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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총무국장 심우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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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정영 2010년 07월 341호
아침부터 볕이 따가운데도 해인사 마당엔 부처님 머리 닮은 불두화가 소복이 성성하게도 피었다. 봄꽃도 다 져버렸으니 친구도 없고 뙤약볕 마당엔 지나가는 이도 없으니 봐줄 사람도 변변찮은데 흔들림 없이 새하얗게 피었다. 그 곁에 앉아 있으려니 땀이 흐르는데 아랑곳없는 불두화 덕에 더 덥기만 한데 점심 공양이 시원한 콩국수란 소식에 문득 시원해진다. 게다가, 예전에 총무원 호법부에서 눈만 마주쳐도 섬뜩했다는 심우 스님을 뵈러 가려니 아예 등골이 오싹해진다.
“여긴 외국인들이 많이 찾아오니까 안내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겠나 싶어서 한 번씩 봐요.”
책상 위에 놓인 영어회화책에 대한 설명이다. 그러니까 영어 공부를 하는 이유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을 돕고 배려하기 위해서라는 것인데, 사실 그날 스님과 나눈 이야기의 전부가 그것에 다름 아니었다. 종단과 종단의 모든 스님들을 위해 강하고 무섭게 살아왔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선 살아본 적 없다는, 중요한 것은 다른 이들이 편하기 위해선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말씀. 그러니 그날 오후 뙤약볕 아래서도 흔들림 없이 결백을 말하듯 새하얗게 핀 불두화가 스님의 모습은 아닐까 싶었다.
심우스님은 현재 해인사 총무국장으로 살림살이를 도맡아 하고 있다. 꼼꼼히 하나하나 챙겨야 하는 성미인데다가 작은 살림이 아니다 보니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힘든 것보다, 소임 또한 수행과 다르지 않기에 힘들다며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다 하신다.
“선방에 앉아 있을 때는 몰랐는데 대중 시봉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예전에 큰 스님들이 말씀하시길, 총림에 사는 것만으로도 수행이 된다고 했어요. 대중의 눈이 공부를 시켜주니까. 그만큼 대중에서 살기 힘들다는 뜻이지요.”
특히나 살림을 사는 소임이다 보니 더 많은 눈들이 집중해서 보기 마련. 나보다 잘 사는가, 혼자서 맛있는 것 먹는가 하는 눈들이 항시 스님을 향해 있단다. 예불 시간이든 공양 시간이든 주시하는 눈들 덕분에 똑바로 살지 않을 수가 없단다.
지금은 총무국장 소임을 맡고 있지만, 심우 스님은 91년도부터 소임을 살기 시작해서 97년도에 해인사 호법국장을, 98년도부터 총무원 호법부에서 일을 해 99년도부터 상임감찰을, 그러고는 총무원 문화국장과 호법부 조사국장을 역임하고 2009년도엔 총무원 호법부장을 지냈다. 무슨 일이든 확실하게 처리하고 흑과 백이 뚜렷하다는 스님의 명성이 자자해서 소임만 산 스님 같은데, 사실 스님은 수좌 출신이다.
해인사로 출가한 스님은 강원을 졸업하자마자 선방에 갔는데 선방에 다닌지 7년만에 청중을 보고 9년만에 입승을 봤다. 선방에서 최연소 청중, 입승이었다. 그렇게 얼마 안 된 법랍으로 소임을 살기 시작한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해인사 행자시절에 공양을 했어요. 그 시절엔 결제를 하면 500명 정도가 있었는데, 밥을 다 짓고 나면 매일 꼭 법당에 가서 백발배를 했어요. 대중 스님들이 내가 지은 밥을 먹고 아프지 말고 도를 닦아 성불하시라는 마음으로 했지요. 수계 받을 때까지 했으니 그 공덕으로 강원 졸업하자마자 선방에 다닌 게 아닌가 싶어요.”
그 당시 스님은 선방에만 다니겠다는 생각으로 길을 나서 송광사, 통도사를 거쳐 불국사에 살던 때였다. 그때가 선방 7년째인데 어른 스님들이 청중을 보라고 해서 두 철을 살고 9년 차에 입성을 보았다. 어린데다가 법랍도 많지 않은데 입성 산다고 주변에서 이런저런 쓴 소리도 많았다.
“선방에 살면 모난 스님들이 있기 마련인데,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이라 그런 스님들을 자제시키고 문제를 해결하다보니 어른 스님들이 내게 소임을 자꾸 맡겼던 것 같아요..”
옛날 큰 스님들이 도를 닦을 때는 좋은 일도 하지 말고 나쁜 일도 하지 말라고 했지만, 심우스님은 나쁜 일이든 좋은 일이든 개입해야 했고, 그러다보니 그때부터해서 호법부에서 소임을 볼 때도 지금도 주변 사람들이 스님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고 싫어하기도 한단다.
“내가 나쁜 일에 악역을 맡은 게 아니라 다 종단 일을 하느라 그런 거니, 내 맘에서 두려울 것은 없어요. 아무리 어려워도 개인적 이익을 위해 발을 옮긴 적도 없고 배신해 본 적도 없으니까요. 중 벼슬이 별 건가요. 언제든 걸망 지고 떠나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왔어요. 항상 빈 마음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무서울 것 없어요.”
