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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혜가 스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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續 선과 그림이야기 - 김현정 2010년 05월 339호
옛 문헌에는 혜가선사가 달마조사에게 사사하게 된 사건이 아주 극적으로 묘사되어 전해지고 있다. 혜가慧可 조사가 초조初祖 달마達磨 문하에 있을 때 일이다. 혜가 조사가 스승을 섬기기를 밤낮으로 지극하였으나, 얼마가 지나도 아무런 가르침도 듣지 못하였다고 한다. 눈 오는 어느 날 밤, 혜가가 달마의 거처 앞에서 꼼짝 않고 서서 가르침을 청하였고, 새벽녘에는 그 눈이 무릎까지 쌓였다. 새벽이 되어 이윽고 달마께서 물으시길,
“그대는 나에게서 무엇을 구하는가?”
혜가가 이를 놓칠세라 얼른 대답하였다.
“가르침을 베푸시어 중생들을 제도하여주십시오.”
“법法을 구하기 위해서는 목숨까지도 바쳐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데, 할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시니, 곧바로 혜가는 칼을 뽑아 왼쪽 팔을 잘라 대사 앞에 놓았다.
흰 눈 위에는 핏자국이 선연하게 뿌려졌다. 온 몸을 가르는 듯 고통이 대단하였을 것이나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혜가는 달마 조사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제 마음이 편치 못하오니 대사께서 편하게 해주십시오.”
달마 스님이 대답하였다. “그 마음을 가지고 오너라. 편하게 해주리라.”
마음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내 몸에 있는가. 허공에 있는가…. 혜가는 “도대체 그 마음이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없습니다” 하자, “내가 이미 너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고 하였다. 이렇게 혜가는 불편한 그 마음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어 마음을 편히 하였다. 그리고 그 순간 깨달음의 어디엔가 이미 다다르게 되었던 것이다.
<혜가단비慧可斷臂(혜가스님이 자신의 팔을 자르다)> 고사는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아직도 눈(眼) 앞 눈(雪) 위에는 그가 뿌린 선홍색 피가 낭자하다. 자신의 팔을 자르는 정도의 각오가 아니면 선의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인가. 선을 이야기 하면서 다시 한번 고통의 딜레마에 빠지는 순간이다.
너무나 서론이 길었는데, 이제야 본론으로 들어가야겠다. <이조조심도(二祖調心圖)>, 이 그림을 이야기 하고자 이렇게 이야기가 길어졌다. 중국 오대(五代, 10세기) 활동하던 석각(石恪, 생몰년미상)의 대표작이다. 그림 속 이조二祖 대사의 몸가짐과 상호에는 한 점의 의심도 찾아 볼 수 없고, 그저 ‘안심安心’만 있을 뿐이다. 어께에 힘을 쫙 빼고, 남은 오른 팔에 고개를 편히 괴고, 함께 졸고 있는 호랑이에 온 몸을 기대어 눈을 살포시 감고 낮잠을 즐기고 있는 모습으로 보자면, 그날 밤 번민과 함께 그의 왼팔을 버렸던 것이 아닌가 싶다. 혜가스님의 독한 구도의 모습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이 그림은 해학적이고, 뭔가 간질간질한 즐거움이 넘치는 따뜻한 그림이다.
아무리 그것이 도를 위한 길이라 한들 어떻게 매번 각오가 새로울 수 있을까. 각오를 새롭게 할 때마다 팔을 자른다면 나같이 허술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은 손이 천개나 된다는 천수千手관음의 그것도 부족할 판이다. 그래서 완급의 조절이 필요하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팔을 자른 이조 혜가스님의 각오는 이렇게 안심으로 이어지고, 결국 깨달음의 완성이 어디에 있는지는 더 깊이 생각해 볼일이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