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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의 서울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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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이야기 - 김재순|국가기록원학예연구관 2010년 06월 340호
2010년 6월은 인류문명의 기록문화 역사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달이다. 우리민족의 정신사적 원천이요 기록문화적 보배인 팔만대장경이 천년의 숨결을 간직한 채, 천년고찰 합천 해인사에서 서울 강남까지 나들이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텐베르크 성경원본을 비롯한 동서양의 수많은 기록유산들과 역사적 만남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서 팔만대장경은 조선왕조실록, 의궤 등 우리의 기록유산들과 함께 대한민국이 찬란한 문화전통을 가진 세계일류 국가임을 여실히 증명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동․서양의 기록문화와 기록유산 전시를 통해서 우리나라의 국격을 높이고, 국가브랜드화를 도모하려는 야심찬 국제행사가 기획되었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2010 국제기록문화전시회(IACE : International Archival Culture Exhibition)》를 6월 1일부터 6일까지 서울강남 코엑스에서 개최한다. 동․서양의 기록문화를 대표하는 약 70여개 국가에서 유네스코에 등록된 약 100여점의 세계 기록유산과 자국의 자랑스런 역사를 증거하는 기록물 등 약 1,000여점이 전시된다. 이 행사에서는 우리의 기록문화전통을 보여줄 팔만대장경 이운식, 조선왕조에서 실록을 편찬한 후 개최하였던 실록봉안의식 등도 재현된다. 동 ․ 서양의 기록문화를 학술적으로 비교, 조명하는 국제학술회의도 열린다. 세계각국의 최고 기록관리 전문가, 학계인사들이 참여한다. 전시회에는 연일 서울 경기의 각급 학생층, 시민층, 종교단체 등이 방문하여 관람할 예정이다.

외국인들의 눈에 우리나라는 과거 조선이라는 문명이 낙후된 왕국에서 일본의 식민지를 거쳐 미․소 냉전으로 분단되었고, 남한은 6.25전쟁의 폐허에서 경제발전에 성공한 나라정도로 인식되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가 이제 세계일류 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영국 프랑스 미국 등 구미의 어떤 국가와 견주어도 훌륭한 문화전통을 갖고 있는 나라임을 인식시키고, 실제로 그러한 문화를 향유하는 국가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된다. 즉 국격제고와 국가브랜드화가 우리시대의 새로운 화두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1900년대초 일제의 침략으로 국왕과 관료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기록하여 후대의 역사심판을 받게함으로써 도덕정치를 구현하고자 했던 기록문화가 사라져 버렸다. 광복이후에도 권위주의 정권으로 인하여 이러한 전통은 복원될 수 없었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거치면서 1999년에 이르러 기록관리에 관한 기본법, 즉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2000년부터 시행하였다.
이 법에 따라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정부기관은 공무수행 근거를 철저히 보존하고, 사후 공개하는 제도가 마련되었다. 과거 사초작성과 실록편찬 전통이 이제 대통령과 모든 공직자들의 공무수행 근거자체를 보존하고 공개함으로서 국정투명성을 보장하는 제도로 계승복원된 것이다. 공무수행 근거를 무단파기 또는 유출할 경우에는 형사처벌하는 조항도 마련되었다. 아마 우리 국민들은 노무현전대통령의 전자기록 유출사건을 통해서 이 법의 실체를 어렴풋이 인지하게 되었을 것이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이 법에 따라 기록관리를 총괄하는 중앙기관이다. 1969년에 설치된 총무처 정부기록보존소는 정부의 법령, 신분, 재산기록 위주로 보존만! 했던 기관이었다. 그런데 이 법률 제정을 계기로 이 기관이 국가기록원으로 확대개편되었다. 대통령기록 등 행정부 기록물은 원본자체를 모두 이관받고, 입법, 사법부 등의 기록물은 보존매체 사본으로 이관받으며, 민간기록까지 종합적으로 수집, 보존 및 활용하는 기록관리 중앙기관이 된 것이다.

기록관리 정책과 제도를 총괄하는 본부조직은 정부대전청사에 입주해 있다. 대통령기록을 비롯한 영구보존대상 국가기록은 2008년도에 개관한 성남의 나라기록관에서 보존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세계적 수준의 건축기술로 지어진 이 시설은 규모는 연건평 약 18,000여평으로 미국의 중앙보존시설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이지만, 시설과 장비측면에서는 세계 최첨단이다. 부산의 사직동 금정산 자락에는 1970년대 남북 긴장관계 속에서 전쟁을 대비한 국가기록 후방소산을 위하여 1984년에 설치한 부산서고가 있다. 이곳에 조선왕조가 태백산사고에 보존했던 ‘조선왕조실록(국보 151-2호)’이 보존되어 있다.

이러한 제도, 보존시설과 더불어 정부기관의 기록관리 시스템도 세계 최고수준이다. 한국은 전자산업의 발전에 힘입어 전자정부 인프라가 세계 최고이다. 국가기록원은 정부기관에서 공문서를 전자적으로 생산하면, 영구보존대상을 한건도 빠짐없이 전자적으로 이관받을 수 있는 선진 기록관리시스템을 구축하였다.
구미에서는 비록 근대시기부터 기록관리제도, 보존시설, 관리체계를 발전시켜 왔지만, 이제 과거 관행에 젖어 있고, 보존시설도 낙후되었으며, 종이문서 위주의 관리체계를 전자적으로 개선하는데 큰 난관에 봉착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비록 최근에야 기록관리를 시작했지만, 오히려 가장 선진적 제도와 시설, 시스템을 신속하게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 구미 각국에서 한국의 기록관리를 배워가는 시대로 역전되었다.
국가기록원에서는 이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세계최초로 각국의 기록유산을 서울로 유치하고, 우리의 찬란한 기록문화전통과 오늘날 이룩한 선진제도, 첨단시설, 전자기록 시스템의 우수성을 홍보하는《2010국제기록문화전시회》를 개최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전시회에서는 각국의 보존시설 건축사업, 전자기록 시스템 구축사업에 우리의 민간기업들이 진출하는 것을 지원하는 기록관리산업전도 개최된다.

2011년에는 경남도와 합천해인사가 “대장경 천년축제”를 개최할 예정이다. 국가기록원의 박상덕원장과 해인사의 선각 주지스님은 양측 간부들과 함께 2010년 4월 22일 해인사 주지실에서 “기록문화유산 보존협력 협정서(MOU)”를 체결하였다. 국제행사에서 팔만대장경 ․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국보급 기록유산의 전시회 대여협조, 팔만대장경 장경판전과 대장경판의 재질, 훼손상태 등 보존기술 연구사업, 해인사의 불교기록 보존관리, 기록관리 교육 등에 대하여 상호 지원협력을 약정하였다.
이는 고려시대 팔만대장경과 장경판전 → 조선시대 실록, 의궤 등과 사고 → 현대의 대통령기록 등 국가기록과 나라기록관으로 이어지는 선조들의 기록정신을 연면히 이어가기 위한 우리세대들의 역사적 약속이요 다짐이 아닌가 생각된다.

옛부터 나라가 한번 망하면 새로운 나라와 문화를 일으켜 세우는데 최소한 100년이 걸린다고 한다. 1910년에 나라를 잃고 기록문화가 단절된 지 약 100여년이 흘렀다. 우리 세대는 지금 새로운 기록문화 르네상스를 열어야 할 역사적 지평에 서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