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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금사상(拜金思想)과 배김사상(拜金思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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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앞의 잣나무 - 동봉 1990년 12월 106호
어쩌면, 같은 하늘을 이고 산다는 것이 이토록 기분 나쁠 수 있을가. 같은 지구를 딛고 숨쉬며 살아간다는 것이 왜 이처럼 기분이 언잖아야 하는가. 신문의 사회면을 어지럽게 장식하는 갖가지 폭력과 범죄, 팔십 노파에서부터 대여섯살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저항할 아무런 힘도 없는 이들을 생매장한 극악무도한 만행을 우리 사회는 어떻게 생각하여야 할까. 한 마디로 말해 기분 나쁘다.
나는 탤레비전과 신문을 번갈아 보면서 어찌하여 이토록 끔찍한 사건들이 걷잡을 새 없이 일어나야 하는가를 생각해본다. 이들, 전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들의 책임을 우선 우리 사회 모두가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여본다. 돈이면 모든 것이 다 된다고 하는 이른바 배금주의가 사회 밑바닥에 뿌리를 내리고 있고 그에 따른 갖가지 교육이 인성(人性)의
향상을 바탕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ꡐ범죄와의 전쟁ꡑ을 선포한다 하더라도 공염불에 그칠 것이 뻔하다. 그러나 그 일차적 책임을 나는 사회도 사회려니와 우선 정치인들에게 돌리지 않을 수 없다. 그저 눈만뜨면 티격태격이다. 정치하는 이들 쳐놓고 어느 하나 진정으로 국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없다. 특히 국민의 세금으로 먹고, 국민의 세금으로 입고 살아가는 국회의원들 치고 어느 한 사람 자신이 국민의 심부름꾼임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이가 없다. 모두 제 잘나서 국회의원이 된 줄 안다. 이 나라는 국민 모두의 것이지 몇몇 정치인들의 나라가 아니다.
그 엄청난 세비를 받아먹으며 국회를 결석하는 것을 하나의 자랑처럼 생각하고 있다. 걸핏하면 보따리나 싸가지고 오르락내리락이다. 게다가 범죄단 두목석방 탄원서나 내고, 도대체가 글러먹어도 한참 글러먹었다. 일 년은 열 두 달이다. 그런데 그 한 해의 3분의 1인 넉 달 동안을 공백기로 잡아먹은 국회의원들, 도대체가 이럴 순 없는 것이다. 우리 원각사는 일주문을 막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커다란 벚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그 나무 아래는 말끔하다. 다른 나무는 심어봤자 자라지 못한다. 잡초도 한 포기 없다. 왜 그럴까. 한 그루의 거목 아래는 그 나무의 그늘 때문에 다른 잡다한 초목이 자라지 못한다. 몇몇의 대권야욕에 사로잡혀 있는 정치 지도자들 때문에 앞으로 우리 나라를 제대로 이끌어갈 인물이 배태되지 않음이 안타깝다. 한 마디로 인물이 없다.
가장 공정하고, 가장 국민을 사랑하고 존경하여야 할 민주주의 표방의 인사들이 이처럼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데 하물며 보통사람, 보통국민들이겠는가 싶다. 사회는 극도로 혼란하고, 그 혼란함을 틈타 강력한 범죄조직은 서식할 수밖에 없다. 정치인들이 모범을 보여주어야 할 때다. 이상적인 국가는 우선 지도층부터 신뢰받는 일을 해야 한다. 대통령 중심제든 의원내각제든 그것이 보통의 시민들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솔직히 말해서 그런 것들은 정권야욕에 불타는 몇 사람의 욕심쟁이들의 것이다. 국민은 국민 모두가 평화롭고 행복하며 넉넉하게 살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가장 이상적인 사회와 국가건설의 제창자였던 의상대사(625~702)를 가끔씩은 떠올려본다. 의상대사는 신라 사람으로 원효보다 조금 아래 연배다. 그는 불교의 화엄세계를 일승법계도(一乘法界圖)로 표현하고 법성게(法性偈)로써 설명한다.

참된 본성은 매우 깊고 지극히 미묘하여
자성을 고수하지 않고 연(緣)따라 성립하네
하나 가운데 일체(一切)요 일체 중의 하나며
하나가 바로 일체요 일체가 바로 하나일세

하나의 티끌 속에 시방세계를 갈무리하듯
온갖 티끌들도 모두 다 이와 같아라
무량하고 기나긴 시간이 곧 한 생각이요
한 생각이 곧 무량하고 기나긴 시간이라

