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의 강의석 판결은 학생들의 종교자유 보장하라는 사회적 합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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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2010년 05월 339호
종교는 때로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 역사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십자군전쟁이 대표적인 예이다. 11세기 말에서 13세기 말, 200여 년에 걸쳐 서유럽의 그리스도교도들이 성지 팔레스티나와 성도 예루살렘을 이슬람교도들로부터 탈환하기 위해 무려 8회에 걸쳐 전쟁을 치렀다. 종교의 이름으로 치러진 전쟁이었으며, 수백만의 사람들이 목숨과 재산을 잃었다. 종교로 인한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종교는 원래 불편한 것인가. 역사를 보면 ‘그렇다’는 답변도 가능하다. 그러나 종교는 사회공동체 운영의 이념을 제공하고 통합 역할을 했다. 삶의 궁극적인 목적을 제시함으로써 인간다움으로 이끌었다. 지금도 그렇다. 종교, 더 정확하게 교단과 교단의 지도자들이 때로 불미스런 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만 종교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평화와 희망의 등불이 되고 있다.
최근 주목할 만한, 역사적인 판결이 내려졌다. 4월 22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강의석씨가 학교법인 대광학원과 사울시교육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강씨의 손을 들어줬다. 이로써 5년여 동안 끌어온 종교사학에서의 종교교육의 허용 한도를 제시했다. 이 판결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종교사학에서의 지나친 종교교육, 사실상 강제성을 띤 선교행위에 수많은 학생들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불만이 있어도 이의제기조차 제대로 못했던 현실이 개선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대법원의 판결문을 살펴보자. (아직 판결문이 공개되지 않아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옮긴다.)
재판부는 먼저 현행의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을 “입시 과열·학교간 격차 해소, 고등학교 교육의 질적 균등을 위한 제도”라며 “고교생의 절반 정도가 다니는 사립학교도 국공립학교와 구분 없이 국가의 재정 지원을 받는 등 공교육 체계에 편입돼 있으므로 강제 배정으로 인한 학생 선발권 및 학교 선택권 제한은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이는 피고인 대광고가 평준화 상황에서 기독교 이념에 따라 설립된 만큼 종교교육을 하는 것인데, 평준화에 따라 종교와 무관하게 입학하게 된 학생들이 불가피하게 종교교육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변한 것에 대해 이유 없는 점을 밝힌 것이다.
재판부는 이어 “비록 사학과 종교교육의 자유를 감안하더라도 종교계 학교는 학생의 종교 자유 등 기본권을 고려해 적절한 대책을 세우는 한도에서 기본권을 누린다. 따라서 종교계 학교가 자신의 신앙과 무관하게 입학한 학생들을 상대로 종교적 중립성이 유지된 보편적 교양 수준을 넘어선 특정 종파교육을 할 때에는 허용 한도가 있다”고 설명했다.
허용 한도와 관련해 재판부는 “▷종교교육의 구체적인 내용과 정도 ▷종교교육이 일시적인 것인지 여부 ▷충분한 사전 설명과 학생들의 동의 여부 ▷불이익 없이 자유롭게 대체과목을 선택하거나 종교교육 참여를 거부할 수 있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제시하고, “이런 기준에 비춰 대광고는 교육부 고시와 달리 대체과목을 개설하지 않았고, 학생의 사전 동의도 구하지 않는 등 사회공동체의 건전한 상식과 법 감정에 비춰볼 때 용인될 수 있는 한계를 초과한 위법성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2009년 현재 종교교육을 하는 학교는 개신교 259개, 천주교 71개, 불교 29개, 기타 174개 학교다. 학교급별로는 초등학교 38개, 중학교 225개, 고등학교 315개 등 모두 578개 학교다.
종교사학, 특히 개신교계에서 세운 학교의 종교교육의 심각성은 도를 넘었다. 얼마 전 크게 문제가 됐던 경기도의 한 개신교계 고등학교는 매주 금요일이면 학생들이 교회로 등교한다. 1교시 수업이 예배이기 때문이다. 종교교육을 예배로 실시한 것이다. 수년 동안 이런 행태가 이어져오다 최근에야 문제가 학교 밖으로 드러났다. 종교교육을 선교로 인식한 몰상식의 전형인데, 문제는 이 학교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당수 개신교계 학교가 비슷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강의석씨 소송을 맡은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판결문에서 종교교육을 ‘보편적인 교양 수준’으로 한정했다. 즉, 종교 현상과 여러 종교에 대한 이해를 통해 종교간의 평화로운 공존을 종교교육의 개념이라고 제시했다. 선교 또는 특정 종교의 의식에 참여케 하는 것은 분명 종교교육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종교교육을 아예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에게도 선택권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교육이 특정 종교의 신자화를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되며, 그런 행위가 지속되어서도 안 되며, 학생들의 동의하에 이루어져야 하며, 종교교육에 참여하지 않을 권리를 위해 다른 과목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며, 이에 따른 불이익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우리의 건전한 상식을 옹호했다는 점에서 환영할만한 일이다. 종교사학에서 당연한 것처럼 행해왔던 지나친 종교교육이 학생들의 권리 침해 행태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그동안 학생들, 10대의 인권은 관심 밖이었다. 배우는 과정에 있으므로 인권 침해가 있어도 살피지 않았다. 그러나 10대들에게도 싫어하는 것은 하기 싫다고 말할 수 있으며, 나아가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이 권리를 확보해주지 않으면 당당한 권리인데도 유보하게 되며, 이는 권리의식이 옅어져 건전한 시민으로서의 성장을 막는다. 또 공적인 성격을 띤 기관이나 인사의 종교행위의 허용 범주를 어디까지 할 거인가에 대한 논의에도 참고할 만하다. 잊을만하면 튀어나오는 공직자의 종교편향을 제어하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고 본다.
종교는 때로 치외법권적인 대우를 받아왔다. 지하철 내와 광장 등 공공장소에서 노래를 부르고 설교를 해서 여러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어도 단지 종교라는 이유로 제지되지 않았다. 종교가 사회에 기여하는 부분이 있는 만큼 저 정도의 행위는 용인해주자는 암묵적인 외면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행위도 이번 기회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해주어야 한다. 공공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에 대해 시민으로서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
개신교계는 이번 판결에 대해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학교에 학생 선발권이 주어져야 한다는 방향으로 학교에서의 선교행위를 지속할 방안을 찾는 것 같은데, 우려스런 일이다. 설령 학생 선발권이 학교에 주어져 특정 종교의 교육을 한다는 것을 아는 학생들이 입학한다 해도 무한정한 종교교육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학생들은 종교적인 이유로만 학교를 선택하지 않는다. 가령, 학교를 선택하며 그 학교가 개신교계이지만 대학 입시에 유리한 점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입학할 수도 있다. 그러면 이 학생은 종교에 대한 불편함을 3년 동안 참아가며 다녀야 한다. 개신교계 학교인지 알고 입학했으니 감수하라 한다면, 이는 매우 가혹한 처사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번 대법원 판결은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건전한 상식이다. 그럼에도 개신교계가 학생 선발권 운운하며 학생들을 선교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반인권적인 발상이다.
종교는 그 자체의 확장논리로 존재하여서는 안 된다. 이럴 때 종교는 다툼의 발원지가 된다. 역사와 종교전쟁의 현실이 그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종교에서 추구하는 가치와 인간의 행복에 기여하는 보편적인 가치가 결합되어 실현될 때 비로소 종교의 존재 의미는 등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