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맞이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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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 - 정수임
1990년 12월 106호
ꡒ민제야, 서울 손님 쓰실 목욕물은 잘 데워졌겼제? 지금이 한여름이기는 하지만도 도시 사람들한테는 산골 찬물이 진저리가 쳐질거라. 아파트 물탱크에서 내려오는 물이란 항시 미지근해서 여름에도 차지를 않지. 원체 귀한 손님이라 이것저것 준비를 한다고는 했지만 불편하지나 않을지……그라고, 전등이 있다해도 산중의 밤은 깜깜하기 짝이 없으니 만에라도 아가씨 놀라실까 걱정이다. 멀찌감치 지켜섰다가 고이 모시고 오거라이.ꡓ
ꡒ방에 이부자리는 깨끗한 걸로 깔아 놓았느냐? 냉기 돌까봐 굳불 지핀 거, 행여 방 안에 연기라도 끼었는지 가봐야 되겠다. 압따, 공양간에서는 우째 이리 저녁이 늦은고? 먼 길에 시장하실텐데 씻자마자 드시구로 안하고. 내가 알기로도 두 대나 되는 자가용은 다우야고 이 먼 데를 택시로 오셨는지 모르겠네. 세월이 빠르기도 하제. 긴 머리 나풀대며 스님, 스님하고 무던히도 따르더니만 어언 애기 엄마가 되다니. 장하기도 하지. 그란데 참, 애기는 어째 안데리고 왔을꼬?ꡓ
어릴 적부터 자라는 것을 지켜보다시피 한 유발(有髮)상좌의 예고 없는 방문에 노 은사는 적이 서두르고 있었다. 민제를 문 밖에 세워두고 명령 겸 혼잣말 겸 오랫동안 놓아주지 않던 은사는 급작스레 다그쳤다.
ꡒ머 하는가? 어서 새 수건 챙기잖고. 오늘따라 대답도 없이 묵언을 하는겐가? 무에야!ꡓ
ꡒ……ꡓ
민제는 여전히 입을 다문 채 조용히 물러갔다.
여름 해가 길다고는 하지만 산속의 저녁은 눈깜짝할 사이에 저문다. 수낭아가씨가 도착한다는 소식은 민제의 심중을 온통 설레임으로 휘저어 놓았다. 그러나, 예전과는 달리 시간이 갈수록 더욱 답답해지는 것은 어떤 노릇인가. 결혼한 뒤로 처음 오는 수낭아가씨다. 어떻게 변했을까. 얼마나 깨가 쏟아지게 행복하였을까. 아기를 낳았다지. 예쁠까? 민제의 가슴은 하루 온종일 타들어 가는 것이었다. 마치, 자신의 속을 알기라도 하듯이 마주 보이는 앞산조차 휘부융한 하늘에 시커멓게 물든 검은 그늘을 우뚝 드리운 채 말이 없다. 산머리에 하나 둘 돋아나 가물거리는 낯익은 별들만 아니라면 그저 산 전체가 한 폭의 수묵화나 다름없이 고요히 침잠하고 있었다. 망상, 망상을 끊자. 이제 나는 그 옛날의 철부지 행자가 아니다. 의엿이 계(戒)를 받은 사미승에 아닌가. 민제는 애써 자신을 타일렀다.
찰싹 찰싹 차르르르.
더위로 흘린 땀을 씻어내는지 연신 매끄러운 물소리가 욕탕 밖으로 퉁겨나왔다. 멀찌감치 선 민제는 정갈한 수건을 받쳐든 채 석상같이 서 있었다.
ꡒ솥작다-솥작다-ꡓ
뒷산에서 소쩍새가 올었다. 풍년이 들려나 보았다.
솥이 적어 ꡐ솥작다ꡑ하고 울제면 풍년이요, 솥이 텅비어 ꡐ솥팅ꡑ하고 울 때는 흉년이란다. 지난 날, 부모님을 따라 피서온 수낭아가씨에게 가르쳐주던 말이다. 유난히도 수낭아가씨는 이야기를 좋아했다. 고개를 까닥이며 듣곤 하던 수낭아가씨의 향긋한 체취가 바로 곁에서 느껴지는 듯했다.
