무량한 빛 속에는 무량한 사람, 무량한 중생이 모여 그 빛을 보며 아름다움을 찾듯이.
이것이 갖는 위력은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부처님과 예수님은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생각이 든다.
오늘 아침에도 발원문을 읽었다.
“내 모양을 보는 이나 내 이름을 듣는 이는 보리마음 모두 내어 윤회 고를 벗어나되”
“향을 싼 종이는 향내가 나고, 생선을 싼 종이는 비린내가 나듯이” 수행은 가만히 않아 있어도 아름다운 향기를 내는 것이다.
무소의 뿔처럼 그렇게 한걸음 한걸음씩 나아간다면 우리 모두는 정말 아름다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리라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