마음에 한 치의 걸림도 없다는 말씀이다. 그렇기에 스님은 자신이 사는 것만큼 편한 삶은 없을 것이란다. 조금이라도 이득을 보겠다고 재고 숨기고 들킬까 두려워하며 사는 게 더 힘들 것이란 말씀이다.
“남들처럼 둥글둥글하게 이도 좋고 저도 좋게 살아야 적이 없는데, 난 그게 안 돼요. 흑이면 흑이고 백이면 백으로 살다보니 내 자신한테 피곤하지요.”
2009년도에 총무원 호법부장을 맡았을 때도 역임자 중에 심우스님이 최연소였다. 그렇다 해도 거칠 것 없었다. 일이 무서운 줄도 모르고 악역도 원수도 무서운 줄 몰라, 한번 일을 맡으면 잠도 안 자고 물불 안 가리고 해나갔다. 무슨 원한을 사려고 그렇게 스님들 옷을 벗기냐는 말도 들었지만 옳고 그름을 분명히 했고, 힘 있는 사람이라고 봐주지도 견제하지도 않았다. 사리사욕을 챙기려는 이들은 스님을 껄끄럽게 생각해 등을 돌려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스님은 그저 호법부는 스님들을 벌하는 기관이기 이전에 스님을 보호하는 기관이라는 생각으로 일했을 따름이다.
“소임을 맡으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내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리고 내가 이렇게 일하지 않으면 무고한 사람이 손해를 볼 것 아닌가.”
다들 자신의 명예와 이미지가 더렵혀질까봐 이리 빼고 저리 빼고 하는 일을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가면서까지 해내니 어른 스님들이 심우스님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고 더 일을 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단 한 번도 원망해보지 않았어요. 종단을 위해서 한 일이니까요. 나 하나 희생해서 종단이 평화롭고 안정된다면, 해인사가 평화롭게 잘 굴러간다면 기꺼이 하겠다는 마음으로 살아왔습니다.”
그 희생의 마음으로 오늘까지도 해인사 총무국장과 진주 응석사 주지 소임을 살고 있는 스님은 문득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신다.
“속가의 아버지가 핵폭탄 같았어요. 식구들이 아버지만 보면 무서워서 피해 다녔어요. 식구들이 많이 괴로워했지요. 그래서 나는 아버지 앞에 가서 정면으로 부딪쳤어요. 맞으면서도 아버지를 붙잡고 있었지요. 그러는 동안 우리 식구들은 편하게 잘 수 있었어요. 나 하나 희생함으로써 모두가 행복하다면 그것이 기쁨인 거예요.”
스님은 이제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해제 때 도반 스님들이 걸망 메고 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함께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때가 많단다. 그러면 새벽에 가만히 앉아서 선방에 가야 할 사람이 여기서 왜 이러고 있나하는 생각이 든단다.
“좌복에 앉아 있을 때가 얼마나 행복한지 그 자리를 떠나보면 알아요. 이젠 난 안 해본 게 없으니 언젠가는 선방에 가면 열심히 정진할 수 있지 않겠나 싶어요. 뒤늦은 발심을 하리라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나 이판과 사판은 둘이 아니라는 것을 스님은 거듭 말씀하신다. 이판은 보는 눈 의식하지 않고 자기 혼자 정진하면 되지만 사판은 더 어렵다는 것, 그래서 더 수행이 된다는 것고 강조하신다. 그렇기에 스님이 지금 바로 선방으로 달려가지 않는 것이리라. 선방에서의 수행보다 더 깊고 넓은 수행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남들이 보기엔 물었다 하면 놓지 않는 저승사자 같고 융통성 하나 없는 벽창호 같고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고 눈 하나 깜짝 안 할 것처럼 보인다 해도, 스님은 출가할 때와 똑같은 마음으로 걸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스님이 문득 문수보살의 게송을 읊으신다.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 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다들 스님 눈만 봐도 무섭다 하고 다가가기 힘들다고 해서 마음에 담고 있는 게송이란다. 그래서 자꾸 웃으려고 하고 부드러워지려고 노력한단다. 어떠한 폐단을 끊어내기 위해선 단지 날카로운 칼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어떨 땐 부드러운 물방울의 힘이 필요할 때도 있으니 말이다.
스님께 원력을 여쭈니 다시 한번 출가하는 것이란다. 그리고 오래도록 너무 복잡하게 살다보니 자꾸만 선방을 떠올린다며 소임 다 놓고 훌훌 털고 일어나 선방에 가서 아무 일 없이 도만 닦을 생각이란다.
“선방에서 한주 되는 게 내 원력입니다.”
스님 걸음 따라 절 마당을 거니는데, 말씀 내내 차갑고 날카롭던 스님이 불두화 아래에서 슬쩍 미소를 지으신다. 살갑게 보이는 게 어색해서 웃는 게 그렇게 조금쯤 설멍해 보이는 저승사자라면 그 걸음을 쫓아가도 좋겠다 싶었다. 그 저승사자와 함께 점심 공양을 하는 동안 나는 보았다. 딱딱한 얼굴로 자꾸만 농담을 건네는 심우스님을. 그게 농담인지 진담인지 몰라 헤매다가 숟가락을 놓을 쯤엔 보았다. 저승사자인척 하는 결백潔白한 불두화를. 역시 농담은 무뚝뚝한 얼굴로 해야 재미있다는 것을 또한번 깨달은 쨍쨍한 여름 오후였다, 저승사자가 대낮에 돌아다니던 그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