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견자번뇌멸衆生見者煩惱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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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의 향기 - 경성
2010년 07월 341호
불교, 부처님의 가르침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불법佛法을 깨닫고 불법을 전해주는(전법, 傳法) 것은 마음과 정신에서 가능한 것이며 이루어지는 것이다. 오염된 마음을 줄여간다면, 마음속의 번뇌와 무명을 제거한다면 결국 마음은 선善으로 향하고 선한 마음이 늘어나게 될 것이다. 마음을 선하게 바꾸는(전환, 轉換)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실천하는 첫걸음이며, 정진精進)이다.
가피加被를 입었느니, 가호加護를 받았느니 이야기 하지만, 진정한 가피와 가호는 우리의 마음에서 발생하는 것이지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마음속에서 선함이 늘어나 증장되고, 그릇되고 오염된 부분이 줄어들어서 소멸하는 것이 바로 가피와 가호의 의미인 것이다. 가피와 가호는 우리가 닦아야 하는 덕성德性을 강조하는 것이며, 기도하거나 수행하기 이전에는 없었던 선한 덕성을 함양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가피와 가호는 마음의 선함이 강력해지고 악하고 오염된 마음이 약해져서 결국에는 완전히 소멸되어서 마음속에 순전純全한 선이 가득할 때에 비로소 체험하게 되고, 가호를 입게 될 것이다.
악업惡業으로 오염된 마음을 선한 마음으로 전환함에 있어서 넘어야 할 중요한 관문은 번뇌와 집착을 극복하고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번뇌와 집착을 극복하기가 힘겹고 어려운 이유는 태어나기 이전, 시작 없는 시절부터(무시이래, 無始以來) 우리가 겪고 치러야만 하는 모든 고통과 괴로움이 바로 번뇌와 집착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집착하면 차별하게 되고, 갈등을 야기하고 불러오게 되며, 번뇌와 괴로움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중생견자번뇌멸衆生見者煩惱滅
중생으로서 부처님의 공덕을 보는 사람은 누구든지 모든 번뇌가 저절로 소멸해 버리게 된다. 부처님의 공덕을 본다는 것은, 부처님의 깨달음, 부처님의 지혜, 부처님의 자비가 과연 어떠하다는 것을 진정으로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을 가리킨다. 법을 보는 사람은 나를 보는 것이라고 하신 선언宣言과 동일한 경계이다. 법을 본다는 것, 부처님의 공덕을 본다는 것은 불법의 사상과 정신을 철저하게 이해하여 체득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불법의 사상과 정신을 진실하게 진정으로 이해한 사람이라면, 영원불변의 내가 있다는 생각(아상, 我相)이 추호만큼이라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아상에서 이미 벗어났다면, 상대방에 대한 집착인 인상人相과 내 편, 우리 편이라는 치우친 견해인 중생상衆生相과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미래에 대한 환상에 집착하는 수자상壽者相 등의 인지상정人之常情인 모든 편견과 굴레와 구속에서 해방되고 해탈하게 될 것이다. 사상四相의 산이 무너져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게 된다면 바로 그 자리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게 된다는 것은 경전의 설명으로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소욕少欲과 지족知足은 번뇌와 집착을 대치對治하는 전통적인 불교의 지침이며, 욕심을 적게 하고 만족할 줄 안다는 것은 필요하고 요긴한 것만을 소유하여 지나친 과소비에 대응하자는 무소유無所有의 실행과 다르지 않다. 소욕과 지족은 두타행頭陀行으로 일상의 생활에서 실현가능해 지는데, 두타행이란 의식주의 전반적인 생활지침으로 12가지가 있으며 그 가운데에서 대표적으로 분소의糞掃衣와 걸식乞食과 아란야阿蘭若를 열거한다. 분소의란 의복에 대한 욕심과 집착에서 벗어나기 위한 실천으로 다른 사람들이 입다가 헤져서 버린 옷들을 수선해서 입는 것이고, 걸식이란 음식에 대한 탐착을 버리고 하심下心과 전법傳法을 구족하는 본연本然의 공양법이며, 아란야란 적정처寂靜處로 소박하고 조용한 곳에서 선정과 수행에 전념하고 매진하기 위한 조처이다.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에서는 현대적인 해석으로 실현 가능한 두타행을 제시한다. 의복에 대한 탐욕에는 많은 옷을 소유하려는 다의탐多衣貪과 비싼 옷을 입으려는 미의탐美衣貪이 있으므로, 많은 옷과 비싼 옷을 추구하지 않는 것으로 분소의를 대신하게 된다. 또한 음식에 대한 집착에는 많이 먹으려고 하는 다식탐多食貪과 산해진미의 뛰어난 미각을 과시하는 미식탐美食貪이 있으며 이것을 버리기 위해서 걸식을 수행하는 것이지만, 걸식에 대한 이와 같은 이념을 잊지 않으면서 과식하지 않거나 식도락에 매달리지 않는 것으로 걸식두타행을 대체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거주하는 처소에 관한 집착으로는 웅장한 집에 머물려고 하는 옥개탐屋蓋貪과 좋은 침구와 가구를 사용하려고 하는 와구탐臥具貪을 꼽으면서, 이러한 욕심과 집착을 버려서 없애는 것이 아란야의 두타행과 다르지 않다고 설하고 있다.
오염된 마음을 전환하여 선으로 나아가서 궁극에는 가피와 가호를 능동적으로 체험할 것인가, 그것보다 우선해서 선심善心으로 전환함에 걸림돌이 되는 번뇌와 집착을 떨어내고 소욕과 지족과 무소유를 실천하는 두타의 지침에 입각해서 살아갈 것인가, 그보다 수승한 근기라면 불법의 사상과 정신의 진정한 이해와 체득을 통해서 모든 번뇌가 저절로 소멸해버리고 마는 경계에 들어설 것인가, 각각의 방편方便과 방도方道가 모두 한 사람 한 사람의 나를 향해 열려 있고 나에게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