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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장경판전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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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최정태 2010년 06월 340호
나는 세계의 아름다운 도서관을 찾아 지금도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그곳에 들리면 겉으로 들어난 아름다움도 보지만 그 속에 어떤 사람이 어떤 내용물을 가지고 어떤 역할을 해 왔는지 중점적으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 내가 본 곳은 중세의 수도원도서관을 비롯하여 선진국의 국립도서관과 공공도서관 그리고 세계에서 손꼽히는 대학도서관들이다.
도서관을 찾아가면 그때마다 그곳이 나에게 전해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다.
“세계가 갑자기 붕괴되더라도‘미국의회도서관’만 건재하다면 복구는 시간문제다.”인류의 모든 지식과 정보를 거의 다 가지고 있으니 설사 세계가 멸망해도 이곳만 무사하다면 문명을 재생할 수 있다는 미국인들의 도서관정신이 결코 과장으로 들리지 않았다.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독일국립도서관에서 판매하는 관광용 그림엽서에는 아름다운 도서관사진과 함께 이런 글이 적혀 있다.“사람들은 어디에서 최고의 지식을 얻는가?”그 해답은 바로 도서관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같은 대학이 없었던 중세시절, 수도원은 신앙의 중심지이자 학문의 센터여서 순례자들의 발길이 항상 끊어지지 않았다. 수도사들에게‘게으름은 영혼의 적’이라고 가르치기 때문에 그들은 기도와 독서로 날밤을 지새운다. 독서는 그들의 일과였고, 도서관은 삶의 터전이었으며 생활의 전부였다. 그래서 그들은“도서관이 없는 수도원은 무기고 없는 요새와 같다”고 했다. 덧붙여“도서관이 없는 수도원은 재산 없는 도시이고, 등대 없는 항구이며, 책이 없는 도서관은 그릇 없는 부엌이고, 먹을 것 없는 밥상이다”라고 서슴없이 말했다.
지금 유럽에는 200여개 수도원이 남아 있다. 이들 수도원은 한 결 같이 크고 작은 도서관을 가지고 있다. 이들 도서관의 생성과정을 보면, 수도사들이 직접 필경해서 만든 기도서 수 십권으로 출발했다. 그 도서관이 지금 세계적 명품이 되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고 세계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그곳은 모두 기록관이며 동시에 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세계적 기준에서 해인사 장경각판전은 기록관이자 도서관의 원조가 되고, 그 중에서 최상급의 도서관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중세 수도원에서 수도사를 길러내기 위해 공부를 하고 책을 만들어냈다면, 이곳 동방의 한국 사찰에서도 스님들이 수도와 학문을 연마하기 위해 책을 만들고 보존해 왔다. 그곳에서 공부를 가르치고 시설을 만들어 함께 독서를 했다면 그곳은 도서관이다. 도서관은 단순한 책의 창고가 아니라 우리에게 무한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고 인류문화의 역사와 자산을 갖춘 지식의 저장고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지금으로부터 750년 전 한반도 남단의 대 가람, 해인사에 팔만대장경과 이를 보존하는 판전을 구비하여 수도와 학문을 연마하는 장소를 두었다는 사실만 가지고도 현대판 기네스북에 등록하기에 손색이 없다. 같은 시기, 책판의 물량과 판전의 구조만 보아도 어찌 그때 수도원과 비교가 되겠는가? 거기에다 비교할 수 없는 많은 스님들이 용맹정진하면서 끊임없는 글공부(독서)를 하고, 수많은 인재를 배출해 낸 당시의 사찰은 도서관을 겸비한 학문의 메카였고, 지식의 센터가 아니던가?
안에서 행하는 일만 가지고 하는 말이 아니다. 중세시대 지식인들이 여행할 때 가장 먼저 찾는 곳은 도서관이었다. 당시 귀족과 성직자, 학자들의 도서관 순례는 지식과 교양을 재충전하고,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며, 영혼의 요양을 겸한 여행으로서, 그들에게는 보편적인 지적행사였다. 옛날 우리의 사찰은 서구의 지식인을 넘어, 국왕이 몸소 참배했으며 당대의 쟁쟁한 선비를 비롯한 우리의 할머니, 며느리, 손자까지 온 가족이 들리는 문화의 구심점이었다. 말하자면, 지식인에게는 지식과 정보를 구하는 장소였고, 동시에 우리 영혼을 일깨우는 안식처이자, 힘든 몸을 쉬게 해주는 휴식처였다.
나는 절을 찾아 올 때마다 옛날 수도원도서관을 찾는 지식인의 심정으로 마음을 다잡는다. 여기에 오면 맑은 웃음의 스님을 만날 수 있고, 불경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의 요양을 할 수 있다. 특히 해인사는 우리 도서관의 원조가 되는 장경판전의 신비를 감상할 수 있고, 그 안에 봉안된 대장경판과 가까워 질 수 있어 더욱 그러하다.
장경판전이 우리에게 전해 주는 메시지는 과연 무엇일까? 유네스코가 해인사 장경판전과 경판을 세계문화유산과 세계기록유산으로 이미 인정했다. 안과 밖, 두 개가 동시에 세계의 보물로 결정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나는 이를 단순한 건물로 보지 않고, 의미 없이 글을 새긴 목판으로만 보지 않는다. 무자비한 몽고군의 침략을 창이나 칼 대신에, 책을 통해 불력의 힘으로 나라를 구하려 했던 호국정신과 평화를 염원하는 민족의 얼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지상의 위대한 도서관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년 전에 출판한《지상의 아름다운 도서관》〈한길사〉속에‘해인사 장경판전’을 당당히 포함시켰다. 우리에게도 이와 같이 아름답고 위대한 도서관이 있다는 것을 만방에 자랑하면서.


최 정 태
부산대학교 명예교수
『지상의 아름다운 도서관』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