ꡒ탁아, 수건 좀 줘.ꡓ
수낭아가씨는 언제나 세 살 위인 민제를 그렇게 불렀다. 탁은 민제의 속명이었다. 하기야, 고아인 민제에게 딱히 속명이라고 있을 턱이 없지만 은사님께서 의지가지 없는 아이를 데려오며 붙여주었던 이름으로, 삼 년 전 수계(受戒)와 동시에 받았던 민제라는 법명을 쓰기 이전까지는 불러왔던 이름이니 속명이라고 할 수밖에.
수낭아가씨는 암자에 도착하면 먼지와 땀부터 씻어내어 속속들이 깨끗한 산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서둘렀다. 모여드는 짙은 어둠을 향해 한 조각 여린 빛을 뿜어내는 인동빛의 다발 속에서 수낭아가씨의 흰 손이 마른 수건을 찾아 까딱까딱 움직이면 민제는 후다닥 튀기듯 다가가 고개를 돌린 채 수건을 내밀곤 했다. 그때 수낭아가씨의 손끝에서 날아온 한 줌의 향기가 어찌 그리 좋던지. 몸내음인지 비누내음인지 모를 그 향기에 민제는 쓰러질 것 같은 어지러움을 느끼곤 했다. 온몸의 뼈마디가 그 자리에서 녹아버릴 듯 감미로운 전율이었다.
지반이 고르지 않아 움푹 패이기도 하고 울퉁불퉁하기도 한 도량의 험한 쪽만을 골라 딛으며 수낭아가씨를 인도하는 민제의 후각에 어떤 슬픈 냄새가 와닿았다. 조심스레 걷노라고 걸어도 행보에 따라 우쭐대는 불빛이 수낭아가씨의 호리한 아랫도리만을 비출 뿐인데도 민제는 수낭아가씨의 쓸쓸한 눈빛과 구멍이 뚫려버릴 듯한 가슴과 젖은 눈시울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것은 애써 탐색치 않아도 저절로 전해오는 느낌이었다. 무슨 일일까. 향긋하고 달큰한 내음 대신 피부 겉껍질을 조여오는 쓰린 느낌은 무엇 때문일까. 수낭아가씨의 신변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는 말인가. 은사와 막중한 인연을 맺고 있는 박변호사가 시집 간 딸의 산행에 일언반구의 연락도 없었다는 것부터가 이상했다. 친정집 몰래 온 것이 분명하였다. 게다가 한창 금슬이 좋을 수낭아가씨의 남편이 동행하지 않은 것도 그랬다. 하마쯤 아장아장 걸을 것이라는 어린 것을 떼어놓고 불쑥 내려와, 나 대구에 와 있는데 지금 해인사로 들어가는 길이라는 급작스런 전갈을 놓은 것도 수상했다. 남편과 싸웠을까. 어쩌면 맞았을지도 모른다. 어두운 저물녁인데도 굳이 색안경을 끼고 절 안까지 들어온 것도 이유가 있어서 그랬는가 생각되었다. 감히 누가, 그가 설령 수낭아가씨의 남편이라 하더라도 수낭아가씨를 아프거나 슬프게 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어두운 쪽만을 골라 디디며 수낭아가씨의 뒤를 따르는 민제의 가슴은 살가죽이 그대로 벗겨지듯 따가웠다.
이옥고, 저녁공양이 들어오고 두릅이랑 등치기, 감자자반, 그리고 지난 겨우내 땅 속에 묻어두었던 짠지까지 등장한 산사(山寺)의 진수성찬이 수낭아가씨 앞에 놓였다. 모든 잔심부름을 묵묵히 마친 민제는 은사의 방을 물러나 댓돌아래에 섰다. 상을 물릴 때까지는 윗목에 앉아 있어도 좋으련만 애써 시선을 피하는 수낭아가씨가 안쓰러웠고, 방안을 흐르는 답답함을 견디기 어려워서였다.
방 안에서는 간단없는 침묵이 흐르고, 가끔씩 두런거리는 두 사람의 목소리 사이사이에 나무관세음보살 하고 외이는 은사의 목소리가 탄식처럼 흘렀다. 조으는 듯 호젓이 타고 있는 춧불의 음영을 받으며 애써 외면하던 수낭아가씨의 얼굴은 퍽도 야위었고, 한 쪽 눈두덩이와 볼이 붓고 멍들어 있었다. 잘은 모르지만 대충 짐작이 갔다. 민제의 가슴을 그렇게 생으로 파헤쳐 놓고 떠나가 버린 수낭아가씨의 행복이 한 순간의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맘 아픈 만큼 큰 행복을 빌었었는데…….
