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유월. 2002년 이후부터 우리나라는 유월을 축구의 계절로 기억한다고 한다. 요즈음도 남아공에서 펼쳐지는 축구게임으로 연일 시차적응을 호소하는 주변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그만큼 전 국민이 축구공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는 듯 하다. 축구공이야 말로 전세계 사람의 눈을 하나로 모아 꽃을 피우는 세계일화世界一花를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나 역시 긴장속에 흔들리는 축구골대의 함성을 느끼며 경기를 보고 있다.그러나 나에게 있어 유월은 축구의 계절보다 더 중요한 기억이 자리 잡고 있으니 그것은 바로 사찰수련회다. 각 사찰마다 준비한 수련회 일정표를 꼼꼼히 살펴보며, 여름휴가 일정과 맞춰 마음가짐을 달리하는 기회로 삼고자 일정표를 살핀다. 지난 2002년 세계적인 월드컵이 한국과 일본에서 열리던 시절. 그때도 나에게 중요하게 다가왔던 것은 사찰수련회였다. 그때쯤 KBS TV에서 특집으로 해인사 사찰수련회가 소개된 적이 있었다. 수련회일정 내내 출가자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수련생들 인터뷰 내용이 마음에 와 닿았다. 1080배를 하고 있는 수련생들에게 지금 심정이 어떠한가 물어보는 과정에서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진짜 힘들다” “완전 빡세다” “꼭 한번 참여해 봐라” 뭐 이런 내용들이었다. 수련회를 통해 우리나라 3대 사찰을 알아보려 했던 나는 그때 결심했다. 일단 힘든데로 가 보자. 그렇게 하여 2002년 해인사 수련회를 시작으로 해마다 송광사,통도사,수덕사 사찰수련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모든 수련회에서 공통적으로 지켜야 할 필수사항이 있는데, 예불,묵언,차수,발우공양 그리고 각 사찰마다 모든 일정표에 1080배, 암자순례, 법문, 계 받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수련회에 참석하면서 지켜야 할 사항은 지키고, 참여할 사항은 열심히 참여하였던 경험을 바탕으로 그 의미를 하나하나 되새겨 본다.
우선 예불
불.법.승 삼보님께 예를 올리며 지극한 마음으로 감사함을 올리는 정성은 불자의 기본이라 할수 있다. 한편으로는 모든 배움의 길에서 스승에 대한 기본이 바로 감사함에서 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예불문에 대한 한 가지 경험을 나누고 싶다. 2006년 초에 개인적으로 건강상에 문제가 생겨서 치료를 받고 회복 중에 있을 때, 연구단지내 몇몇 법우들과 함께 퇴근 후 100일 정진을 하기로 했다. 100일 정진 테마는 금강경독송과 절하기. 100일이 다 되어갈 무렵, 정진에 앞서 올리는 예불시간에 한 법우님이 “지심귀명례 서건동진 급아해동 역대전등 제대조사~~”하는 부분에서 목이 메어 예불문을 다 낭독하지 못하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이었다. 이유인 즉은 너무나 감사하다는 것이었다. 부처님으로부터 이어온 법을 전하기 위하여 인도로부터 중국을 거처 이곳 해동 대한민국까지 법을 전하여 준 조사님과 선지식들이 감사함을 넘어 감격스럽게 다가온다는 것이었다. 함께 정진에 참여 하였던 우리들은 이 정도는 되어야 “지심귀명례” 할 자격 있는 거 아니냐며 예불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그 이후로 정말 예불에 대한 깊은 뜻을 새롭게 하였다.
묵언
수련회 참여하면서 이것만큼 특이하게 다가온 것이 없다. 태어나면서부터 기억된 모든 것을 다 동원해 보아도 의식적으로 “말하면 안됨” 이것을 실천해 본적이 없었다. 물론 학교 수업시간에 잡담하지 않기. 이런 것은 상식적으로 알고 있었으나, 어떻게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는단 말이지?. 아~참.