그렇다. 이 세상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 우리가 머리에 이고 있는 우주는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이 머리에 이고 있는 우주와 분리되어 있는 게 아니다. 하나로 통해 있을 뿐이다. 우리가 밟고 서 있는 이 지구 덩어리는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이 딛고 서 있는 지구와 같은 것이다. 한 사람의 잘못된 영향은 온 지구촌 모든 사람에게 미친다. 그래서 「원각경(圓覺經)」에서는 ꡐ한 사람의 마음이 깨끗하므로 온 세계인의 마음이 깨끗하고 한 사람의 선한 행동은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공덕을 입힌다ꡑ고 한 것이다.
몇몇 사람의 그릇된 정치적 사고가 온 국민을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법이다. 하나는 여렷으로 통해 있고 여렷은 하나로 통해 있다. 여렷과 하나, 전체와 개인은 결코 다른 차원이 아니다. 같은 세계다. 물론 이 나라의 정치가 이만큼이나마 민주정치를 이루어나간 데는 양김(兩金)의 공적이라 할 만한 것이 있다. 그러나 강을 건너고 나면 뗏목은 다음 사람들을 위하여 남겨두고 떠나야 한다.
뗏목의 덕으로 강을 건넜다 해서 그 뗏목을 이끌고 간다는 것은 무리다. 꼭 따지자면 양김, 아니 삼김(三金)에게만 책임이 있는 게 아니다. 삼김 아니면 이 나라 정치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일부 어리석은, 평범한 국회의원의 배김사상(拜金思想)이 더 문제다. 정치는 배김사상(拜金思想)이 흐려 놓고 사회는 배금사상(拜金思想)이 망친다.
어디가나 그 놈의 돈〔金〕이다. 정치도 반드시 돈〔3金〕이 있어야만 된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음, 사회도 돈〔金〕이면 다 된다고 보는 덜 깬 중생들의 소치(所痴)가 우리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고 상상할 수조차 없는 끔찍한 사건들을 야기시켜온 것이다. 그러기에 정치인들은 물론, 우리네 보통사람들도 그 놈의 돈〔3金]으로부터 초월해야 한다.

참된 본성은 매우 깊고 지극히 미묘하여 자성을 고수하지 않고 연따라 성립하네

그렇다.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운 국가의 건설은 인간 본연의 심성을 올바로 일깨움이다. 본연심성을 일깨우는 데는 때로 혹독한 고행이 필요하다. 요즈음은 하나 낳기 운동을 전개하다 보니 자식에 대한 애착이 더없이 크다. 지나친 간섭과 과보호 속에서 세상에 적응하는 힘을 길러주지 못하고 성격형성이 올바로 되지 못한다. 여러 형제가 크는 데는 거기에 경쟁이 있고 우애가 있다. 그런데 외동아들이나 외동딸의 경우는 세상에 오직 자기 뿐이다. 조금은 어줍잖은 가정이지만 만약 앞으로 계속해서 하나 낳기만을 고집하다가는 언젠가 형이니 동생이니 누나니 오빠니 하는 단어들이 사라질 것 같다. 국어사건에는 고모․이모․외삼촌․내종․처제 ․처형 ․매부와 같은 단어들이 고어로 처리되고 오직 부모로 거슬러 올라가고 자식으로 내려오는 직계와 처갓집의 장인 장모 정도로나 호칭이 남아 있지 않을까도 걱정이다.
어쨌든 외동아들 외동딸이라 하더라도 때로 따끔한 매를 들어야 한다. 사랑의 매를 맞으며 자란 아이라야 커서도 이 사회를 위해 자기의 할 일을 충분히 감당하는 법이다. 인간의 본연심성은 본디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지만 교육이 잘못되면 엄청난 독소를 지닐 수밖에 없다. 가정교육, 그것은 학교교육보다 우선한다. 교육은 교사나 성직자만 하는 게 아니다. 보다
참신한 교육은 가정에서 시작한다. 교육은 언어로써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특히나 가정교육은 부모의 참신한 행동이 그 본바탕이 된다. 젊은이들의 무분별한 행동만을 나무랄 게 아니다. 불량한 젊은이들이 배태된 이변에는 반드시 잘못된 가정과 사회가 있다. 잘못된 가정과 사회, 그 일차적 책임은 위정자들에게서 물어야 한다. 한마디로 정치부재의 소산물이다.우리가 우리의 본연심성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불가사의하다. 그 본래로 착한 심성이 인연을 따라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기에 지극히 미묘한 것이다. 좋은 인연을 만나면 더욱 좋아지고 더러운 인연을 만나면 더럽고 흉폭해진다. 교육이란 인간이 가장 쉽게 물들어갈 환경이다. 그렇다. 아름다운 빛깔로서든 음침한 빛깔로서든 우리는 언어와 행동이라는 또는 심리적 욕구라는 여러 가지 조건에 의해 길들여지고 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속담이 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국민들보다 위에 있는지 아래 있는지, 아니면 우리네 보통사람과 똑같은 위치에 있는지는 차차 생각한다 하더라도 우선은 그들부터 본래의 자기 고귀한 본성으로 돌아가 국민을 위하고 사회를 위해 참신한 정치를 해주었으면 싶다. 90년이 저물어가는 이즈음에 꼭이나 바라고 싶었던 얘기다. 우리 모두 배금사장(拜金思想)과 배김사상(拜옳먼想)으로부터 놓여나자. 그것이 진정한 우리 민주국가 복지사회의 원동력이다. 왜냐하면 나라의 부흥은 경제가 우선이지만 돈〔3金〕이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