해마다 여름이면 어김없이 들르는 수낭아가씨를 기다려 민제의 잔뼈는 마디마디 아픔으로 영글었다. 안타깝고 짠하기만한 기다림이었다. 절에 온 수낭아가씨는 산새같이 즐겁게 조잘대며, 다람쥐보다 더 재빠르게 해인사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삼선암, 금선암, 약수암, 큰 절, 외나무다리, 원당암, 백련암……․가다가 배고프면 산딸기를 따서 먹고 다래도 먹었다. 머루를 잘근잘근 씹으면 오드득 터지는 달콤한 물에 둘이는 이빨이 새까매져서 웃었다. 그럴 때면 민제는 온갖 이야기를 수낭아가씨에게 들려주곤 하였다. 고사리를 꺾으려다가 바짝 곧추 세우고 있는 독사대가리를 꺾을 뻔한 일, 큰 절 행좌승에게 반해 그 이루지 못할 그리움으로 하루하루 여위어가다 죽어버린 도라지꽃의 혼에 대한 이야기……하고 또 해도 애틋한 얘기들은 싱그런 풀내음을 풍기며 한 마리의 새가 되어 날기도 하고, 나비처럼 사뿐히 풀잎 위에 내려앉기도 하였다. 둘이는 지칠 줄 모르고 산속을 누비고 다니다 돌아와 이른 저녁공양을 마친 후 또 나섰다. 물론 은사의 허락을 받고서였다. 수낭아가씨를 끔찍히 여기는 은사는 곱게 모시고 다니라고, 좋은 말동무가 되라며 흐뭇해 하였다. 어둡사리 짙어오는 저물녘이면 달맞이꽃밭은 환하게 피어나는 궁전 같았다. 큰절 뒤로 너른 공터가 하나 있고, 그 철책가로 달맞이꽃들은 옹기종기 모여앉아 달뜨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저기 큰절을 비롯한 암자에서 저녁 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려퍼지면 어둠은 산천초목 구석구석으로 스며들고, 크고 울창한 나무숲에 가리어 달은 얼른 떠오를 수가 없다. 지나치는 실바람에 한 줄기의 달빛이라도 건너오면 달맞이꽃들은 여기저기서 약속이라도 한 듯 한꺼번에 피어나기 시작한다. 넉 장의 꽃잎이 큰 암술을 중심으로 해서 같은 방향으로 말려들었다가 가장 바깥쪽의 꽃잎이 스르륵 풀어지면 순식간에 또 한장이, 그리고 또… 이렇게 해서 꽃은 완전히 가슴을 열고 길다란 암술은 여왕처럼 하늘댔다. 한 송이가 피어나는 것을 신호로 다른 곳곳에서도 꽃송이들이 다투어서 피어나고, 캄캄하던 주위가 갑자기 만개한 노란 꽃들로 밝혀져 수런대기 시작하면 달은 어언 중천으로 둥실 떠올라 있었다. 꽃잎이 풀어질 때마다 수낭아가씨는 그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에 탄성을 지르고 손뼉을 치며 이쪽저쪽 피어나는 꽃송이를 세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는 민제의 눈에선 언제나 뜨거운 눈물이 흐르기 마련이었다. 달맞이꽃이 피어나는 무수한 저녁을 아가씨의 모습이 눈에 선하여 미친듯이 달려오던 때가 생각나서였다. 달맞이꽃 언덕에서 수낭아가씨가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환각에 갈팡질팡 어둔 길을 달려오면 달과 꽃은 그대로인데 아가씨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엄습하는 적막감에 죽은 듯이 앉았으면 난데없는 무섬증까지 들이닥쳐, 어디선가 외로운 혼령들이 새하얗게 웃으며 자신의 목을 휘감는 것 같아 자갈길에 엎어지고 자빠지고 미끄러지며 되돌아오던 그 당혹감. 가슴 속에 한 얼굴을 묻어두고 그리워한다는 것은 차라리 형벌이었다.
ꡒ탁아, 아니 너 울고 있구나. 왜지? 왜그래 응? 여기서 살기가 갑갑해? 아빠께 졸라서 널 서울로 데려갈까? 그래서 학교에라도 다닐래? 말해봐.ꡓ
민제의 울음을 안쓰러워하며 곁에 바싹 다가앉아 눈물을 닦아주던 수낭아가씨의 부드럽고 말랑하던 가슴, 향긋한 머리내음, 그리고는 가만히 포개어 오던 그 꽃잎보다 더 촉촉하던 입술…….
