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나는 동네아이들하고 골목길에서 구슬치기나 자치기를 하고 놀았다. 몸이 약했고 과도한 운동량을 요하는 운동은 싫어했으나 구슬치기는 할 만 했다. 내가 노는 장소는 대전시 대흥동 도지사 관사 후문 골목길이었다. 우리 집은 좁은 길 하나를 두고 도지사 관사하고 이웃했다. 담벼락이 보통 집보다 두 배나 높았고 가시철망이 있어서 어른도 안을 들여다 볼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집이라니! 실재하나 실재하지 않는 집을 상상하면서 해가 떠서 해가질 때까지 나는 구슬치기 놀이로 날을 세웠다.
구슬을 구슬주머니에 넣어서 보물처럼 간직했다. 구슬은 삼색무늬가 들어있어서 햇빛에 비치면 오색무지개 빛을 내 뿜었다. 부모님을 졸라 구슬 몇 개를 산 후 구슬을 따면 기쁘고 구슬을 잃으면 슬픈 시기였다. 구슬과 비슷했으나 입에 넣으면 혀에서 녹는 사탕은 또 다른 의미의 구슬이요 보물이었다. 친척이나 부모님의 친구가 집으로 방문하면 외아들인 나를 생각해서 사탕봉지와 과자를 가져왔다. 아이를 7∼8명 낳던 시절이라 외아들을 귀하게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그 때의 사탕구슬의 매력은 지금처럼 물질이 풍족한 환경에서 자란 세대들은 잘 실감이 안 나리라 생각한다. 구슬처럼 투명했는데도 혀에 대면 단맛을 내는 물건이었으니 ‘젖과 꿀이 흐르는 천국’에는 사탕구슬이 산처럼 쌓여 있음에 틀림없었다. 사탕구슬에도 알록달록한 색깔과 무늬가 있어서 내 눈을 즐겁게 했는데 아름다움이란 이런 색채와 관계가 있다는 무의식이 키워졌다.
구슬은 세상과의 거래를 보증하는 최초의 화폐였다. 욕망이 투사된 사물, 즉 가치가 보증된 약속이자 게임이었다. 구슬로 과자와 딱지와 교환할 수도 있었으니 하이에크가 말한 ‘시장의 평화’가 그 안에 있었다. 그러나 재화가 있으면 탐욕도 일어나는 법. 힘이 센 다른 동네의 깡패아이들이 구슬을 빼앗아가는 일이 자주 있었다. 억울했으나 힘이 없었고 어머니를 졸라 다시 동네구멍가게에 외상을 달고 구슬을 샀다. 동네아이들과의 거래에 필요한 실탄이었으므로 어쩔 수 없었다. ‘전쟁과 평화’가 그 시절에 있었다.
일본천황가의 보물에 “검과 거울과 구슬”이 있다. 건국의 신 ‘이자나기’와 ‘이자나미(남매지간이다)’는 자손 중의 한명 ‘아마테리스’를 낳았다. ‘아마테리스’가 지상으로 내려오는 손자 ‘호노니기’에게 말했다한다.
“그것을 가져가거라, 아가야. 신검은 강한 무력을 상징하고, 거울은 종교의식에서 쓸 것이며, 구슬은 풍요를 상징하니, 이것은 대대로 일본천황의 상징이 될것이다!\"
단군신화의 복사판인데 단군신화에는 천부인天符印이 등장한다. 환웅桓雄이 환인桓因으로부터 받아 가지고 내려왔다는 것으로,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따르면 청동검·청동거울·청동방울의 3가지이다.
(지금 일본이 보유하고 있는 보물은 진짜가 아닌 복사판이라 한다. 센고쿠 시대에 8살 난 천황이 품에 칼, 거울, 구슬의 신기神器를 안고 바다로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복사판으로도 근심스런 강국을 이루었는데 진본이었으면 한국에 더 위협이 될 뻔 했다. 우리나라의 천부인은 백두산에 묻혀있는지 역사에서 사라졌다. 통일한국에서는 천부인이 다시 나타나 국가상징이 된다는 예언을 본 것도 같다)
구슬은 물질상징으로는 풍요이고 정신상징으로는 영매들의 수정구슬처럼 미래를 보는 도구이다. 성인이 되면서 구슬은 내 의식에서 잊혀졌다. 명리학命理學에서는 하늘에 드러난 별을 신神으로 잠재된 별을 살殺로 해석한다. 신神이란 지금현재 작용하는 기능(funtion)이고 살殺이란 때가 되면 하늘로 떠오르면서 작용하는 기능이다. 나에게 있어서 어릴 때의 구슬은 신神이었다. 구슬을 가지면 행복했고 아름다웠다. 의식과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물건이었으니 여의주 였고 fetish의 신기神器였다. 성인이 되어 구슬의 환상이 사라진 내 인생은 아름답지도 않고 행복하지도 않았으니 꿈에서 가끔 구슬이미지를 보았다
시가 내 마음속의 구슬을 보는 거울이며 환상이었음을 나는 나이가 들어서야 알았다. 비유나 상징은 사물에 내재한 본성의 빛을 드러내는 구슬처럼 시에서 오색무지개 빛을 내기 시작했다. 거울 세 개에 검은 도화지를 씌워 만화경을 만들어 들여다보던 추억이 생각난다. 색종이들의 모자이크와 반사이미지가 지상에 없는 세계를 만들어냈다. 그 아름다움이 심장에 각인이 되고 나는 고향동네의 도지사관사처럼 ‘보이지 않는 집’의 풍경을 보기위해 언어의 구슬인 비유나 상징을 만들어낸다. 구슬과 구슬이 천개의 거울처럼 서로를 반사하면서 세계를 인드라망의 풍경처럼 드러내는 놀이에 나는 빠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