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역사의 흔적 - 상량문(上樑文)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해인성보 - 이은주 / 학예연구원 2010년 05월 339호
역사기록은 미래의 후손들이 바라봐야 할 조상들의 삶의 모습이며, 앞으로 우리가 선조들에게 본받아야 할 점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줄 수 있는 귀중한 지표이다.
상량문 역시 그러한 역사 기록 중의 하나이다.
상량문은 건물을 짓게 되거나, 부분적으로 수리할 때에 그 연유 또는 역사적 사실, 건물주에게 좋은 일이 있기를 바라는 기원문祈願文, 찬문讚文, 공역자工役者들의 이름과 상량시기上樑時期 등을 적어 기록해 둔 문서이다. 그 종류로는 처음 지을 때 창건상량문創建上樑文, 건물이 낡거나 고칠 때 중수상량문重修上樑文, 본 건물 모양으로 다시 지을 때 중건상량문重建上樑文등이 있다.
한마디로 건물을 지을 때 이를 축하하고 기록을 남기기 위해 작성하는 것인데, 이는 여러 차례 중수되면서 그때마다 시대 상황과 공사기록이 적혀져와 귀중한 역사적 자료로 쓰이고, 그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해인사 또한 많은 상량문이 있는데, 그 중 가장 유심히 봐야할 것은 바로 《해인사 대적광전 중건 상량문》이다. 이 상량문은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조선 순조 18년(1818)에 썼다고 기록되어있다.
해인사의 사적을 보면 잦은 화재의 기록을 지니고 있는데, 특히 조선시대 이후의 기록에 따르면 수차에 걸친 화재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추사 김정희는 이런 해인사의 잦은 화재 방지를 위하여 대적광전의 상량문을 썼다고 하는 구전이 있다. 이 상량문에는 《법화경》〈화성유품化城兪品〉의 팔방八方 16불명佛名과 함께 《아미타경》의 육방六方 불명으로 상량문 끝에 붙이는 육위사六偉詞를 등장시켰다. 이 모든 것이 화재를 진압하는 하나의 비방이며, 이 같은 비방으로 인하여 해인사는 그 이후부터 화재가 없었다고 한다.
이와같이 김정희가 해인사 대적광전 중건 상량문을 쓰게 된 계기는 아버지 김노경 때문이었다고 한다. 당시 추사의 아버지 김노경(金魯敬, 1766~1840)은 경상도 관찰사로서 해인사 중건에 관여하였다. 이러한 연유로 김정희가 해인사 중창을 위한 권선문權善文과 대적광전 상량문을 지었다고 한다.
해인사 대적광전 중건 상량문은 푸르스름한 감지紺紙에 금물로 쓰였고, 폭이 95cm, 길이 483cm나 되는 대작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추사체가 형성되기 이전의 해서楷書작품으로 반듯반듯하고 품위가 있으며,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기보다는 법식에 따르려는 흔적이 역력하다. 그리고, 사경하듯 한자 한자 또박 또박 써내려간 글씨는 저절로 그 위엄을 나타낸다.
이 귀중한 《해인사 대적광전 중건 상량문》은 2003년 9월 18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399호로 지정되었다.