산골의 여름밤이 깊어갔다. 푸슥푸슥 타들어가던 모깃불도 사그리 잠든 밤. 민제는 잠이 오질 않았다. 수낭아가씨를 괴롭힌 작자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오죽하면 아가씨가 아기까지 버리고 왔겠는가. 아마도 아가씨는 큰 결심을 한 게다. 세속의 인연을 끊으려 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는 안된다. 착한 수낭아가씨가 핏덩이를 버릴 만큼 모진 짓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아픔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 민제의 마음은 화닥거렸다. 어떤 방법으로 아가씨를 도울 수가 있을까. 수낭아가씨의 남편이 자신의 목숨을 요구하면 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평생 심부름꾼이 되라 하면 그 짓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약 그 사람이 기어이 아가씨를 학대하고 버린다면 자신이 세속으로 나가서 아가씨를 구출하는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환속? 부처님께 귀의하여 계율을 지키고 중생을 제도하기로 맹서한 사미승이 환속을 꿈꾸다니 그건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었다. 그러나, 수낭아가씨를 그대로 불행하게 내버려둘 수는 없다. 스쳐지나가는 서늘한 바람도 민제의 타는 마음을 식힐 수가 없는지 민제는 밤새도록 괴로워하며 밤을 바장일 수밖에 없었다.
수낭아가씨에게 다정한 위로의 말 한 마디 건네보지 못한 채 이틀이 안타깝게 흘렀다. 아가씨의 방에서는 수저를 드는 둥 마는 둥 거의 공양상이 그대로 물려 나왔다. 은사조차 따라서 독기를 끊는 듯 했다. 애타는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민제의 마음은 아리기만 하였다. 아가씨가 입산한 지 사흘째 되던 날 저녁에는 서울서 또 예고 없이 손님이 들이닥쳤다. 수낭아가씨의 남편이 아기를 데리고 왔다. 젊은 사람이 내숭스럽게 이마가 벗겨져 있었다. 그를 보는 순간에 등줄기를 스치던 적개심을 민제는 다스릴 수가 없었다. 수낭아가씨를 쑥 빼닮은 아기에게는 몇 겁을 통하여 혈육으로 맺은 듯한 따뜻한 정감이 물같이 흘러가는 것 또한 어쩔 수가 없었다. 아마도 이 밤에 큰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아 숨이 제대로 쉬어지질 않았다. 은사의 명으로 이것저것 잔심부름을 하면서도 민제는 발걸음이 후둘거렸다. 은사의 방에서는 여느 때보다 일찍 불이 꺼졌다. 민제는 며칠째 겹쳐 쌓이는 심신의 피로에도 불구하고 자리펴 눕지를 못하고 제 방에 꼬부라져 앉아 밤을 밝혔다. 수낭아가씨의 방에서 이제나 저제나 남편이 쫓겨나올 것만 같은 위기감을 느끼며 민제는 그 밤을 보냈다.
ꡒ민제야, 무엇하고 있느냐? 오늘따라 어인 늦잠인고 !ꡓ
은사의 급한 다그침에 민제는 놀라 깨어났다. 자리에 눕지도 않은 채로 잠이 들었나 보았다. 아뿔사! 민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ꡒ어서 공양간에 일러라. 아가씨께서 일찍 떠나신다고 한다. 어서, 재촉하라니까.ꡓ
서두르는 은사의 음성은 어인일인지 결코 노한 음성이 아니었다.
수낭아가씨가 아이를 안고 남편을 따라 서울로 떠난 것은 눈깜짝 할 사이의 일이었다. 부지런히 아침공양을 차려 올리고 심부름을 하다보니 그네들 가족은 자가용에 오르고 만 것이었다. 방긋 웃는 아기를 감싸안은 수낭아가씨는 민제에게 뜻모를 눈인사를 보내고 떠나버렸다. ꡐ부웅ꡑ하고 속력을 내는 승용차의 뒤꽁무니를 보며 민제는 아득한 현기증을 느꼈다. 휘청거리는 두 다리를 가까스로 버팅기며 서 있는 민재의 뇌리 속으로는 만개한 달맞이꽃잎들이 일시에 떨어져 내리는 환각이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