그런데 이것이야 말로 ‘나 자신과의 대화’가 시작되는 새로운 문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을 밖으로 표현해야만 아는 것이 아닌 느낌과 감정을 조절하면서 주변을 살펴보며 알게 되는 내면의 말. 이것이 바로 묵언이라는 사실을 아주 신선하게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웃종교에서는 묵상이라는 것이 일반생활속에 하나의 기도 방법으로 자리 잡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차수
이것 역시 생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왜 손을 앞뒤로 흔들지 못하게 하는 것인지? 되도록이면 씩씩하게 걸어야 한다고 알고 있던 나는 수련회 끝나고 법사 스님께 여쭈어 보았다. 답은 바로 나왔다. “생각이 흩어지는 것을 모으는 것” 이라고 했다. 그것은 맞는 말이야 바로 수긍을 하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묵언에 손까지 앞으로 모아 얌전히 걷게 되니 뭐 다른 잡다한 생각은 사라지고, 수련회 과정에서 느끼게 되는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몸에 새겨지는 과정으로 다가 왔다. 쉬운 듯 하지만 사소한 습관 하나 바꾸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실감하게 하였던 차수.
발우공양
발우공양은 지금도 낯설고 어렵기는 하지만, 공양의 의미는 확실히 몸과 마음에 붙어 하나의 생명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인식한다. 특히 공양게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송이다. 더불어 하나인 생명. 그 생명에 대한 존귀함이 내 몸을 통해 함부로 헛되이 버려질 수 없기에 말과 행동에 신경이 쓰인다. 시금치나물 하나 물 한모금도 내 몸에 들어오면 대신 잘 살아줘야 할 거 같은 책임감이 든다. 얼마 전 아는 분으로 부터 차와 향 그리고 도자기세트가 우편으로 도착하였는데, 감사의 마음을 공양게로 답신 답하였다.
“이 물건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론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에 온갖 욕심을 버리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삼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물건을 받겠습니다” 로.
사찰 수련회에 참여하면서 느끼는 점은 우선 기본을 알 수 있다는 거다.
불교에 대한 기본, 그 사찰에 대한 기본, 나 자신에 대한 기본.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모든 불교의식에서는 삼귀의 부터 시작한다.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이 삼귀의를 상징하는 불佛 법法 승僧을 계승하고 있는 사찰이 자랑스럽게도 우리나라에는 있다는 것이다. 통도사, 해인사, 송광사. 그래서 이곳을 우리나라 3대 사찰로 분류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찰을 상징적인 의미로만 알고 있다거나 들어서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고, 막연히 알고 있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라고 내 스스로 규정짓고 있는 탓에 좀 구체적으로 알아보고자 2002년도 부터 2005년까지 3보 사찰을 시작으로 수련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해인사
해인사는 법法을 계승하고 있는 사찰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이미지는 좀 FM식이다. 그야말로 ‘법대로 한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수련회에 참석해 보니 그 이미지가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나 엄하고 법대로 하던지… 그때 그렇게 호랑이처럼 느껴지던 습의사 스님들 중 한분이 지금은 해인사 선방에서 정진중이시다. 그때 우리 수련생들처럼 땀을 펄펄 흘리며 공부거리 이외에는 아무생각 없음 속에 계시겠지 아마도.
송광사
송광사는 승僧을 계승하고 있는 사찰로 아름답기도 하지만 16국사가 탄생한 절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큰 법당에서 들려오는 스님들의 거룩한 예불소리와 빠른 템포의 금강경 독경소리는 환상적이다. 법고소리 또한 모든 세계를 깨어나게 하는 거룩함이 묻어 울려 퍼진다. 승보전에 계신 1200아라한과 심우도 그림도 승보종찰 송광사하면 떠오르는 모습들이다. 스님들의 목소리에 거룩함이 베어 있는 곳.
통도사
통도사는 불佛을 계승하고 있는 사찰로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 통도사수련회는 특별한 정보를 가지고 참석한 것은 아닌데 왠지 모르는 포근함. 따뜻함. 그리고 고요함이 수련회 내내 온몸을 편안하게 감싸 주었다. 온전한 자기관찰. 그것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알게 된 곳이다. 수련회에 이력이 붙어서 그러했는지 알수 없으나, 그냥 그렇게 그곳에 있었던 사람처럼 걸림없이 자연스럽게 보냈던 수련회로 기억된다. 송림 숲길. 특히 수령이 오래된 붉은색 소나무의 품위 있음은 불보종찰과 하나로 어울려 장관이다.
칠팔월. 휴식이 필요한 계절이다.
이쯤하여 사찰수련회에 참석하여 온전한 쉼. 그리고 새로운 나.를 만나는 기회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